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antcast
Channel: 베이비트리
Viewing all articles
Browse latest Browse all 4145

연필에서 흘러나온 거장의 ‘선’

$
0
0
소를 그린 박수근의 연필드로잉.

연필드로잉 모은 ‘가나아트컬렉션’ 
박수근 35점 30여년만에 공개
유화와 소재 같지만 다른 느낌
단순하지만 옹골찬 선 돋보여
이응노 미공개 담채화·드로잉도

가장 한국적인 화가로 평가받는 박수근(1914~1965)은 밑그림을 어떻게 그렸을까? 박수근 그림하면 그만의 특징인 깔깔한 화강암 표면 같은 화폭의 질감을 곧잘 떠올리게 되지만, 그의 드로잉필선은 아무래도 낯설다. 그림마다 화강암질의 짙은 모노톤 색감이 드리워져 사람, 나무 등의 윤곽을 표현한 특유의 선을 잘 보기 어려운 까닭이다. 애호가들은 유화의 투박한 질감과 색채에 비해 그의 드로잉들은 견실한 구도, 일상에 대한 고백 같은 느낌 등이 묻어나온다고 말한다.

색을 덜어낸 박수근 드로잉의 또다른 매력과 만날 수 있는 드문 자리가 기다린다. 가나문화재단이 서울 관훈동 가나아트센터 전관에서 지난주 시작한 ‘가나아트컬렉션’ 전의 지하 전시장에는 거장의 연필드로잉 35점이 나왔다. 1982년 서울미술관에서 처음 선보인 이래 30여년만에 공개되는 작품으로 가로세로 20cm 미만의 연필소묘작들이다.

그림 소재는 그의 유화들과 비슷하다. 함지박 이고 어디론가 가는 아낙네들, 시장에 가는 사람, 아이업은 여인 등 해방과 전쟁 뒤 어려웠던 시절 보통 사람들의 생활모습들을 질박하게 필선으로 옮겨낸 것들이다. 동화책의 삽화나 우화에 들어갈법한 동물 드로잉, 수렵도·민화에서 모티브를 따온 듯한 작품들도 보인다. 그와 쌍벽을 이루는 거장인 이중섭의 단골 소재였던 소를 그린 드로잉이 유난히 눈길을 붙잡는다.

기운이 펄펄 넘치는 이중섭의 소와 달리 다리를 접고 웅크린 모습을 그렸지만, 소의 몸체를 표현한 단순하면서도 옹골찬 선에서 거장만의 필력과 도량이 엿보인다.

이응노의 담채그림 ‘가게’
이 전시는 국내 메이저 화랑인 가나아트센터 창업자 이호재 회장과 그의 지인들이 수집하고, 관여한 한국근대미술컬렉션들을 갈무리해 보여준다. 지하1층의 박수근 드로잉전 외에 1~5층에 5개의 명품 전시가 각각 차려져 있다. 문자추상으로 유명한 고암 이응노 미공개 드로잉 전과 근대 개화기 외국인들이 그려낸 한국의 풍물화 전, 거장 권진규의 명품 조각들을 감상할 수 있는 한국근대조각전, 청전 이상범·소정 변관식, 이당 김은호, 의제 허백련의 수작들이 나오는 근대한국화 4인전, 안젤름 키퍼, 안토니 타피에스 같은 해외현대작가 7명의 명품전이다. 출품 규모만 회화와 조각, 판화 등 모두 560여점에 달해 미술관 기획전을 방불케한다.

이응노의 담채그림 ‘서울조선호텔 뒤’
특히 생전 엄청난 다작가였던 고암의 미공개 담채화, 드로잉들은 박수근 드로잉과 더불어 이번 컬렉션전의 진수로 꼽히는 작품들이다. 그가 프랑스로 가기 전인 30~50년대 청장년 시절 관찰, 사생한 서울 도심과 시정 풍경, 고향인 충남 홍성의 모습 등을 두루 담고 있어 당대 그림 기록물의 성격도 지닌다. 소품들이지만, 사실적 묘사로부터 대담한 구도와 실험적 수묵표현 등으로 바뀌는 흐름 또한 엿보여 고암의 예인적 기질과 폭넓은 작업반경을 짐작하게 한다.

이 작품들은 재단에서 자료집으로 정리해 펴낼 예정이다. 약동할 듯한 조각가 권진규의 귀기어린 동물, 인물상들도 빼놓을 수 없는 감상거리다. 3월 1일까지. (02)2075-4488.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도판제공 가나문화재단


(*위 내용은 2015년 2월 3일자 한겨레신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Viewing all articles
Browse latest Browse all 4145

Trending Artic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