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고3생들의 수능날이다. 수능 한파가 매섭다. 오전 9시, 집에서 나오려다가 딸이 아직 방에 있음을 알고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딸은 대뜸 동생에게 선물을 주었다고 한다. 무슨 선물이냐고 물었더니 어제 밤에 그림과 글을 써서 문고리에 붙여놓았다고 한다. 딸은 병원에서 3일동안 입원하고 어제 퇴원을 했는데도 불편한 몸에도 불구하고 동생을 위하여 따뜻한 마음을 전해주었다.
아들의 수능 10일 전, 아내와 용인의 수련원에 다녀왔다. 전날, 아내에게 단풍구경을 할 겸해서 가자고 하니 냉큼 동의를 한다. 그곳에서 일을 마친 후, 용인 대대리 도자기 공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가는 코스를 일부러 아시아나 골프장을 통과했다. 그 길은 양쪽에 나무들이 하늘을 덮었으며 골프장 정상에서 잠시 차를 세우고 사방을 둘러보니 온 산들이 불타고 있었다. 비로소 가을의 한 가운데 있음을 느끼게 된다. 집에 가는 길에 아웃렛에 들렀다. 그리고 오랜만에 겨울 체크무늬 남방을 구입했다.
밤 10시쯤 집에 도착했다. 문을 여는 순간, 아들은 "다녀오셨어요"라고 인사를 한다. 그런데 평소와 다르게 생글생글 웃으며 인사를 한다. 그 순간, 아들은 아빠가 구입한 옷을 입고 있음을 발견했다. 아들은 ”아빠, 이 옷이 저에게 잘 어울리는데 어떻게 하죠?“라고 말한다. 달라는 얘기다. 아들은 저녁에 엄마를 도와준 무용담을 말한다. 도자기 공방 사장이 무를 한 개를 주었는데 그 무게가 무려 5키로 그램이다. 아내는 깍두기를 담으려고 칼로 썰려고 하니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아서 아들에게 SOS를 보냈다. 그리고 아들은 그 무를 모두 썰었다. 바로 이 점을 어필하며 아양을 떤다. 그리곤 즉시 아빠의 옷을 입은 채로 음식물쓰레기를 들고 밖으로 나간다. 그러면서 ’마무리를 잘해야지요‘라고 너스레를 떤다. 그렇게 오랜만에 구입한 옷을 아들에게 기분좋은 강탈(?)을 당했다.
수능 일주일 전, 아들은 엄마에게 "엄마, 내가 둘째니 친척들이 관심이 없겠지?"라며 다소 어두운 낮빛으로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날부터 선물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무인도에 함께 갔던 한미르 선생이 아들에게 스마트폰으로 피자를 보냈다. 5일전, 사촌누나가 시험을 잘 보라고 아들에게 스마트폰으로 피자를 보냈다. 수능 3일전, 천안에 있는 둘째 이모가 아들과 통화를 한 후에 선물을 보낸다고 전화를 했다. 그리고 전날 떡과 쵸코릿이 도착했다.
수능 2일 전, 오전 수업을 마치고 하교를 하는데 깜짝 놀랐다고 한다. 건물 입구부터 교문까지 레드 카펫이 깔렸으며 양 옆에는 2학년 후배들과 모든 선생님들이 도열하여 힘찬 박수와 함께 응원을 해주었다고 한다. 아들은 “아빠, 비오는 날 카펫 젖으면 걷느라고 고생좀 하겠죠”라며 너스레를 떤다. 그리고 이미 오전에 2학년 때의 담임선생님이 일일이 글씨를 써서 제자들에게 주었으며, 담임선생님도 선물을 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아들이 집에 오자 선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우선 아내에게 큰 누이가 온다고 전화가 왔다. 그리고 낮에 장조카가 30키로의 넘는 거리를 운전하여 전해주었다. 선물비보다 배달비가 더 많이 들은 듯 하다. 그리고 누이에게 전화가 왔다. 손자를 돌봐야 하기에 가지 못함을 미안하다고 말한다. 낮에는 넷째 이모가 보낸 선물이 도착했다. 이미 일주일 전, 아들과 통화를 한 후에 가지고 싶은 물건을 결정했단다. 밤에는 무인도를 함께 갔었던 신이아빠와 한결이의아빠에게 시험을 잘 보라는 덕담의 문자가 왔다고 한다. 아들은 낮에 엄마와 성당에서 기도를 하고 왔으며 선물도 받아왔다.
그 날 밤 11시, 셋째 이모에게 집에 온다는 전화가 왔다. 늦은 밤이라 아들은 1층 현관까지 내려갔다. 이모는 커다란 쵸코릿 2봉지를 아들에게 주었다. 그러면서 순간, 이모는 무슨 맛인지 궁금하다고 하여 아들이 봉지를 뜯고 1개를 맛을 봤다. 그 순간, 아들은 한 봉지를 이모에게 주면서 ‘이것만 해도 충분하니 할머니와 드세요’라고 했단다. 그 말을 듣고 ‘센스가 제법인데..’라며 칭찬을 해주었다. 수능 전날, 외할머니는 붉은색이 기운을 살린다며 석류와 함께 붉은 토마토를 갈아서 한 통을 보냈다. 오후 1시,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아들이 말하길, 점심은 칼국수를 먹고 싶다고 말한다. 그래서 식당에 가서 먼저 선결제를 해주었다. 그러면서 주인에게 부탁하기를, 아들이 오면 ‘특별히 조개를 많이 넣었어요’라고 한 마디를 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밤에 아들은 ‘아빠, 칼국수 잘 먹었어요’라고 한마디를 던진다. 마지막으로 전방 GOP부대의 군인이 보낸 손편지가 저녁에 도착했다. 물론 시험을 잘 보라는 이야기가 적혀있었다. 초등학교시절부터 물고기 카페를 함께 참여하면서 알게 된 형이다. 아들은 “아빠, 재작년에 이 형이 수능을 볼 때, 쵸코릿 사다줬어”라고 말한다. 수많은 친척과 친구들의 응원속에 아들의 기세는 충만해진 듯 하다. 그렇다. 사람은 기가 살아야 한다. 기가 죽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마지막으로 아내는 그동안 매일 성당에 가서 수능 100일 기도를 했다.
자식을 생각하는 엄마들의 마음이야 동서고금을 통하여 모두 같으리라.
권오진:아빠학교 교장/인성발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