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antcast
Channel: 베이비트리
Viewing all articles
Browse latest Browse all 4145

지역 먹거리로 1년 살기 그 위대한 기록

$
0
0
유기농산물을 전문으로 파는 캐나다 밴쿠버의 홀푸즈마
켓. 유기농 중에서도 운송거리가 짧아 이산화탄소 배출
이 적고 생산자가 쉽게 확인되는, 밴쿠버 주변 산지의 로컬푸드가 가장 비싸게 팔리고 있다. <한겨레>자료사진
유기농산물을 전문으로 파는 캐나다 밴쿠버의 홀푸즈마 켓. 유기농 중에서도 운송거리가 짧아 이산화탄소 배출 이 적고 생산자가 쉽게 확인되는, 밴쿠버 주변 산지의 로컬푸드가 가장 비싸게 팔리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밀을 구할 수 없어
순무로 만든 샌드위치 먹고
쥐똥과 밀알을 분리한 끝에
드디어 밀 맛을 보다
143160370612_20150515.JPG
농장에서 식탁까지
100마일 다이어트

앨리사 스미스·제임스 매키넌 지음
구미화 옮김/나무의마음·1만3500원

“먹거리만 먼 거리를 이동하는 게 아니다. 우리 역시 먹거리로부터 매우 멀리 떠나왔다.” 자급자족의 과정을 버리면서 요리하는 시간을, 공장에서 나온 고칼로리 식품을 통해 음식 섭취하는 시간을 줄인 우리는 먹거리, 곧 자연으로부터 참말이지 멀어졌다. 주문 한 번으로 높은 열량을 섭취할 수 있는 지금이지만 이게 가능해진 건 수십년밖에 안 됐다. 이 고열량의 질은 유기농이라 하더라도 다 믿을 수 없고, 좀 산다는 나라들에선 음식이 썩어난다. “산업혁명과 비교할 만한 대량생산 혁명이 음식에도 일어난 것”이다. 인류는 식생활의 거대한 전환을 거치고 있다.

“이런 변화의 책임은 어떤 식으로든 인간에게 있고, 중요한 건 죄책감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책임감을 가지는 것”이라는 캐나다 프리랜서 기자 커플인 지은이들은 북미 사람들이 먹는 식재료가 평균 1500마일(서울~부산을 3번 왕복하는 거리) 이동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먹거리의 이동거리가 석유 사용량과 비례한다는 공공연한 비밀이 결정적 계기”가 되어, 둘은 살고 있는 밴쿠버로부터 100마일 안에서 생산된 음식만 1년간 먹기로 한다. 그 1년의 기록이 묶여 2007년 나온 이 책은 베스트셀러가 됐고 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왕성히 읽히고 있다. 당시까지 모호했던 북미의 로컬푸드 개념이 이들의 실험으로 ‘100마일 푸드’란 기준을 얻었기 때문이다.

일단, 독했다. 우리로 치면 쌀 없이 7개월을 버텼으니까. 밀을 구할 수 없었다. 100마일 다이어트 두달째. “아, 샌드위치 먹고 싶어 죽겠어!” 앨리사는 탄수화물을 향해 포효했다. 요리를 전담하는 제임스. “알았어, 내가 만들어줄게.” 앨리사는 속재료를 양쪽에서 받치고 있는 빵같이 생긴 재료를 보고 빵 터졌다. 그것은 빵처럼 잘라놓은 순무. 둘은 눈물이 날 정도로 웃다가 ‘순무 샌드위치’를 맛있게 먹었다고 쓴다. 밀가루가 없다는 도전에 대한 응전으로 임기응변과 상상력이 발달해가던 7개월째, 짐이라는 농부에게서 지난해 재배해둔 밀이 있다는 확인을 받는다. 밀 상태는 참혹했다. 제빵업체에서 퇴짜를 놓아 그해에는 농사를 짓지 않아서 갓 수확한 것은 없고, 저장해둔 밀은 동네 쥐들의 양식으로 유통되고 있었다. 그래도 왕겨가 붙어 있는 채였다. 집에 돌아온 제임스는 신용카드로 쥐똥과 밀알을 분리하고, 겨를 낱낱이 벗겨낸 끝에, 밀로 음식을 만들 수 있었다.

설탕도 없었다. 둘은 설탕보다 오래 인간에게 단맛을 전해준 꿀을 찾아 나선다. 양봉가 돈 부부를 만난다. 민들레꿀, 블루베리꿀, 호박꿀, 메밀꿀 등 처음 느껴보는 달콤함에 빅뱅으로 팽창하는 단맛의 세계. 돈의 말이다. “양봉을 한다는 건 한쪽 발을 과거에 걸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100년 동안 벌치기가 하는 일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어요. 아주 오래전과 비교해도 본질은 변하지 않았지요. 이 일엔 소박함과 전통이 있어요. 여기엔 흥미를 끄는 일들이 많아요, 평생.” 마지막 단어를 발음한 순간을 돈도 두 사람도 잊지 못한다.

가장 큰 변화는 “몸이 원하는 것을 전류가 통하듯 정확히 알게 됐다”는 점과 “더 많은 사람과 긴밀하게 이어지는” 삶이다. 그냥 호박이 아니라 빨강 쿠리 호박이 먹고 싶은 “굉장한” 느낌은 되찾은 생의 감각이며, 마늘종을 재배한 수줍음 많은 사내, 달걀을 공급받는 가족농장, 채소를 구입하는 유기농장 사람들, 돈 부부의 얼굴은 식재료마다 신뢰의 서명이 되었다.

위대한 일에는 많은 이들이 제쳐둔 흔한 다짐과 행동이 담겨 있다. 우리가 걸리적거려 하는 그것이, 실은 위대한 것이다. 거룩한 일은 내쳐지더라도 누군가의 귀한 선택으로 반드시 되돌아온다. 세계화로 고유한 음식문화가 사라져간다. 요리문화는 생존의 문화다. 가공식품을 대량 생산하고 유통하는 가운데 환경을 오염시키면서 동시에 “자연을 뼈만 남을 때까지 벗겨 먹는” 우리다. 요리도 못하는데다, 젖이 마른 자연을 보면 가공식품으로 언제까지 연명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주식이 없는 와중에도 두 사람이 유쾌했기 망정이지, 식량난은 이미 예고된 죗값. 책은 ‘직거래장터 시트콤’에 가깝지만 현실은 엄혹하다. 지은이들의 로컬푸드 살이로 우리가 귀찮아한 진실이 귀환했다.

석진희 기자 ninano@hani.co.kr



Viewing all articles
Browse latest Browse all 4145

Trending Artic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