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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워킹맘 미소 뒤엔 ‘야근자 전용 24시간 어린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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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16942501_20141030.JPG» 주 40시간 노동을 지키고 맞벌이 부부의 육아 문제를 기업과 사회가 함께 책임지는 스웨덴 사회에서 ‘일·가정 양립’은 사회보장제도와 같다. 주말 오전 집에서 딸 앨런과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카린·마르코 부부. 사진 진명선 기자

[저녁 있는 삶] ⑤ 맞벌이 패러다임의 조건

‘장시간 노동 개선’은 박근혜 정부의 140개 국정과제 가운데 55번째 순위에 올라있다. 그러나 <한겨레>가 ‘저녁 있는 삶’ 기획을 통해 만난 노동자들에게 장시간 노동 개선은 최우선 과제였다.

‘워킹맘’들은 잦은 야근 탓에 둘째아이 임신은커녕 경력 단절의 위기에 내몰리고 있었다. 맞벌이 부부들은 아이들 야간보육 비용을 대느라 치솟는 전셋값을 감당할 수 없다고 했다. 부모 없는 사춘기를 보낸 자녀들은 ‘중2병’으로 일컫는 문제 행동을 보이기도 했다. ‘저녁 없는 삶’은 노동자뿐만 아니라 그 가족 전체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일찌감치 하루 8시간 노동을 도입한 독일과 스웨덴 등 유럽의 사례는 한국경제의 도약을 막는 장애물 가운데 하나가 ‘저녁 없는 삶’이라는 것을 확인시켜줬다. 국민소득 4만달러 시대를 열겠다는 정부가 놓치고 있는 대목이다.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에서 기차로 1시간가량 떨어진 소도시 식투나에 사는 카린(37)은 ‘슈퍼맘’이다. 딸 앨런(6)을 키우면서 식투나 지역의 구급차를 운전하는 응급 간호사로 일한다. 취미가 마라톤인데 지난 2월 남편 마르코(37)와 함께 독일 베를린에서 열리는 대회에도 참가할 정도로 실력이 수준급이다. 요즘은 750m 수영, 20㎞ 자전거, 5㎞ 마라톤을 연달아 하는 트라이애슬론에 푹 빠졌다. 8월에 스톡홀름에서 열린 대회에도 참가했다. 손재주가 딸리는 남편을 대신해 드레스룸 옷장이나 수납장을 짜는 것도 카린의 몫이다. 4월 식투나의 집을 찾았을 때 카린은 금방 구운 파운드 케이크와 호두파이를 내놨다.

직장일과 가사는 물론 취미까지 ‘세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슈퍼맘’

카린처럼 사는 일은 스웨덴에서 그리 큰 노력이 필요하지 않다고 했다. “응급 간호사는 24시간 교대 근무예요. 오전 7시에 출근해서 다음날 오전 7시까지 일해요. 하루를 꼬박 근무하면 3일을 쉬게 돼 있어서 주말에 하루 일하면 주중에 휴일 사흘이 생겨요.” 1일 단위로 치면 장시간 노동이지만 휴무일을 3일씩 배치하는 방식으로 주 40시간 노동이 지켜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이 펴낸 ‘교대제와 노동시간’(2013)을 보면, 한국의 경우 교대근무를 하는 노동자들의 주당 노동시간(47.13시간)이 그렇지 않은 노동자(45.89시간)보다 길다. 반면 유럽은 교대근무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이 더 짧다. 40시간 노동을 준수하는 과정에서 휴일 보장이 철저하기 때문이다.

어린이집 공립 운영…별도 욕실·침실 
부모 근무표 한두달 전 제출 
육아문제 사회가 함께 책임져 
교대근무 노동자들 육아 안심

카린의 남편 마르코 역시 공항에서 일하는 교대근무자라 출퇴근이 불규칙하다. 스칸디나비아항공(SAS)의 도착서비스 총괄 부서장인 그는 근무표에 따라 주간조(새벽 6시~오후 3시) 또는 야간조(오후 2시30분~밤 12시30분)에 배치된다. 카린과 마르코 모두 야간근무를 하는 날이 생길 수밖에 없다. 늦은 밤 혼자 있어야 하는 딸 앨런은 어떻게 할까?

간호사나 경찰관, 항공사 직원 등 24시간 근무를 할 수밖에 없는 교대제 노동자들의 최대 고민인 육아 문제는 스웨덴의 경우 ‘사회’가 책임진다. 엄마·아빠가 야간근무를 할 때 앨런은 교대제 노동자들의 근무 형태에 최적화된 보육시설 ‘24시간 어린이집’에서 잠을 잔다. 이 어린이집은 애초 항공사가 교대근무 직원들을 고려해 설립한 ‘직장 어린이집’이었지만 지금은 식투나시가 직접 운영하는 ‘공립’이다.

주간 보육과 야간 보육을 병행하는 한국의 24시간 어린이집은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과 잠까지 자는 아이들이 뒤섞여 지낸다. 반면 스웨덴의 24시간 어린이집은 교대근무 등 부모의 근무형태상 주간 보육을 할 수 없는 아이들만 맡는다. 이 때문에 별도의 욕실과 침실을 마련하는 등 시설이 특화돼 있다. 주간에 친구들과 함께 놀던 방에서 저녁을 먹고 잠까지 자야 하는 한국 아이들의 처지와는 크게 다르다. 카린은 아이를 어린이집에서 재우는 데 마음의 짐이 크지 않다고 했다. “아이들도 우리와 똑같이 주 40시간만 어린이집에 있을 수 있죠. 휴가 때는 어린이집에 맡길 수 있는 시간이 주당 15시간으로 줄어요. 근무표를 한두 달 전에 미리 어린이집에 제출하기 때문에 어린이집에서는 부모가 아이를 방치하는 것은 아닌지 금세 알아요.”

스톡홀름에서 기차로 1시간가량 떨어진 베스테로스에 사는 세실리아(37)도 3교대 근무를 하기 때문에 늘 출퇴근이 불규칙하다. 오전 7시에 출근해 오후 3시30분에 퇴근하는 날이 있는가 하면, 오후 1시부터 밤 10시까지 근무하는 날도 있다. 밤에 출근해 아침 7시에 퇴근하는 야간조 근무도 있다. 비토(8)와 오토(5) 두 아들을 키우면서 결혼 전부터 일해 온 병원을 계속 다닐 수 있는 건 남편 안데쉬(37) 덕분이다.

베스테로스에서 스톡홀름으로 통근하는 안데쉬는 오전 8시에 출근해 오후 3시면 퇴근한다. 하루 8시간 노동에서 모자란 1시간은 기차에서 채운다. 안데쉬의 회사는 그가 기차에 타는 오전 7시부터 근무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아내가 야간근무를 할 때면 재택근무도 가능하다. 안데쉬는 “근로계약서를 쓸 때 통근시간 1시간을 노동시간으로 인정한다는 조항을 포함시켰다. 지방에 사는 노동자들의 정당한 요구다. 일자리는 스톡홀름에 몰려 있는데 모든 사람이 집값이 비싼 스톡홀름에서 살 수는 없다. 재택근무는 아이를 키우는 부모에 대한 사회적 상식으로 받아들여진다”고 했다.

주40시간·탄력 근로제 모범 
육아에 취미까지 만끽 
직장·가사서 철저히 양성평등 
24시간 밤샘근무땐 3일 휴식도

1919년에 이미 하루 8시간 노동(주당 48시간)을 규정한 ‘노동시간 규제법’을 시행한 스웨덴이 100여년 동안 장시간 노동 없이도 1인당 국민소득 6만달러를 눈앞에 두고 있는 것은 ‘맞벌이’의 힘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12년 발간한 ‘성별 격차 해소 보고서’에서 한국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54.5%)을 남성 수준(77.1%)으로 끌어올리면 국내총생산(GDP)이 연평균 0.9%씩 추가 상승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은 바 있다. 올해 나온 자료를 보면, 1인당 국내총생산은 스웨덴이 5만7909달러로 한국(2만4329달러)보다 2.38배 높다.

141458892998_20141030.JPG» 각자 직장 근무복을 입은 마르코(왼쪽)·카린 부부. 사진 진명선 기자

스웨덴에서 만난 네 쌍의 맞벌이 부부는 엄마·아빠의 역할 구분이 거의 없었다. 저녁식사 준비는 대개 남편의 몫이다. 엄마 카린이 일하는 동안 아빠 마르코는 딸 앨런을 데리고 단 둘이 스페인 여행을 다녀왔다고 했다. 양성평등 생활화는 부부가 맞벌이를 성공적으로 유지하는 비결이었다.

양성평등 문화는 맞벌이 가정뿐만 아니라 스웨덴 사회 곳곳에 뿌리내리고 있다. 길거리에 있는 산책로 표지는 여자가 아닌 남자가 아이 손을 잡고 있는 모습이다.

이런 사회에서 스웨덴 여성들은 경력 단절의 위험 없이 성공적인 사회생활을 한다. 공기업에서 일하는 페리에 이바르시오(40)는 “회사 중역들 가운데 절반이 여성”이라고 했다. ‘맞벌이 강국’ 스웨덴의 여성 경제활동 참가율(2013)은 77.9%로 한국보다 1.4배 높다.

애초 스웨덴의 양성평등 고민은 여성 고용 문제 해결 차원에서 시작됐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군나르 미르달 박사가 그의 아내 알바 레이머와 함께 1934년 출간한 <인구문제의 위기>는 당시 스웨덴 사회가 당면한 저출산 문제가 “취업한 여성이 아이를 갖게 되면 직장을 그만둬야 하는 사회구조 때문”이라는 점을 밝혀냈다. 이후 여성의 사회 진출을 가로막는 여러 장애물을 제거하는 일대 개혁이 진행됐다. 직원 3인 이상의 사업장에서 결혼·임신·출산을 이유로 여성 노동자를 해고하거나 급료를 깎는 것을 금지하고 출산휴가 3개월을 인정하는 법을 제정한 것이 1939년의 일이다. 한국에서 3개월 출산휴가가 제도적으로 보장된 게 2001년이니, 맞벌이 부부들에게 스웨덴은 한국보다 60년 이상 앞서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스웨덴 사회는 계속해서 고용과 노동에 있어 양성평등의 가치를 지켜내는 데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스웨덴 노동조합총연맹(LO)은 특히 한국이 도입하려는 ‘시간선택제 일자리’와 같은 시간제 일자리(파트타임)가 확산되는 것을 우려한다. 정부가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홍보하면서 스웨덴 사례를 들지만, 이는 엄연히 ‘100% 풀타임’으로 일하다 육아기에만 근로시간을 줄여 일하는 것으로 전혀 다른 개념이다.

노동조합총연맹 노동생활부의 소드 잉에손은 “육아 등 개인의 필요에 따라 근로시간을 감축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파트타임이 아니라 전일제 근로(풀타임)를 보장하는 게 원칙”이라고 못박았다. 그는 “다른 유럽 국가는 시간제(파트타임) 일자리를 확대하려고 하지만 스웨덴은 정반대다. 시간제 확대는 주로 여성 쪽으로 쏠리게 되고 여성 고용의 질을 떨어뜨린다. 스웨덴 역시 지난해보다 여성 시간제 일자리 비율이 늘었는데 현재 노동조합총연맹은 이 문제에 주목하고 있다”고 했다.

스톡홀름/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한겨레 신문 2014년 10월 3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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