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아닌 홍역·때아닌 백신 논란
2000년, 미국은 홍역의 종말을 선언했다. 1963년 백신이 개발되기 전까지 미국에서 해마다 300만~400만명을 감염시켜 그중 400~500명의 목숨을 앗아가던 이 전염병이 퇴치됐다는 소식은 낭보였다. 미국은 더이상 홍역을 두려워하지 않게 됐다. 홍역은 제3세계 가난한 나라만의 질병인 양 미국인들의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났다.15년 전 ‘퇴치선고’ 받았던 홍역필리핀 다녀온 여행자가 들여와
디즈니랜드 중심으로 전국으로그 배경에는 엄마들 백신기피증
“백신 맞으면 자폐증 걸린다”
불확실한 논문에 괴담까지 가세
부자일수록 주사 안 맞히는 흐름접종률 뚝 떨어지며 엉뚱한 희생
면역 없는 신생아·소아암환자
자기 의사와 무관하게 위험 노출#지난 10일 7살짜리 소년이 자신이 다니는 초등학교 교육구 관계자들 앞에 섰다. “3년 반 동안 나는 나쁜 병균을 쫓아내기 위해 항암치료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제 나는 암이 사라졌다고 말할 수 있어요.” 연설을 하기 위해 의자 위에 올라선 소년은 마이크를 잡고 말했다. 소년은 “나처럼 항암치료를 받지 않는 이상 모두가 백신을 맞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며 그것이 실현될 때 “우리는 곧 홍역도 사라졌다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라고 또박또박 말했다. 소년은 덧붙였다. “내 이름은 레트입니다. 그리고 내겐 정말 중요한 문제입니다!”3년 반에 걸친 화학요법 치료를 견딘 소년은 1년여 전에 백혈병 완치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오랜 항암치료로 홍역 등 다른 질병에 대한 면역체계는 무너졌다. 그는 아직 백신을 접종할 수 있을 만큼 건강이 회복되지는 못한 상태다. 소년과 그의 가족들이 교육 관계자들에게 ‘개인적 소신에 의한 접종 면제권’을 박탈하고 의무적으로 예방접종을 받도록 강제하는 새 법안에 대한 지지를 구하는 까닭이다. 레트는 전체 유치원생의 84%만 예방접종을 받은 캘리포니아주 북부의 마린 카운티에 있는 학교에 다니고 있는데, 캘리포니아는 소신에 의해 예방접종을 하지 않아도 되는 20개 주 가운데 한곳이다.미국의 새해는 홍역 집단감염과 확산 소식으로 떠들썩하게 시작했다. 한달 새 100여명의 발병자가 보고됐다. 진원지는 ‘어린이들의 천국’으로 불리는 캘리포니아 놀이공원 디즈니랜드였다. 이곳에서 첫 홍역 감염 사례가 발견된 지 두달이 채 안 된 15일 현재 미국 17개 주에서 120명 이상이 홍역에 감염됐다고 미 보건당국은 집계했다.‘국가 공인 퇴치 선고’를 받았던 이 바이러스는 어떻게 다시 미국인들의 삶 한복판으로 귀환했을까?실마리는 지금 미국을 달구고 있는 논쟁에서 찾을 수 있다. 예방접종은 사회 구성원으로서 필수적인 의무인가, 아니면 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선택할 수 있는 문제인가? 홍역 백신을 포함해 특정 백신을 맞으면 아이가 자폐증에 걸릴 수 있다고 믿는 부모들의 예방접종 거부 움직임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생후 4개월 된 모비어스 루프는 홍역 백신을 맞기에는 너무 어리다. 그렇다고 홍역이 그를 피해가지는 않았다. 캘리포니아주 패서디나에 사는 크리스토퍼와 에어리얼 루프 부부의 악몽은 지난 1월31일 시작됐다. 루프 가족이 디즈니랜드에 다녀온 지 13일 만의 일이었다. 간호사인 엄마 에어리얼은 아이가 부쩍 자주 눈을 비비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알레르기 반응이라고 생각했다. 곧 아이는 열이 펄펄 끓었다. 호흡 장애를 보이고 급기야 울긋불긋 발진이 돋았다. 병원에서 홍역 감염 판정을 받았다. “정말 끔찍했어요. 계속 아이가 잘못되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아이가 평생 감내해야 하는 장애를 입거나 목숨을 잃었다고 생각하면…. 백신을 안 맞히는 부모들을 정말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았어요”라고 아빠 크리스토퍼는 <시엔엔>(CNN)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모비어스는 다행히 큰 탈 없이 홍역을 이겨냈다. 하지만 모비어스가 감염된지 모른 채 돌아다닌 식당들과 상점들에서 얼마나 많은 감염자가 발생했을지 몰라 루프 부부는 가시방석이다.
홍역을 발병시키는 홍역 바이러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누리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