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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베이비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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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로망, 키즈 인테리어의 상상과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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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 꾸미기는 아이들이 어느 정도 커야지만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어린 아이가 있는 집은 치워도 치워도 끝이 없고

집안의 품격을 높여줄 거라 잔뜩 기대하며 장식용 소품으로 놓아두었던 물건들이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순식간에 생계형(?)소품으로 전락하는

상황을 지켜보며 얼마나 자주 한숨을 쉬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제대로 집안을 꾸미려면

최소한 두 아이 다 학교를 갈 때 쯤이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곤 했다.

 

그런데 큰아이가 후기 유아기를 보내던 때의 어떤 일을 계기로

아이들이 어릴 때 오히려 인테리어를 더 즐기면서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상상과 현실 사이를 가장 자유롭게 넘나드는 7살 때의 어느 날,

큰아이를 유치원 버스에 태워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니

집안 여기저기에서 재밌는 걸 발견하게 되었다.

시계를 보며 버스가 오기를 기다리는 5,10분 정도 되는 짧은 시간동안

아이는 자기가 좋아하는 장난감들로 집안 구석구석을 장식해 둔 것이다.

 

 

IMG_3081.JPG

 

자기가 없는 동안 기린 인형이 목마를까봐 물을 담아준다거나

아기인형 옷을 이쁘게 입혀 소파에 나란히 앉혀두거나

레고로 작은 집을 만들어 동물들을 그 안에 재미있게 배치해 둔다거나.

 

짧은 시간이지만 집을 나가기 전에 아이가 하는 이런 행동을

엄마인 내가 자세히 지켜볼 여유는 없었다.

부리나케 초간단 화장이라도 해야하고 둘째를 아기띠로 업거나 안아야하고

버스 선생님편에 보내야 할 물건들을 챙겨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한바탕 전쟁같이 흐르는 시간 뒤에

휴.. 하고 집으로 돌아와 보면 그제서야 아이가 만들어 둔 그날의

'아침 인테리어'를 보며 귀엽기도 하고 가끔은 아이다운 상상력에 놀라기도 하면서

나도 그 짧은 시간을 즐겼던 것 같다.

 

아이가 만들고 간 흔적을 날마다 지켜보면서

늘 산만하고 정리정돈을 방해하는 주범으로만 여겼던 아이의 물건들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가만 보니, 큰아이가 만들어놓은 인테리어가 재밌는 건

바로 '스토리가 있다'는 거였다.

서로 연관이 없을 듯한 장난감, 예를 들어 여자 아이의 장난감과

둘째인 남자아이의 장난감도 함께 등장시켜 일상과 연관된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

표현해내는 게 너무 재밌었다.

 

말끔하게 바닥에 떨어진 물건 하나 없이 어른들이 주인공인 집에서야

진정한 인테리어가 가능하다고 여겼는데

오히려 아이들이 지금 가장 좋아하고 푹 빠져있는 물건들로

집안을 채우고 공간을 재구성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번에 이사도 했으니

그동안 10년 엄마로 살면서 상상으로만 즐기고 있던 키즈인테리어를

현실로 모두 펼쳐보리라 마음먹었더랬다.

10년 동안 모인 책, 장난감, 작은 소품들도 적지 않다.

근데 막상 멍석이 깔리고 보니 그리 쉽지도 않고 시간적인 여유도 없어

정말이지 진도가 안 나간다!

처음 내 마음속의 컨셉은 <어린이책방 겸 북카페>분위기였건만...

그나마 겨우 제자리를 잡은 곳들은

 

DSCN1556.JPG

 

아이가 태어나서 처음 신었던 신발과 동물을 좋아하는 큰아이가 아끼는

소품인데, 저 다람쥐 바구니에는 도토리를 몇 개 넣어두면 더 잘 어울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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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즐겨읽는 그림책이랑 지난 몇 달동안 <라이온 킹1,2,3>의 대사를 다 외울 정도로

푹 빠져 좋아했던 사자 가족, 둘째 손에 언제나 하나씩 들려있는 미니카.

이 코너는 수시로 소품이 바뀌는 곳이다.

 

DSCN1445.JPG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일본에선 지금 가장 인기있는 그림책에 나오는 캐릭터 인형들.

내가 이렇게 배치해두면 아이들은 내려오도록 인형의 방향을 돌려놓는데

가방을 매고있으니, 외출하는 거니까 내려오는게 맞단다.

날씨가 더운 날은 개구리 인형의 빨간 조끼를 사정없이 벗겨놓기도 한다.

 

 

DSCN1551.JPG

 

아이들이 아기 때부터 쓰던 작은 의자.

2만원 주고 사서 알뜰하게 너무 잘 썼다.

저기 앉아 밥도 먹고 그림도 그리고 했는데.

둘째도 이만큼 컸으니 의자가 이젠 작아 보인다.

다 쓰고 나면 소품 얹어두기에도 좋겠다 싶었는데 슬슬 그럴 때가 된 듯.

 

IMG_3839.JPG

 

 

시도때도 없이 이렇게 울고 보채는데

키즈 인테리어는 무슨. 잡지책으로 대리만족하고 말지.

그렇게 마음을 접은 적도 참 많았지만, 아니 지금도 가끔 그렇지만...

아이들이 머무는 공간은 늘 꿈과 상상이 함께 한다.

수납바구니 속에서 뒤엉켜 있던 아이 물건들을 하나씩만 골라

잘 보이는 곳이나 혹은 구석진 곳에 다른 물건들과 함께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듯

놓아두면 아이들은 거기에 자기 이야기를 더해 새로운 놀이를 발견하고 논다.

 

요즘 꽃무늬, 레이스, 이쁜 소품 같은 것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나를 느낀다.

치우고 돌아서기만 하면 난장판이 되는 집안을 너무 오랫동안 보아온 반작용이 아닐까

나름 분석하고 있다.

엄마는 끊임없이 치우고 장식하고

아이들은 그런 내 뒤를 기다렸다는 듯 따라다니며 만지고 저지레하는 일상이

당분간은 계속될 것이다. 그래도

나는 날마다 조금씩이라도 시간을 내어 엄마로서의 로망을 펼쳐볼 생각이다.

 

이 날마다 숨막히게 반복되는 현실에

상상의 덧칠이라도 하지 않으면 못 견딜 것 같기에.

요즘 나에게 인테리어는 살기 위한 몸부림같은 것이 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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