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생리를 시작했을때 부터 주기가 불규칙했다.
고등학교때는 1년에 딱 두 번 했었다.
여름방학에 한 번, 겨울 방학에 한 번이었는데 그야말로 6개월치가 한번에
나오는 것 만큼 몸이 힘들기는 했다.
친구들은 편하니까 좋은거 아니냐고 부러워도 했지만 나는 좀 걱정이 되어서
대학때 병원을 찾은 적도 있었다.
그때 나를 진찰한 의사는 '처녀의 생리 주기는 하나님만이 알 것'이라는 말로
내 걱정을 날려 주었다. 1년에 두 번을 하든, 세 번을 하든 생리가 일어난다면
그것도 주기가 될 수 있다고 하신 것이다. 그래서 그때부턴 걱정않고 살았다.
서른 세살의 늦은 나이에 결혼을 했는데 신기하게도 평생 불규칙하던 생리는
결혼한 그 달부터 딱딱 한달만에 나와 주더니 석달만에 첫 아이를 가졌다.
결혼과 동시에 내 인생의 모든 주기가 순리를 찾았구나.. 감격한 순간이었다.
첫 아이 낳고 23개월 간 수유하는 동안은 생리가 멈추어 있었고,
서른 일곱에 둘째 낳고는 한창 수유중인 14개월에 생리가 찾아왔다.
막내때는 생리가 찾아오는
시기가 더 빨랐다.
몸이 그만큼 좋아진거라 생각하고 상관없이 수유를 계속하다
38개월만에 끊었다.
3월 1일에 생리가 시작되길래, 날이 날인지라 한층 경건하게 내 몸을 돌보았고,
4월 1일에 또 생리가 시작되길래 만우절답게 명랑한 마음으로생리를 맞이하셨다.
그래서 5월 1일 근로자의 날 기념으로 생리가 오려니... 맘 놓고 있었다.
그런데..... 안 왔다.
어린이날 쯤 오려나? 어버이날 쯤? 아니면.. 스승의 날 무렵?? 설마 부처님 오신날????
5.18도 지나고, 부부의 날도 지나면서부터는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워낙 주기가 정확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결혼하고 이렇게까지 늦추어 졌던 적은 없었다.
안그래도 요즘 안 오던 어지럼증도 있는 것이 그럼.. 혹시... 그래서?
자그마한 모래알 한 알에서도 심하게 창대한 바다를 보는 내 넘치는 상상력은
금새 초특급 심리 스릴러 어드벤쳐 영화 한 편을 써내려 가기 시작했다.
올 해 내 나이 마흔 넷. 지금 넷째가 생기면 마흔 다섯에 출산, 막내와는 다시 네 살 차이..
아아아. 내 몸이 감당해 낼 수 있을까?
아이들은 좋아하겠지. 철이 없으니까.. 그저 또 한명의 아이가 생기는 구나, 신나할꺼야.
일흔 넘으신 친정 엄마는 올 7월에 막내 여동생이 둘째를 낳은 것으로 당신 인생의
출산도우미 역할을 끝내는 것으로 알고 계시는데 내가 넷째를 가졌다는 것을 알면
얼마나 망연해 하실까.
아직도 내 품을 파고드는 우리 막내는 불쌍해서 어쩌나. 언니노릇, 누나 노릇 할 수 있을까?
그건 그렇고 셋째 출산때에도 자궁경부가 약해서 출혈이 심했는데 이번에도 가정 분만을
할 수 있을까? 젖은 또 제대로 나올까? 세 아이는 천 기저귀 썼지만 이번엔 종이기저귀를
쓸지도 몰라.
이름은.... 막내와 똑같이 한글 이름으로... 음... '다움'이는 어떨까. 자기 답게 살라고
'다움'.. 왠지 근사하네? 세상에 언제 또 이런 이름을 맘 속에 품고 있었던가?
정말로 진짜로 넷째를 바라왔던 거야?
겨우 막내 젖 떼고 요즘 부쩍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많아져서 강의도 하러 다니고
글도 더 의욕적으로 쓰고 있는데, 다시 임신에 출산, 수유에 신생아 돌보는 그 전쟁같은
삶으로 돌아갈 수 는 없어, 정말 더 이상은 안돼...
이런 소설을 쓰기 시작하니 잠도 안 왔다.
병원에 가서 확인해 보거나, 임신 진단 시약이라도 사다가 테스트 해 보면 되겠지만
설마 설마 진짜 그런 일이 사실로 드러날까봐 선뜻 나서지지가 않았다.
이런 생각에 빠져 지내니까 몸도 더 으실으실 이상스럽게 느껴지고 빈혈기가 있는 듯
어지러운 것도 같고, 난데 없이 남편이 운전하는 차를 타면 멀미까지 느껴졌다.
바야흐로 모래알 하나가 창대한 쓰나미를 일으키고 있었다.
어제서야 난 드디어 약국에 가서 진단키트를 사 왔다.
그리고 새벽에 비장한 마음으로 혼자 일어나 욕실로 들어갔다.
진단키트에 소변을 적셔 결과가 나오기까지 그 짧은 순간이 흡사 영원처럼 길게 느껴졌다.
결과는.....
붉은 줄 하나... 임신이 아니었다.
그럼 그렇지.. 그래도 간혹 이 진단키트로도 임신이 확인 안 되는 경우도 있다잖아?
끝까지 의혹을 풀지 못하고 있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그 분이 와 있었다.
속옷에 묻어 있는 붉은 흔적이 이토록 반가울 수가...
중반부를 넘어 클라이맥스로 치닫고 있던 초특급 심리 스릴러 어드벤쳐 영화는
금새 시시한 코믹물로 변해 버렸다. 나는 실실 웃으면서 이참에 철분제를 좀 먹어볼까 생각했다.
남편은 셋째를 낳으면 바로 수술을 하겟다고 약속하더니 차일 피일 미루고 있었다.
알고보니 비용이 너무 비싸다는 둥 말도 안되는 소리를 늘어 놓으며 언제부터인가
얘기조차 꺼내지 않고 있는데 이번 기회에 대놓고 외치고 싶다.
남편이여.. 하루 빨리 약속 이행하라..
더 이상 스릴과 어드벤쳐가 넘치는 삶은 거부한다.
행복한 성생활을 위해 당신의 실천이 필요하다.
빠른 약속 이행, 부부 행복 보장한다, 보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