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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가 남겨야 할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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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프리즘] 메르스가 남겨야 할 것들 /김양중


이제는 거의 잊힌 흑사병이라는 전염병이 있다. 14세기 중반 크게 유행해 유럽 인구의 3분의 1이 이 흑사병으로 숨졌다. 페스트균을 가진 쥐나 벼룩이 사람을 물 때 옮기는 이 전염병은 원래 아시아 지역에서 유럽으로 전파됐다고 한다. 페스트균은 19세기 후반에나 그 존재를 인간이 알게 되며, 흑사병이 크게 유행한 당시에는 이 질병의 원인을 전혀 몰랐다. 당시는 종교적인 믿음이 강했던 때라 신의 저주라 믿고 교황과 수천명의 사람들이 사흘 동안 무리를 지어 다니면서 신에게 용서를 구했다. 무고한 사람들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기도 했는데, 유대인 때문에 흑사병이 생겼다며 이들을 박해하기도 했다. 전염병에 대한 공포로 영국과 프랑스는 전쟁을 중단했다.


흑사병 유행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됐지만, 이 유행이 어느 정도 정리된 뒤 유럽 사회는 큰 변화를 맞았다. 우선 흑사병에 대해 아무런 해결책을 주지 못했던 종교에 대한 도전이 생겼다. 말과 글을 알아야 대처한다며 종교인이나 왕실, 귀족 등 상위층만 쓰는 라틴어보다는 각 민족이 쓰던 언어가 더 발달했다. 유럽 인구가 크게 줄다 보니 노동력 확보 차원에서라도 이전보다 사람에 대한 존중이 생겼다. 이후 이른바 르네상스 시대가 열리면서 과학이 빠른 속도로 발달했다. 산업혁명의 시초도 흑사병에서 찾는 이들도 있을 정도로 사회적인 영향은 컸다. 비록 흑사병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지만, 그 뒤 사람들은 이를 극복하고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냈다.


이미 3년 전부터 중동 지역에서 유행했던 감염병인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이 국내는 물론 국외에서도 예상치 않던 우리나라에도 번져 9일 오전 기준 95명의 환자가 생겼다. 이 가운데 7명이 메르스의 직간접적인 영향으로 숨졌다. 국내 환자 수는 벌써 메르스 환자 수가 가장 많았던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두번째로 많다. 우리나라가 사우디아라비아 주변국보다 환자 수가 많아진 것이다.


3년 전부터 알려진 감염병을 대처하는 우리나라 정부의 방역체계에 이렇게 큰 구멍이 있을 것이라고 상상조차 못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8명이나 되는 합동 평가단을 구성해 우리나라와 공동으로 이처럼 환자 수가 크게 늘어난 양상과 원인에 대해 조사한다.


현재까지의 전파 양상과 치사율 등을 볼 때 메르스는 흑사병과는 비교조차 안 되며 몇해 전 유행했던 신종 인플루엔자처럼 널리 퍼지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국내에서의 메르스 전파 양상은 우리나라 의료체계의 민낯을 보여줬다. 우선 병원에 가면 오히려 병원에 퍼져 있는 감염병에 걸린다는 것이다. 또 메르스 감염자 95명 가운데 10여명이 환자 가족일 정도로, 의료인이 해야 할 일을 가족이 병원에 가서 대신 하다가 메르스에 감염된 문제도 있다. 아울러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을 찾은 한 메르스 환자는 37명을 감염시켰다. 응급실이 얼마나 좁았으면 또는 얼마나 환자나 보호자들로 북적였으면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가 됐을까? 이는 또 지방의 종합병원 등을 믿지 못해 응급실을 통해서라도 서울의 대형병원에 입원해야 살 수 있다는 환자들의 절박함도 드러냈다. 이밖에 다른 사람에게 전염을 일으킬 수 있는 질병에 걸린 환자인데도 병원들 사이에 얼마나 정보 교환이 없는지도 여실히 드러났다.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메르스 환자는 몇몇 병원에서 몇몇 환자가 더 나타날 수 있지만 유행은 곧 진정될 것이다. 하지만 메르스가 지난 뒤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우리나라 의료의 고질적인 병폐를 그냥 내버려둔다면, 우리는 깨달음 없는 희생을 되풀이할 것이다.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himtra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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