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에서 보건복지로 잠시 취재 영역을 바꿨지만 ‘무정부 국가의 학부모들’은 여전히 놀라운 취재원이었다. 정부 대처가 미덥지 못한 상황에서 ‘내 아이가 메르스에 감염될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휩싸인 학부모들은 민첩하게 움직이면서 다양한 기삿거리를 제공했다. 학부모들은 보건복지 기자도 모르는 메르스 정보를 신속하게 취합해 자녀들을 메르스로부터 완전히 분리시키고 있었다. 교육 기자도 모르는 사교육 정보를 섭렵해 명문대 바늘구멍을 뚫고야 마는 학부모들의 모습과 정확히 포개졌다.
언론계에서는 낙종을 ‘물먹는다’고 표현한다. 메르스 사태 초반, 거의 모든 언론사 기자가 학부모들한테 줄줄이 물을 먹었다. 자녀의 신변에 위협을 느낀 학부모들의 정보력이 마감시간에 쫓기는 기자들의 취재력을 능가했다.
메르스 확진·경유 병원의 명단이 대표적인 예다. 정부는 6월7일이 돼서야 병원명을 공개했는데, 학부모들은 이미 5월 말부터 동네 메르스 관련 병원의 이름을 찾아내 공유했다. 서울 강동구의 365열린의원 의사는 5월28일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았다. 상당수 기자들이 감도 못 잡고 있을 때, 학부모 카페와 단체 카톡방 등에선 이 병원 이름이 적시돼 있었다. 정보뿐 아니라 대응도 즉각적이었다. 인근 어린이집 학부모들은 5월29일 강동구청에 “영유아가 해당 의원을 이용하지 못하게 해달라”며 민원을 제기했다. 이 무렵 서울 송파구 학부모들 사이에선 첫번째 확진자의 거주지, 두번째 확진자(첫번째 확진자의 아내)가 다니던 직장 이름이 메르스보다 더 빨리 퍼졌다.
학부모들은 정보 수집뿐 아니라 감염 예방도 자력구제를 택했다. 일단 동네 마트와 약국에 마스크·손세정제 재고가 바닥나도록 싹쓸이해 자녀의 책가방부터 채웠다. 메르스와 관련된 병원의 의료진 학부모한테 전화를 걸어 “자녀를 학교와 학원에 보내지 말아달라”는 모진 소리를 하는 악역도 학부모들이 떠맡기 일쑤였다. 교육당국은 평택성모병원이 있는 경기도와 삼성서울병원이 위치한 서울 강남·서초를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에서 휴업(휴교)을 학교장 재량에 맡겼다. 학교에 민원 전화를 넣어 학교장이 휴업을 결정하도록 등 떠미는 역할도, 휴업 이후 갈 데가 없어진 아이들을 돌보는 일도 고스란히 학부모가 떠안았다. 이 정부에는 감염병으로 인한 학원 휴강 때 보강·환불 규정도 마련돼 있지 않다. 휴강을 할 건지, 보강과 환불은 해줄 건지 학원 쪽과 일일이 실랑이를 벌이는 일도 오롯이 학부모의 몫이었다.
19일 ‘셀프 메르스 종식’을 선언한 초등학교 학부모를 만났다. 여전히 아이가 감염될까 불안하지만 더는 메르스 때문에 진을 뺄 여력이 없어서 자포자기 심정으로 아이와 함께 ‘일상 복귀’를 결정한 엄마였다. 메르스를 계기로 처음으로 ‘나라 걱정’을 시작했다는 이 엄마가 맥주를 들이켜며 한 말이 잊히질 않는다. “방역도 셀프라니, 도대체 우리나라는 셀프 아닌 게 뭐야?”
전정윤 사회정책부 기자 ggu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