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삼월’이라고는 하지만 봄을 시샘하는 꽃샘추위에 선뜻 바깥나들이를 나서기 부담스러운 요즘. 때론 아이 손을 잡고, 때론 부부끼리 오붓하게 영화관 나들이를 즐겨보는 건 어떨까? 때마침 아이와 함께 보기에 좋은 지브리 애니메이션 <추억의 마니>와 위기상황을 둘러싼 부부의 상반된 심리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외화 <포스 마쥬어: 화이트 베케이션>이 관객을 찾아온다.
<추억의 마니>의 한 장면. |
요양지서 ‘비밀 우정’ 쌓으며 밖으로
일본 애니메이션 명가 지브리 신작애니메이션 명가인 일본의 스튜디오 지브리가 올해로 탄생 30주년을 맞았다. 지브리의 신작 애니 <추억의 마니>(19일 개봉)는 <이웃집 토토로>(2001), <귀를 기울이면>(2007), <코쿠리코 언덕에서>(2011)처럼 지브리의 단골 소재인 ‘한 소녀의 성장기’라고 할 수 있다.천식을 앓는 12살 소녀 ‘안나’는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힘들어 한다. 학교에서도 늘 혼자 그림을 그리며 혼자 지낸다. 공기 좋은 시골에서 요양하기 위해 엄마 대신 자신을 키워준 아줌마의 지인이 사는 홋카이도의 바닷가 마을로 가게 된 안나. 한적한 마을의 낡은 저택에서 금발의 또래 소녀 ‘마니’를 만나게 된다. 마니와 안나는 서로의 만남을 비밀로 유지하며 우정을 쌓아간다. 하지만 밤새 떠들썩하게 파티를 했던 저택은 다음날 찾아갔을 때 어제와 달리 텅 비어 스산하기만 하다. 점점 더 불가사의한 일이 반복되던 어느날 ‘마니의 일기장’이 발견되고, 안나는 그 일기를 통해 놀라운 비밀에 다가가게 된다.영화는 소녀 ‘안나’가 시공을 초월한 판타지적인 경험을 하며 점차 성장해나가는 이야기를 담는다. ‘추억’은 단순히 현실을 다독일 위안거리가 아니라 현실의 어려움을 딛고 일어설 힘을 주는 요소다. 가족에게 버려졌다는 아픔에 갇혀 외로움과 고립감을 자초했던 안나는 마니와의 만남을 통해 ‘관계 맺는 법’에 대해 깨닫게 되고, 사람들의 진심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도 찾게 된다. 안나가 어렵게 사귄 새 친구들을 두고 집으로 향하는 마지막 장면은 더이상 관계 맺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만큼 성장한 안나의 모습을 보여준다.<추억의 마니>는 1967년 출판된 영국 아동문학의 걸작 <웬 마니 워즈 데어>를 원작으로 한다. 영국이 무대인 원작을 고스란히 일본 홋카이도로 옮겨와 신비스러운 비밀을 간직한 습지를 배경으로 현실과 환상을 오가는 몽환적 분위기를 잘 살려냈다. 지브리의 애니가 전세계적으로 사랑을 받은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아름다운 주제가. 한국계 미국인 싱어송라이터 프리실라 안이 부른 ‘파인 온 더 아웃사이드’는 지브리 최초의 외국어 주제가다. 어쿠스틱 사운드에 실린 부드럽고 순수한 목소리가 귀를 사로잡는다.아이와 함께 보기를 권한다. 따뜻한 감성 충전은 물론 영화 관람 뒤 한뼘쯤 더 자란 아이의 마음과 마주할 수 있을 듯하다.
<포스 마쥬어>의 한 장면. |
생존 본능 앞 남편은 혼자 달아나
우리 관계 다시 회복할 수 있을까가족들과 함께 여행을 갔다가 상상치 못했던 ‘재난’을 당한다. 가족은 서로를 위해 희생하며 ‘가족애’를 다진다. 본래 ‘재난영화’의 공식이란 늘 이런 식이다. 하지만 영화 <포스 마쥬어: 화이트 베케이션>(12일 개봉)은 이런 재난영화의 공식을 비웃듯 비켜간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영화는 재난영화를 가장한 부부 심리극에 가깝다.일에 쫓겨 변변한 휴가를 쓰지 못했던 토마스(요한네스 쿵케)는 큰맘을 먹고 아내 에바(리사 로벤 콩슬리)와 아들·딸을 데리고 알프스 스키 여행을 떠난다. 야외 식당에서 즐거운 점심을 즐기던 토마스 가족은 ‘거대한 눈사태’처럼 보이는 위험천만한(?)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 문제는 상황이 종료된 뒤 정신을 차린 에바가 남편을 찾았을 때 벌어진다. 가족을 구하고 영웅이 됐어야 할 남편은 스키장갑과 아이폰을 챙겨 먼저 도주를 한 것. 에바는 아무렇지 않게 식당으로 돌아온 남편을 보고 분노한다. 잘못을 깔끔하게 인정하고 사과라도 하면 좋으련만. 토마스는 “내가 기억하는 상황은 당신과 다르다”며 계속해서 이야기를 회피한다. “다친 사람이 없으니 다행”이라며 상황을 수습해보려고도 하나 부부의 관계는 냉랭하고 아이들은 눈치를 보느라 덩달아 안절부절이다.영화 제목인 ‘포스 마쥬어’는 통제하거나 저항하기 어려운 본능의 강력한 힘을 뜻한다. 자, 과연 가족에게 위기가 닥쳤을 때 ‘생존본능’이 우선인가, ‘가족에 대한 책임감’이 우선인가? 어느 쪽이 저항하기 힘든 본능인가? 흔히 ‘부성애’를 본능처럼 여기지만 그것 역시 환상일 수 있다고 말하며 감독은 관객에게 계속해서 질문을 던진다. 영화 속 또 다른 재미는 토마스 부부의 싸움을 바라보는 친구 커플의 반응이다. 남자는 “생존본능은 불가항력”이라고 토마스 편을 들고, 여자는 “토마스가 무책임했다”고 몰아붙인다. 싸움은 결국 친구 커플에게까지 번져 밤새 계속된다. 관객 역시 둘 중 한쪽의 편으로 감정이입을 하며 싸움에 말려들기 십상이다.뜻밖의 결말 역시 재밌다. 남편을 욕하는 아내 입장을 두둔하는 것처럼 보였던 감독은 결국 “역시 생존본능 앞에 남녀가 따로 없다”는 듯 작은 반전을 보여준다.부부끼리 보면 좋겠다. 서로의 심리를 객관적 입장에서 바라보는 계기가 될 듯하다. 지난해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심사위원상을 받았다.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위 기사는 2015년 3월 10일자 인터넷한겨레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