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 이르게 무더운 초여름 오후, 마당에 앉아 꼬박꼬박 졸고 있다.
커피 한잔 마셔서 졸음을 쫓을까, 하다가 댓돌 아래 늘어져 자는 강아지, 오월이를 보며, 커피를 마시는 대신 나른함을 즐겨보기로 마음을 고쳐먹는다. 당장 해야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이들은 저희끼리 놀이에 푹 빠져 엄마를 찾지도 않는다. 오뉴월 따스한 햇볕 아래 낮잠을 자는 견공들의 팔자에 견주며 이 평화로움을 즐길지어다.
경상남도 함양, 마당 있는 단독주택을 찾아다니던 친구네가 서울을 떠나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양파와 마늘이 누렇게 익어가는 너른 들판 넘어 함양 읍내가 내려다보인다.
친구네가 처음 점찍은 곳은 제주도였다. 살 집을 알아볼 때 제주 여행을 함께 다녀왔다. 늦가을 제주에는 폭우가 몰아쳐 뉴스에서 연일 수해 소식을 전해 주었다. 이틀 만에 비는 그쳤지만, 바람이 몹시 불었다. 바람이 너무 세서 안 되겠어, 라고 하더니 대안으로 찾은 곳이 여기, 함양이었다. 용감하게 생면부지의 땅에서 새로운 삶을 일구는 친구네를 찾아가면서 제주도의 바람을 떠올렸다. 사나운 바람보다는 따스한 볕이 좋겠네! 함양(咸陽), 이름처럼 볕이 잘 드는 이곳이 마음에 들었다. 따스한 볕이 낯선 땅, 낯선 생활에 대한 어색함과 두려움을 녹여주겠지. 내려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아랫집에 사는 할머니를 ‘어무이’라 부르며 잘 지내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어라? 대문이 없네?
대문이 없으니 초인종도 없고. 그냥 마당으로 쓱 들어가서 ‘우리 왔어요!’ 하고 외치는 허술한 경계가 오히려 낯설었다. 하지만, 아파트 단지 들어서면서부터 동호수와 목적을 말해야 하고 입구에서 또 한 번 조그만 카메라 렌즈 앞에서 쭈뼛거리며 주인의 처분을 기다려야 하는 도시의 절차에 비해 훨씬 인간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울타리가 없으니 집으로 드나드는 길과 방법도 여러 가지.
엄마, 이쪽으로 나가서 고추밭을 지나면 수돗가가 나와. 수돗가 옆 길로 들어오면 다시 마당이 나온다.
아이들은 집 안팎을 탐색하다가 새로운 길을 발견했고
엄마, 여기로 나가도 되는데!
다른 길을 알고 있다고, 자랑스레 뻐기기도 했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숨바꼭질은 정말 재미가 있었다. 숨을 곳도 많고 숨었다가 술래가 다가오는 기척을 느끼면 다른 길로 내빼서 애를 먹이기도 했다.
너른 마당이 있는 집에 아이들을 풀어놓으니 아이들을 조금 떨어진 곳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그러다 옷 젖는다, 맨발로 다니면 안 돼. 흙 만진 손으로 눈을 비비면 어떡하니? 눈앞에 있었으면 나도 모르게 바로 튀어나왔을 쓸모없는 잔소리로부터 해방!
‘그래도 괜찮아. 그럼 좀 어때?!’ 하고 마음이 스르르 풀어졌다. 그 덕분에 아이들은 내 눈치를 살피지 않으며 자유롭게 놀았고 나에게도 나른함에 취해있을 여유가 생긴 것이다.
엄마, 오디 따러 가자!
뽕나무를 발견한 아이들이 나른한 오후의 졸음을 쫓아 주었다. 생협의 생산지를 방문했을 때 먹어본 오디의 생김새와 맛을 아이들이 기억해내는 것이 신기했다.
뽕나무는 ‘들기름 다방’이라고 부르는 별채 뒤쪽에 서 있는데 돌아가는 길이 조금 험했다. 낭떠러지라서 혼자 가기 겁이 났는지 아루가 나를 불러낸 것이다.
정말, 뽕나무 가지에 볼록볼록 까맣게 익은 오디가 다닥다닥 매달려 있었다. 바닥에도 많이 떨어져 있었다.
뽕나무가 방귀를 뽕~뀌니까
대나무가 대끼놈! 하니까
참나무가 참아라~ 그랬다네.
바닥에 떨어진 오디를 주워담는 아이들 입에서 노래가 절로 나왔다
바람아, 바람아, 불어라
오디야, 오디야, 떨어져라
아이야, 아이야, 주어라
어른도, 어른도, 주어라
원래 대추야, 떨어져라, 하는 노래인데 높은 가지에 매달린 것은 키가 작아 따기 어려우니까 바람이 불어 떨어지길 바라며 노랫말을 바꿔 부르기도 했다.
한 그릇 다 채워 마당의 수돗가에서 씻어 먹었다. 한 웅큼 털어 넣고도 아쉬운지 다시 달려갔다. 다른 놀이를 하다가도 생각이 나는지 그릇을 들고 뽕나무에게로 갔다. 몇 번 다녀보니 두려움이 없어져서, ‘엄마, 오디 따러가자!’ 는데 내가 꾸물거리니 나중에는 ‘엄마, 오디 따올게!’로 바뀌었다.
“해람아, 잠깐만!” 해람이는 혼자 보내기 걱정스러워 불렀는데 벌써 아루 따라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생각하고 싶진 않지만, 혹시나, 넘어지는 상상을 해 봤다. 낭떠러지로 굴러떨어져도 밑에 논이 있어서 큰 사고는 면할 것 같았다.
사실, 어딘가 어설프고 반듯하지 않은 이 집은 그 자체로 해람이에게 모험이었다. 어른들에겐 별것 아니지만, 앞마당의 마지막 몇 걸음의 급한 내리막이 해람이에겐 얼마나 아슬아슬한지! 높이가 제멋대로인, 울퉁불퉁 다듬어지지 않은 돌계단도 큰 도전이었으리라.
누나 따라 오디 주우러 가면서 해람이가 느꼈을 모험심과 작은 성취감을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했다.
사흘 내내 오디에 대한 사랑은 꺼질 줄 몰랐다. 시시때때로 오디를 주워 먹었다. 냉장고의 시원하고 달콤한 수박은 쳐다보지도 않고!
네 두 손바닥은 오디 물이 들었구나
입술 언저리에도 보라빛이 들었구나
(네 마음 속 눈부신 노래, 이오덕 시, 백창우 개사, 작곡)
아이들의 손과 입술이 보랏빛으로 물드는 걸 바라보는 내 마음도 행복했다.
매일 누는 똥에도 보랏빛이 들었다.
함양을 떠나는 날, 아이들이 몹시 아쉬워했다.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마지막으로 오디를 주웠다. 오디의 나날도 절정을 찍었는지, 바닥에 떨어지면서 물러 터져버렸고, ‘오디 이’라고하는 조그만 벌레들의 습격도 대단했다. 아이들은 개의치 않고 끝까지 오디를 주워담았다. 좌린은 먼저 서울로 올라가고 나는 아이들과 남았다. 내친김에 지리산 주변을 돌아보기로 한 것이다.
섬진강을 굽어보는 하동의 어느 게스트하우스에서 함양에서 주어온 오디를 설탕에 졸여 잼을 만들었다.
볼록볼록 과육이 살아 있는 오디 잼은 남은 여행 내내 우리에게 큰 기쁨을 줬다.
요구르트에 섞어 먹고
빵에 발라먹고!
어제, 함양의 친구로부터 오디가 까맣게 익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엄마, 오디 먹고 싶어
우리 함양에 언제 가?
계절의 맛이란 이런 걸까? 신기하게도 여름의 문턱에 들어서니 아이들이 오디를 기억해냈다. 오디따러 함양에 가자고 나를 졸라댔다. 그 덕분에 나도 작년 여름 함양에서 지낸 날들을 떠올리며 일 년 전에 찍은 사진과 일기를 들춰보았다.
달콤하고 물 많은, 더 맛있는 여름 과일이 얼마나 많은데, 아이들이 별맛도 없는 산 열매를 이렇게 좋아하고 기다리는 것이 참 신기하다. 하우스 시설 재배로 계절 감각도 없고, 저 멀리 외국에서 들여온 과일들까지 더해져 사시사철 온갖 과일이 넘쳐나는 세상에 아이들의 오디 사랑이 참 각별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먹을거리를, 포장되어 마트에 진열된 ‘상품’으로서가 아니라 자연에서 나는 것임을 체득하는 것도 참 값진 경험이다.
나는 오디가 별로 맛이 없던데 너희는 왜 그렇게 좋아해?
아니야, 오디 맛있어. 새콤하면서 씁쓸하고 달콤해.
우리 식구 중에서 가장 입맛이 까다롭다는 해람님의 말씀.
작년에 지리산 주변을 여행할 때 해람이가 오디를 많이 그렸다.
따는 맛에 먹는 거지. 주워담으며 하나씩 집어 먹을 때 얼마나 맛있는데! 아루님의 말씀.
아, 맞다. 보리수! 엄마, 우리 그때 하동에서는 보리수도 따 먹었잖아. 해람이는 씨 바르기 귀찮다고 안 먹고 나 혼자 많이 먹었는데.
똑똑 따서 씨 발라 먹는 거, 나는 그게 참 재미있더라.
아루가 학교에 다녀 마음대로 못 내려가는 우리를 위로하려고 하는 말일까. 함양의 친구 말에 따르면 올해의 오디는 작년만큼 맛이 달지 않단다. 생으로 먹기보다 잼 만들고 오디주라도 담가야겠다고.
오디주라는 말에 귀가 솔깃해진다.
여름방학에 내려가면 그 달콤한 오디주, 맛을 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