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을 20여일 앞둔 지난해 1월9일 경남 거창군 거창읍 대평리의 거창 거점산지유통센터에서 거창 사과를 자동 선별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제의 창] 생활 속 과학
과일당도 비파괴 측정기술의 세계
과일당도 비파괴 측정기술의 세계
음파로 두드려 과숙·피수박 골라
갈변 등 내부 결함도 빛으로 추출
사과·귤·배·복숭아·수박 적용
농산물유통센터서 취합 선별 인증과거에는 표본(샘플) 과일을 골라 과즙을 내어 당도를 측정했지만 최근에는 비파괴 당도 측정기로 전수 검사를 하는 추세다. 비파괴 측정 중 처음 도입된 방법은 1963년 미국 농무부 소속 칼 노리스가 개발한 근적외선 분광분석법이다. 근적외선은 사람이 눈으로 볼 수 있는 가시광선의 빨간색보다 파장이 긴 적외선 중 상대적으로 파장이 짧은 범위(800~2500나노미터)의 빛을 말한다. 가시광선에 비해 산란 영향을 적게 받고 각종 물질마다 반사되는 특성이 달라 과일에 흠집을 내지 않고 속을 들여다보는 데 알맞다. 이 기술을 이용해 일본에서는 1980년대 말 복숭아 당도를 측정하는 기기를 만들었다. 우리나라 농촌진흥청도 1989년 최초로 반사식 비파괴 과일 당도 선별기를 개발했다.근적외선으로 당도를 측정하는 원리는 간단하다. 사과에 빛을 쬐어 반사돼 나오는 빛의 파장을 재는 것이다. 당은 특정 파장의 근적외선을 흡수하는 성질이 있는데, 반사된 빛 가운데 근적외선이 적으면 과일 안에 당이 많이 들어 있다는 얘기다. 농촌진흥청 산하 국립농업과학원의 임종국 농업연구사는 “과일 안에 당이 셀 수 있는 알갱이 형태로 들어 있는 것이 아닌데다 특정 파장의 빛에 비슷한 반사를 보이는 다른 물질들도 들어 있어 반사되는 근적외선을 모으기만 해서는 당도를 정밀하게 파악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빛이 나온 파장을 표시한 스펙트럼과 실제 과일을 즙을 짜서 측정한 당도를 비교해 데이터를 쌓고 분석해 근적외선 흡수와 당도의 상관관계를 나타내는 공식을 정밀하게 만들어야 한다. 신맛 정도를 나타내는 산도도 측정하지만 측정 범위가 좁고 과일 속에 산을 함유한 물질이 적어 당도에 비해 몇배 더 어렵다. 근적외선 선별기로는 당·산도뿐만 아니라 밀도와 경도, 사과의 갈변처럼 내부 결함도 알아낼 수 있다.비파괴 선별 방법에는 음파를 이용한 것도 있다. 수박의 경우 음파로 두드려 나는 소리를 분석해 미숙 과일인지, 피수박인지, 공동이 있는지 등을 걸러낸다. 피수박은 과육의 조직이 파괴돼 흐트러져 마치 피가 들어 있는 듯한 경우를 말한다.현재 전국 농산물산지유통센터 400여곳 가운데 350여곳에 사과, 귤, 배, 복숭아, 수박 등의 비파괴 선별기가 보급돼 있다. 딸기와 포도 선별기는 개발을 완료했지만 딸기는 과육이 약해 다루기가 힘들고 포도는 위와 아래의 당도 편차가 커 현장 보급은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김영태 농업기술실용화재단 선임연구원은 “비파괴 선별기의 정밀도를 주기적으로 검정해 정확한 당도 측정을 유도하고 있다. 농산물산지유통센터나 영농조합을 통해 출하되는 과일들은 측정 과정을 거쳐 기본적인 당도가 보증된다”고 말했다. 조주현 한국농산물품질관리원 품질검사과 주무관은 “2000년대에 한때 당도 표시를 의무화했지만 생산자나 유통업체들이 판매에 부담을 느껴 지금은 권고 표시사항으로 바꿨다. 소비자들의 요구가 높아지면서 점차 당도 표시를 하는 농가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과일에 당도 표시를 할 때는 상자에 몇 브릭스인지를 수치로 적는 방법을 쓴다. 일부 대형 할인매장에서는 당도 선별을 마친 과일이라는 표시를 하거나 자체적으로 당도 수치를 게시하기도 한다.휴대용 근적외선 당도 측정기도 나와 있지만 1대당 1천만~2천만원대여서 일반 농가에서 사용하기에는 부담이다. 최근엔 몇백만원대 제품도 나오지만 시장 진입에 실패했다. 미국에서는 사과나 귤이 들어갈 정도의 소형 자기공명영상(MRI) 장치를 개발하고 있다. 이 역시 가격이 비싸 실제 농가에 적용하기까지는 많은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
진짜 그래요?
Q. 요즘 하우스 재배 과채류가 단 이유는 설탕물로 키워서다?과일 가운데 가장 당도가 높은 것은 포도다. 한국농산물품질관리원의 과일 당도 등급표를 보면, 포도 델라웨어 품종의 경우 당도가 18브릭스 이상이어야 ‘특’ 등급을 표시할 수 있다. 후지 사과와 서촌조생 단감은 14브릭스 이상, 서미골드 복숭아·한라봉·천혜향·멜론은 13브릭스 이상이 특 등급이다. 대체로 과실수 과일들이 당도가 높은 데 비해 과채류는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수박과 참외는 11브릭스 이상이면 특 등급으로 분류한다.수박을 재배할 때 잎에 칼슘제 화합물 등 양액을 뿌려 당도를 높이기는 하지만 수박 열매나 줄기를 설탕물에 담그거나 설탕물을 열매나 잎에 직접 뿌린다고 당도가 높아지지는 않는다. 농도가 높은 설탕물에 담그면 오히려 삼투압 현상으로 작물에서 물이 빠져나와 상품화에 손해가 될 수도 있다.Q. 꿀사과는 상등품이다?사과의 과육 가운데 얼음이 박힌 것처럼 꿀 같은 농축액이 뭉쳐 있는 것들이 있다. 시중에서 꿀사과 또는 얼음사과라고 선전하며 특수 상품으로 팔리기도 한다. 엄밀히 말하면 생육장애로 과육 조직 일부에 과당이 축적되는 현상이다. 과실이 너무 크거나 햇빛에 너무 노출됐을 때, 수확 시기를 놓쳤을 때, 성숙기에 일교차가 너무 클 때 생긴다. 광합성으로 만들어진 포도당이 소르비톨이라는 백색의 작은 알갱이로 변해 과실 안에 축적된 것으로 밀증상 또는 밀병이라고 한다. 하지만 며칠 놔두면 갈색으로 변하는 갈변 현상으로 발전한다.불량품인 갈변 사과는 근적외선을 쬐어 골라낸다. 이때 밀병 사과도 함께 선별된다. 근적외선은 껍질에서 10~15㎜밖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러나 꼭지 쪽으로 쬐면 갈변이나 밀병이 주로 생기는 씨방 부근의 과육 상태를 파악할 수 있다. 꿀사과는 밀병이 갈변으로 변하기 전에 빨리 먹는 것이 좋다고 전문가들은 권한다.이근영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