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의 한 아파트 놀이터 미끄럼틀 주변에 폐쇄 안내문과 함께 출입금지용 노끈이 둘러쳐져 있다. 27일부터 안전기준 검사를 받지 않았거나 이를 통과하지 못한 놀이터 1600여곳은 일시 폐쇄된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
안전검사 유예기간 종료…현장 가보니
“집에서 게임 하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어디서 놀라는 말인지….”25일 서울 마포구 ㄱ아파트에서 만난 한 입주민은 놀이터 입구를 가로막은 ‘출입금지’용 노끈을 보며 답답해했다. 초등학교 저학년 학부모인 그는 “갑자기 출입금지라고 해놨더라. 입주민들에게 검사 불합격 사유도 안 알려줬다”고 했다.서울 성북구의 ㅅ아파트 놀이터에도 최근 ‘사용금지’ 테이프가 둘러쳐졌다. 주부 박아무개(39)씨는 “초등학교 4학년과 2학년 딸이 자주 이용한다. 겨울철이라 조금 뜸하지만 한번 오면 두세시간씩 놀고 간다”며 갑작스런 폐쇄에 난감해했다. 박씨의 딸은 “놀이터가 없어지면 건너편 아파트 놀이터에서 놀아야 하는데 거기까지 가기 싫다”고 했다. 커다란 상수리나무가 있는 이 놀이터에는 주변 빌라 아이들까지 몰려와서 어울려 논다.전국 1600여곳 설치 검사 안 받아잠정 폐쇄했거나 신규 공사 준비
입주민 “애들 어디서 놀라는 건지”단지 수 적거나 낡은 아파트에선
수천만원 공사비에 부담 느껴
자치구 지원받아 보수·교체하기도27일부터 전국 1600곳이 넘는 놀이터가 일제히 폐쇄된다. 일단은 잠정 폐쇄지만 다시 운영에 들어갈 때를 기약할 수 없는 곳이 많다. 이용 금지 대상 놀이터는 ‘어린이놀이시설 안전관리법’(놀이터관리법)에 따른 설치검사를 받지 않았거나 검사에서 불합격한 곳이다. 놀이시설에서 어린이 안전사고가 늘면서, 정부는 2008년 1월 놀이터관리법을 시행해 시설물 설치·유지·운영에 관한 안전기준을 만들었다. 설치검사와 정기 안전검사 등을 받도록 했는데, 기존에 설치된 놀이터는 4년 안(2012년 1월26일)에 설치검사를 받도록 유예기간을 줬다. 하지만 검사비용 등의 문제로 진척을 보지 못하자 이를 3년 더 연장했고, 이번에 ‘7년 유예기간’이 종료된 것이다. 27일 이후 미검사·불합격 놀이터를 아이들이 이용하면 놀이터 관리자에게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 벌금이 부과될 수 있다.주무부처인 국민안전처는 26일 “지난 23일을 기준으로 전국 6만2057곳의 어린이놀이시설 가운데 설치검사 등을 받지 않은 곳은 1696곳이다. 이 가운데 아파트 등 주택단지 내 놀이터가 1456곳으로 가장 많다”고 밝혔다. 안전처는 27일부터 구청 등 지방자치단체를 통해 현장조사를 하고, 위법 사항이 발견되면 지자체장이 놀이터 관리자를 고발하도록 할 방침이다.유예기간 종료를 앞두고 전국의 놀이터들은 기존 놀이기구를 철거하고 안전기준에 맞춰 시설을 다시 설치하는 등 ‘대란’을 겪었다. 새 안전기준은 그네의 회전 반경부터 재질, 도색된 페인트의 유해 여부, 놀이기구 사이 간격까지 꼼꼼히 규제하고 있다.놀이터 두곳이 설치된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ㅎ아파트는 새 놀이기구 공사를 마치고 설치검사를 받으려고 놀이터 한곳을 폐쇄한 상태다. 다른 한곳은 놀이기구를 모두 걷어낸 뒤 공사를 준비하고 있다. 이 아파트 관리사무소장은 “2003년에 2억원을 들여 만든 놀이터를 모두 철거하고 8000만원을 들여 새로 공사를 했다. 아파트들이 한꺼번에 놀이터 공사를 진행하는 바람에 공사가 늦어졌다”고 했다. 영등포구 당산동 ㅈ아파트는 “놀이시설을 보수해야 하는데 겨울철 공사는 하자 발생이 많고 공사비도 올라갈 수 있다. 3~4월에 공사를 하려고 22일부터 한시적으로 놀이터를 폐쇄했다”고 했다.형편이 어려운 동네의 놀이터는 수천만원의 공사비용이 부담이다. 아파트별로 시설 보수비용을 미리 적립하는 장기수선충당금이 있지만, 단지 규모가 작거나 오래된 아파트들은 자금이 부족해 공사에 애를 먹는다. 이런 동네일수록 아이들 놀이공간은 놀이터가 유일한 경우가 많다.서울 마포구 ㄱ아파트는 3년 전부터 중금속이 검출된 놀이터 바닥 매트를 교체하라는 지적을 받았지만 예산이 부족해 이를 고치지 못하다가 최근에야 자치구 예산 500만원을 지원받아 보수공사를 겨우 마쳤다. 100가구 남짓한 영등포구의 한 아파트 관리사무소장은 “단지에 아이들보다는 노인이 많은 편인데 2000만원을 들여 놀이터 공사를 새로 했다. 입주자들은 낡은 승강기나 녹물이 나오는 배관을 바꾸고 싶어해서 불만이 많았다”고 했다.국민안전처도 이런 문제점을 알고 있다. 안전처 관계자는 “유예기간 연장과 기준 완화 등을 거쳐 7년을 끌어왔는데도 고쳐지지 않는 놀이터는 결국 돈 문제가 크다. 영세한 동네가 정말 문제”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어린이 안전이라는 정책적 목적을 위해 7년 동안 주민들을 설득해 시행한 제도다. 단지별 입주민 연령대나 비용 문제로 관리가 어려운 놀이터는 국토교통부 등 관련 부처와 협의해 해법을 찾도록 하겠다”고 했다.박태우 오승훈 박기용 김규남 기자 eho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