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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아들과 아버지의 ‘세상 밖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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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인지원법 제정, 부양의무제 폐지, 원전 반대를 외치며 다섯번에 걸쳐 3000㎞를 걸은 부자가 있다. 사회복지사 이진섭씨와 발달장애인 아들 균도씨. 2013년 6월10일 두 사람이 5차 걷기를 제주에서 마무리하며 시민들의 환대를 받고 있다. 부자가 걷는 동안 장애아동복지지원법(2011)이, 2014년엔 발달장애인지원법이 제정됐다. 에이블뉴스 제공

다섯번에 걸쳐 3000km 걸어
장애지원법 제정 불씨가 되다
아빠는 직장암, 엄마는 갑상선암
원전 따라 걸으며 탈핵운동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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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균도
이진섭 지음/후마니타스·1만5000원

생명이 탄생하는 묘하디묘한 과정을 보면, 일단 보고도 못 믿겠고, 다수가 정상인 게 오히려 비정상적인 듯하다. 목숨이 붙어가는 단계마다 얼마나 복잡하고 세밀한지 조금의 오류쯤은 수긍될 정도이고, 그 신비로운 경과를 똑같이 거쳤다는 점에선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도 흐려진다. 장애를 비정상이라고 하기가 어려워진다.

이균도씨와 아버지 이진섭씨는 살고 있는 부산으로부터 수백 킬로미터를 걸었다. 2011년 3월12일 출발해 40일이 걸렸다. 특수학교를 졸업하고 20살이 되자 장애아동 수당이 끊기고 더 이상 갈 곳도 없는 균도씨와 아버지는 부양의무제 폐지, 발달장애인법 제정을 촉구하는 대자보를 몸에 붙인 채 걷기로 했다. 균도씨는 자폐성 장애 1급, 아버지는 직장암. 그제야 세상이 조금 웅성거렸다. 목적지는 서울. 그래야 장애아동과 발달장애인 복지를 문제화할 수 있었다. 부자의 ‘세상 밖으로 걷기’는 정상인이 주류이면서도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했던 사회에 질문했다. 장애인이 비정상이고 쓸모없는 존재인가. 균도씨의 걷기는 장애아동복지지원법과 발달장애인지원법 제정의 불씨가 됐다. 등록장애인 250만명, 추산되는 가족 1000만명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장애인복지 관련 법을 벼리는 데 기여했다. 보통사람은 쉽게 이뤄내지 못하는 일이다.

두 사람은 전국 구석구석을 걸으면서 다운증후군 아이를 둔 아빠, 발달장애 손녀가 있는 노부부, 지역 장애인부모회 등 많은 장애인 가족을 만나게 된다. 당당히 세상으로 나왔을 뿐 아니라 “국가가 주도하는 사회 시스템에서 장애인을 배제했다는 것은 국가가 주도적으로 장애인을 차별하고 억압했다는 점”을 상기시키고 떳떳한 권리를 요구하는 모습에 흩어져 있던 장애인 가족들이 모여 연대하기 시작했다. 점선도 촘촘해지면 결국 실선이 된다. 부자의 동선은 힘없는 개인들을 이어 붙여 팽팽한 목소리를 내는 집단으로 묶어냈다. 1000만의 이 집단은 “결코 소수가 아니다.”

지은이 ‘균도 아빠’는 사회복지사가 됐다. 아들과 나머지 가족의 행복을 위해 장애인복지 운동에 뛰어든 것. 장애아동복지지원법과 발달장애인지원법 제정을 주창한 건 장애인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경험과 사회복지사로서의 이론을 겸비했기 때문이다. “19살 이하 장애인 중 63%가 (날 때부터 장애인인) 발달장애인이다. 그래서 장애아동복지지원법이 시급한 것이다. 또 아이들은 특성이 너무 다양하며 생애주기 별로 필요한 것도 다 다르다. 그래서 발달장애인법 제정이 절실”했다. 균도씨만 해도 한번 기억한 것은 잊는 법이 없어 육십갑자를 인터넷보다 빨리 대답하고, 3살 때 혼자 한글을 깨쳤으며, 신문 기사의 오자를 다 찾아낸다. 이렇게 보통사람을 능가하는 능력이 있음에도 “발달장애인은 노동의 기회마저 갖지 못한 채 가차 없이 빈민으로 내몰리고” 법은 장애를 1~6급까지 나누면서도 발달장애는 1~3등급으로만 구분해 장애아동의 개성과 재능을 일찍부터 더 간소화해버렸다. 무엇보다 장애 1~3급은 중증, 4~6급은 경증인데 “발달장애인은 1~3급만 있어서 다 중증”인 체계는 코미디다.

아빠는 직장암, 엄마는 갑상선암, 외할머니는 위암에 걸렸고 균도씨는 자폐로 태어났다. 가족은 평생을 고리원전 근처에서 살았다. 지은이는 한국수력원자력을 상대로 건강권 소송을 냈고, 동해안 원전들을 따라 네번째로 나선 800㎞ 길에서 탈핵을 외치며 장애인운동은 탈핵운동으로 확대됐다. 1심은 승소했다. 하지만 부자에겐 이것도 끝이 아니다. 가족인 부양의무자가 죽어야 수급권자가 사는 부양의무제 폐지가 남았고, 탈핵운동은 시작에 불과하다.

선진사회는 스케일이 다르다. 장대한 규모가 아니라 앞선 도량이. 음악에선 한 조성의 음계를 순서대로 하나하나 다 연주하는 걸 스케일이라 한다. 한 공동체의 스케일 역시 구성원 낱낱을 되도록 빠짐없이 돌보는지로 헤아릴 수 있다. 장애인과 그 가족, 원전지역 주민은 이미 소수가 아니다. 다수의 약자인 이들을 돕지 않고서는 선진사회로 갈 방법이 없다.

석진희 기자 nin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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