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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석의 내가 사랑한 그림책] 두렵지만 내게도 방법이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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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비룡소 제공

서천석의 내가 사랑한 그림책

치과의사 드소토 선생님
윌리엄 스타이그 지음, 조은수 옮김/비룡소 펴냄(1995)

아이들은 치과에 가는 것을 싫어한다. 이가 아파 끙끙대면서도 한사코 가지 않으려 든다. 아이들이 치과를 피하는 이유는 치과 시술의 실제 아픔보다는 두려움에 기인한 바가 크다. 무서운 도구를 들고 달려드는 의사 앞에서 입을 벌린 채 가만히 있어야 한다는 것, 아무런 저항을 할 수 없는 무방비 상태로 견뎌내야 한다는 것은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에게도 편치 않은 일이다.

마스크를 쓴 치과의사는 마음만 먹으면 나를 얼마든지 해칠 수 있다. 내 입을 벌리고 그 속에 무서운 도구들을 집어넣어 아픈 이를 뽑겠다고 하지만 언제 그 도구들이 멀쩡한 이를 뽑을지 모르는 일이다. 게다가 이가 전부가 아니다. 다른 것도 얼마든지 뽑아 버리고 마음대로 나를 헤집을 수 있다. 이런 상상을 하다 보면 치과 의자에 편히 누워 있을 수 없다. 자꾸만 등이 들리고, 입이 다물어진다. 물론 이런 소리에 곧 무력화되고 만다. “자, 가만히 있으세요. 그러다 다칩니다.” “입 더 벌려야지 빨리 끝나요.”

<치과의사 드소토 선생님>의 매력은 드소토 선생님이 크기가 작은 쥐라는 데 있다. 큰 동물, 사나운 동물도 많은데 드소토 선생님은 작은 생쥐다. 작은 생쥐는 아이들에게도 무섭지 않은 존재다. 게다가 드소토 선생님은 치과의사인데 환자를 더 무서워한다. 예를 들어 여우 같은 크고 사나운 동물의 입속에 들어가 치료를 하다 보면 언제 잡아먹힐지 모르기 때문이다.

윌리엄 스타이그는 치과의사를 두려워하는 아이들에게 겁내지 말라고 설득하지 않는다. 그저 치과의사인 드소토 선생님을 약자로 설정해 아이들이 치과의사에게 감정을 이입하도록 돕는다. 아이들은 책을 읽을 때 약자에게 감정을 이입하는 경우가 많다. 약자이면서도 착하고 지혜로워 위험을 헤쳐 나가는 인물에게 마음을 둔다. 그것이 자기 모습이고, 자기가 꿈꾸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도 여우에게 잡아먹힐까봐 겁을 내면서도 아픈 여우를 치료해주고, 결국 꾀를 내어 위기에서 벗어나는 드소토 선생님에게 아이들은 푹 빠져든다. 드소토 선생님을 응원하다 보면 어느덧 치과의사는 그리 무서운 존재는 아니다. 이쯤 되면 이 책을 사준 부모의 의도는 목표를 이룬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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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석 소아정신과 의사
물론 이 책의 가치는 아이들의 치과에 대한 두려움을 줄여주는 것 그 이상이다. 아직 경험이 부족한 아이들에게 세상은 위험 그 자체다. 자신은 너무나 작고 세상은 험하다. 여우나 늑대, 사자나 독수리와 같이 거칠고 위험한 곳이 세상이다. 두려움을 이겨내고 더 많은 것을 하고 싶지만 무력감을 느낀다. 그래서 의존하고 싶지 않지만 의존하게 되고, 그런 의존하는 자신이 답답하니 또 짜증을 부린다.

이 책은 그런 세상과 당당히 맞서고 싶은 아이들에게 중요한 깨달음을 준다. 그렇다. 방법이 있다. 머리를 쓰면 된다. 그러면 도망가지 않고 나도 맞설 수 있다. 물론 어떻게 머리를 써야 현실을 극복할지는 여전히 미궁이다. 하지만 드소토 선생님이 통쾌하게 해냈으니 내게도 방법이 있을 거야. 이렇게 아이들은 용기를 얻는다. 그것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히 멋진 책이다.

서천석 소아정신과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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