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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쟁이 소년이 사자왕이 된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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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01_4.jpg 사자왕 형제의 모험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글, 일론 비클란트
그림, 김경희 옮김/창비·8500원


한미화의 어린이책 스테디셀러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은 전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동화작가다. 그녀의 작품은 지금껏 1억4500만권 이상이나 팔렸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받은 트로피를 두고 “창문을 열어 환기시킬 때 창틀 고임돌로 쓰면 아주 좋다”고 농담할 만큼 유명세에 연연하지 않았고 학대받는 사람과 동물들을 도우며 일생을 보냈다. 그녀는 늘 당돌하고 자유분방하고 신나게 노는 아이들을 작품 속에 즐겨 그렸지만 선과 악, 그리움과 죽음 같은 인생의 진지한 문제를 다룬 책도 여럿 발표했다. 일흔살 무렵 집필한 <사자왕 형제의 모험>은 바로 그런 책이다.

책은 시작부터 동화답지 않다. 씩씩한 요나탄 형이 동생 카알을 구하려다 그만 죽고 만다. 형은 평소 병약한 동생이 죽음을 두려워하자, 죽으면 땅속에 묻히는 게 아니라 새롭고 신나는 세계, 즉 ‘낭기열라’에 가는 거고, 거기서 조금만 기다리면 형을 만날 수 있다고 말했다. 요나탄의 말처럼 카알은 얼마 지나지 않아 낭기열라로 가서 형과 살게 되지만 그곳에도 다툼이 있었다. 형제가 사는 벚나무 골짜기는 평화로웠지만 이웃한 들장미 골짜기는 독재자 탱일의 지배 아래 굶주림과 가난에 시름하고 있었다.

이대로 두었다가는 낭기열라 전체의 평화가 위협받을 지도 몰랐다. 형은 “사람답게 살고 싶어서, 그렇지 않으면 쓰레기와 다를 게 없으니” 위험해도 해야 한다며 들장미 골짜기로 떠난다. 겁쟁이 울보였던 동생 카알 역시 돌아오지 않는 형을 찾으러 나서며 사자왕 형제의 모험이 시작된다.

<사자왕 형제의 모험>은 죽음, 용기, 자유 등 여러 메시지가 중첩되어 담겨 있는 수작이다. 먼저 눈길을 끄는 건 낭기열라와 낭길리마라는 상상의 공간이다. 낭기열라는 린드그렌이 만들어낸 말로 죽음 이후의 세계 혹은 ‘살아가는 것이 고통스럽지 않은 어린 시절’을 의미한다. 낭기열라에서 죽으면 다시 낭길리마로 떠난다. 하지만 낭기열라나 낭길리마는 그저 존재하는 게 아니다. 인간이 꿈꾸는 낙원을 지키기 위해서는 대가와 희생이 필요하다. 형제는 낭기열라를 지키기 위해 두려움을 무릅쓰고 악에 대항해 싸운다.

여기서 드는 의문, 어쨌든 낭기열라는 죽어야 가는 곳이 아닌가. 아이들에게 이렇게 직접적으로 죽음을 이야기해도 될까. 아이들은 물론 어른도 인생의 문제는 피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기쁘고 슬프고 외롭고 무서운 감정과 마주해야 한다. 아이들 역시 그럴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 린드그렌이 동화를 쓴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그녀의 손자 니세는 죽음을 무서워했다. 마치 요나탄이 동생 카알에게 낭기열라에서 만나자고 했듯, 린드그렌은 동화를 읽어주며 손자를 위로했다. 그렇게 아이들은 인생의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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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화 출판 칼럼니스트

소심하고 겁이 많은 카알에게 동병상련을 느끼는 독자라면 아마 카알이 언제 용기 있는 소년이 될까 조바심이 날 거다. 하지만 끝까지 카알은 카알이다. 형과 함께 낭길리마로 떠나려고 절벽을 뛰어내리는 마지막 순간까지 카알은 두려웠다. 다만 두려움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자신을 믿었을 뿐이다. “늘 무서워, 하지만 해낼 수 있다고 믿고, 지금 해.” 이것이 카알이 겁쟁이 울보에서 사자왕이 될 수 있었던 이유다.

한미화 출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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