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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베이비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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촘백이 만든 평상에 놀러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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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딱뚝딱 만들기 좋아하는 좌린 아저씨, 오늘은 뭘 만드시려는 지 아침부터 바쁘다.
옥상 한가운데 놓인 커다란 철제 프레임, 낯이 익다. 아, 그래. 침대!
삼 년 전 결국 침대를 버렸다. 좌린은 처음부터 푹신한 침대를 불편해했지만 모른 척 내 편한 대로 침대 생활을 고집했다. 장롱 침대 세트는 결혼할 때 엄마가 신경 써서 해주신 거라 함부로 버리기도 아까웠다. 그런데 아이들이 생기니, 아이들이 떨어질까 봐 침대에서 같이 잘 수가 없었다. 어차피 넷이 같이 자는데 침대를 오르내리는 것보다 바닥에서 마음껏 굴러다니는 것이 편했다. 침대는 좁은 집에 자리만 차지하는 애물단지가 되었다. 아이들이 침대에서 방방 뛰는 걸 좋아해서 아쉬워했지만 없애기로 했다.
정확히 말하면 침대를 버린 것이 아니라, 매트리스만 버렸다. 나중에 쓸 일이 있을 거라며 좌린이 철제 프레임과 MDF 원목을 해체해서 베란다 한쪽에 잘 모셔두었던 것이다.
“침대 프레임으로 뭐 만들려고?”
“평상!”
오호, 평상! 옥상에 캠핑용 의자가 몇 개 있긴 하지만, 평상을 두면 더 좋을 것 같다. 여러 사람이 둘러앉기 좋고 아이들이 놀잇감 늘어놓고 놀 수도 있고. 무엇보다 평상은 드러누울 수도 있지 않은가! 한여름의 옥상 바닥은 너무 뜨거워서 돗자리 위에 누우면 찜질방 같았는데. 평상을 만들어 주신다니 좋다, 정말 좋다!
침대 프레임, 매트리스를 받치고 있던 나무판자들, 일명 갈빗살, 이것으로 평상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궁금하지만 묻지 않았다. 내가 아는, 십수 년 보아온 좌린은 치밀하게 계획을 짜고 꼼꼼하게 도면을 그려 이에 필요한 재료를 모아서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일단 저지르고 일을 하는 가운데 방법을 찾아가는 스타일. 뭘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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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완충용 발포 시트를 찾아와 침대 프레임을 덮었다. 언젠가 택배에 딸려온 것을 챙겨 뒀던 거란다. 그리고 한참 동안 갸우뚱 생각에 잠기더니 베란다 수납장에서 사진들을 꺼내왔다. 홍대 앞 프리마켓에서 팔던 사진들, 더 정확히 말하면 팔고 남은 재고들. 십 년 가까이 수납장에서 자고 있던 것을 가져와 나란히 붙였다. 갈빗살의 간격이 촘촘하지 않아서 갈빗살 사이로 발이 빠지는 걸 막기 위해서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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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붙인 종이가 두꺼워서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지. 그리고 이렇게 여러 장의 사진들을 깔아 놓으면 단단한 합판과 달리 쿠션감이 있어 좋아. 사진이 비닐로 포장돼 있으니 습기를 막아주는 역할도 하지 않겠어?”
제작자의 그럴듯한 설명.
하지만, 솔직한 속마음은 이것. “합판을 살까 생각했는데 사러 가기 귀찮잖아.”
어쨌든 우리가 여행하면서 찍은 사진들을 넣어서 만든다니, 평상에 드러눕는 상상이 더욱 즐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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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 나갈 일이 있어 일꾼에게 김밥 사주고 나갔다 왔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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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잔. 장판까지 덮어 완성해 놓았다.
좋지? 평상에 누우니 좋지? 해람아?

 

평상 말고 침대를 분해해서 만든 이전 작품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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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방에 있는 커다란 책상. 아루가 그 앞에 앉아 공주 그림을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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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거실의 우리 책상 앞에 붙여 놓은 아이들 책상. 아이들과 마주 앉아서 각자의 일을 할 수 있다. 아루는 또 공주 그림 그리고 있다.

 

방에 있는 책상은 침대의 헤드(head), 머리 기대는 부분으로 만들었다. 처음에는 여기에 침대 다리를 경첩으로 붙여 썼는데 다리가 들어가지 않아 불편해서 최근에 다리만 사서 바꾸었다.
거실의 책상은 침대 옆 판에 상다리 모아 둔 걸 붙여서 재미로 만들었는데 낮은 상, 높은 상, 두 가지로 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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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에 앉아 쓸 수 있는 낮은 상. 상다리는 내가 대학 때 자취하면서 쓰던 상에서 떼왔다. 너무 더러워지고 패인 자국도 있어 상판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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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댁에서 이미 십수 년, 우리 집에서 수년간 썼던 상에서 뗀 다리에 합판을 덧대어 만든 다리를 펼치면 높은 상이 된다. 어린이집에서 버리는 의자 두 개 주워 왔더니 높이가 딱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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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린은 솜씨가 좋다. 버리는 물건에서 쓸모를 찾아내는 멋진 재주가 있다. 그리고 특히 마음에 드는 것은 뭘 해도 돈이 별로 들지 않는다는 사실!

촘백이 촘백이 서울 가는데
기차 삯 3 천원이 너무나 비싸서
헤이, 걸어가겠네, 걸어가겠네
남이야 걸어가든 남이야 타고 가든

다 같이 서울 가긴 마찬가지지.
좌린이 어디선가 듣고 종종 흥얼거리는 이 노래는 ‘촘백이 타령’이라는 구전 민요이다.  3천원 없어 걸어가지만 좋은 차 타고 가는 남들 부러워하지 않고 '다 같이 서울가긴 마찬가지'라고 하는 것이 좌린의 멘탈과  닮았다. 좌린이 버려진 물건으로, 필요한 물건 만들어 내는 걸 우리는 '촘백이 DIY'라고 부른다.
“비싼 돈 내면 더 매끈하게 만들 수 있겠지. 하지만, 좋은 재료로 잘 만드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잖아. 비용 대비 만족도가 떨어진다구. 그런데 돈 안 들이면 조금만 잘해도 엄청 뿌듯하잖아? 내 맘대로 막 해볼 수 있는 것도 좋고. 내 생각대로 만들면 물건에 대한 애정도 깊어지는 것 같아.” 좌린의 말씀.
이렇게 근사한 평상을 만드는 데 쓴 돈은 겨우 자투리 장판 값, 그리고 약간의 인건비(치맥 시켜줬다!)가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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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뚝딱뚝딱 뭘 만들기 시작하면 아이들도 신이 난다. 어떤 물건이 아빠 손을 거쳐 새로운 물건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즐겁게 바라본다.
아빠, 이건 뭐야? 어떻게 쓰는 거야? 왜 이렇게 생겼어?
망치, 톱, 드릴, 등의 공구, 신기한 물건들 구경하는 재미도 있다. 좌린은 되도록 아이들에게 직접 공구를 만져보고 써보라고 권한다. “위험하니까 저리 비켜!”라고 쫓아내는 것보다 위험 상황을 미리 이야기해주고 같이 해보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다.
침대 프레임에서 떨어지지 않고 한 바퀴 도는 놀이, 쓰고 남은 발포 시트와 장판 자투리로 모양을 오리고 인형을 만드는 놀이, 아이들도 아빠 곁에서 새로운 놀이를 만들어 잘 놀았다.
거창의 아버님도 손으로 만드는 걸 즐겨 하신다. 좌린은 초등학생 때 부모님으로부터 공구 세트를 생일 선물로 받았단다. 좌린이 공구를 잘 다루고 솜씨 좋게 물건을 만들어내는 것은 어려서부터 자연스레 배운 것이리라.
평상에서 노는 아이들을 보며 미래의 아이들 모습을 그려본다. 우리 아이들도 화려한 상품에 현혹되지 않고 스스로 만들어 쓰는 즐거움을 느끼며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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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만든 평상에서 이웃들과 잠깐씩 수다를 떨고 동네 아이들이 몰려와 놀기도 한다. 안 그래도 집으로 사람 불러들이기 좋아하는 우리는 요즘 만나는 사람마다 우리 집에 가자고, 우리 집 옥상에 멋진 평상 있으니 거기서 놀자고 붙잡느라 바쁘다. 스페인에 잠시 살고 있는 친구가 페이스북에 ‘옥상 음악회’ 사진을 올렸던데 크게 민폐만 안된다면 이런 것도 해보고 싶다.
놀러오세요, 놀러 와!
평상에 앉아 커피 한 잔 마실까요?
아니, 쌈 채소 팍팍 뜯어 넣고 밥 비벼 먹을까요?
저기 구석에 옥수수도 심었어요. 몇 개나 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평상에 앉아 같이 옥수수 하모니카 불면 정말 좋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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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이야기
“근데, 이 평상 다리는 뭐지? 새로 산 건가?”
평상에 누워 이제 침대 부속은 다 쓴 건가, 생각하다가 문득 침대 다리가 떠올랐다. '침대 다리는 MDF 원목인데, 평상 다리는 철제네. 그러면 침대 다리는 어딘가 아직 있을 테고, 그럼 이 평상 다리는?'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아, 그거? 소파 버릴 때 떼 놓은 거지."
알고 보면 무척 꼼꼼하다, 이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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