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 교육] 지난달 시행 ‘인성교육진흥법’ 논란
“아이들을 숨막히는 경쟁 속에 몰아넣고 다른 친구들을 밟고 일어서라고 한 게 어른들이잖아요. 그런데 그걸로 모자라서 이제는 ‘착해야 한다’는 덕목까지 요구하나요?”“인성교육을 법으로 강제할 일이냐”
외부 전문인력에게 교육 맡기자
각종 지도사 등 ‘사교육’도 성행
예·효·정직 등 수구적 규범 놓고
‘권위주의 관점이다’ 비판도
공동체 시민 참여 기회 주면서
‘시민적 인성교육’ 시도 바람직‘인성교육진흥법’에 대해 한 학부모가 던진 쓴소리다. 지난달 21일부터 시행 중인 인성교육진흥법을 둘러싼 논란이 거세다. 이 법의 핵심은 크게 세 가지다. 앞으로 교육부 장관은 ‘인성교육 종합계획’을 5년마다 수립하고 교육감은 이 종합계획을 바탕으로 인성교육시행계획을 세워야 한다. 교사들은 연간 4시간 이상 인성교육 연수를 받아야 한다. 교육부는 외부 전문기관을 지정해 인성교육 프로그램 등을 위탁한다. 전문인력 양성은 대학·정부출연연구기관·공익법인·비영리법인 등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지정한 기관이 맡는다. 올 11월 중 교육부가 인성교육 종합계획을 수립 및 발표할 예정이어서 조만간 교육 현장은 더 시끄러워질 분위기다.교육전문가들은 애초에 이 법이 왜 필요하냐는 의문을 내놓고 있다. 법 제정이 힘을 받은 데는 2012년에 일어난 학교폭력 사건, 2014년에 일어난 세월호 참사가 계기를 마련한 걸로 알려져 있다. 임종화 좋은교사운동 공동대표는 “인성교육 시간이 부족해서 이런 사건들이 일어난 게 아니라 협력보다는 경쟁, 과정보단 결과를 중시하는 어른들이 만든 사회 체제와 문화가 근본 원인 아니냐”고 반문했다.미국은 1994년에 인성교육을 명문화한 적이 있었다. ‘학교개선법’을 통해 연방법으로 제정했고, 주정부까지 인성교육을 의무화하는 법률을 각각 제정하고 예산을 투입했지만 학생들의 인성이 좋아졌다거나 이와 관련해 학업성취도가 향상되는 등의 긍정적 결과는 내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임 대표는 “이렇게 우리와 유사한 법을 시행한 외국 사례를 분석하고 평가하는 작업을 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교육부가 외부 기관을 지정해 인성교육 프로그램 등을 위탁한 데 대해서도 우려가 많다. 특히 인성교육진흥법과 관련해 2013년부터 지금까지 보수 성향 단체들이 꾸린 인성교육범국민실천연합이 인증 권한을 독점 행사하고 있다는 점도 논란거리다. 이 법 제정운동에 앞장선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김동석 대변인은 “자유학기제처럼 어떤 프로그램을 하다 보면 교사나 학교의 어려움이 많아지는데 객관적으로 프로그램 인증을 받은 사례를 학교 현장이나 가정에서 무료로 접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지 사적이고 영리적인 걸 취하려는 의도는 아니지 않냐”고 했다.하지만 근본적으로 인성교육을 교사가 아닌 학교 바깥에 있는 이들이 담당한다는 점에 대해 회의적 시각이 많다. 안승문 서울특별시 교육자문관은 “입시 위주로 공부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어놓고 교사한테는 인터넷강의 틀어놓고 입시교육을 하라고 하고, 정작 교사가 맡아야 하는 인성교육은 학교 바깥에 있는 사람들에게 진행하라는 거 아니냐”라며 “인증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면 현재의 방과후학교처럼 프로그램을 대기업에 위탁하는 식의 학원화가 될 가능성도 크다”고 우려했다.인성교육을 민간에 위탁한다는 이야기에 인성교육지도사 등 민간 전문 자격증도 속속 나오고 있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에 따르면 인성지도사 등 인성교육 민간 자격증은 총 250여종에 이른다.학부모들 사이에선 이미 ‘인성 바람’도 불고 있다. 교육부는 올해 초 인성평가가 대입에 반영된다고 했다가 얼마 전, 말을 바꿨지만 학부모들의 생각은 다르다. “대입에서 면접 등이 반영되는 수시 학생부종합전형이 강세인 상황에서 ‘인성’을 대충 보진 않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스피치학원’ 등을 기웃거리는 이들도 나오고 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안상진 부소장은 “인성교육지도사 등 자격증들이 민간에서 굉장히 많이 생기고 있고, 아이들 대상의 사교육 역시 교육부가 신호를 조금이라도 잘못 주는 상황이 발생하면 규모가 더 커지기 쉽다”며 “현재로선 대입 반영을 안 할 거라고 전면 부인했지만 뇌관이 되는 ‘대입 전형’에 따라 시한폭탄 터지듯 일이 터질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인성교육진흥법에서 강조하는 인성 덕목도 논란거리다. 이 법에서 인성 덕목은 예(禮), 효(孝), 정직, 책임, 존중, 배려, 소통, 협동 등 여덟 가지다. 심성보 부산교대 윤리교육과 교수는 “이 덕목들은 수구적인 규범들”이라며 “‘배려’가 있다면 ‘공정성’이, ‘책임’이 있다면 ‘권리’가 함께 나와야 한다. 부모가 보여줘야 할 사랑인 ‘자’(慈)에 대한 전제 없이 ‘효’(孝)를 앞세우는 것도 복종의 도덕만을 요구하는 태도”라고 꼬집었다. 그는 “무조건 정직하기만 하면 ‘착한 시민’이 될 뿐 ‘정의로운 시민’은 못 된다. 그런 점에서 이 법은 봉건시대 권위적인 방식으로 수구적 규범을 강조하는 법처럼 느껴진다”고 했다.이런 상황에서 지금 시대에 맞는 인성교육은 다름 아닌 ‘시민적 인성교육’이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심 교수는 “최근에 영국에 <시민교과>라는 과목이 만들어졌다”며 “해외에서는 학교 운영을 민주화하고, 학생들 스스로 자치활동을 하면서 스스로 규범과 공동체 덕목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인성을 함양하는 게 일반적이다”라고 설명했다.2013년 한국교육개발원에서 나온 ‘초·중등 학생 인성교육 활성화 방안 연구Ⅰ’ 가운데 독일 학교의 사례는 참고할 만하다. 독일 함부르크시에 있는 렐링거 초등학교에는 ‘여러 학년이 혼합된 학습그룹’이 있다. 이 그룹에는 다양한 연령의 학생들이 속해 공동으로 학습을 한다. 3개의 학년이 하나의 그룹으로 모여 있기 때문에 구성원의 변동이 적고 동일한 학생들이 장기간 함께 학습할 수 있어 모든 학생이 한 학습그룹 내에서 다양한 역할을 경험할 수 있다. 처음에는 주로 도움을 받던 아이들이 이후에는 남을 도울 수 있는 능력을 갖추며 성장한다. 학생들은 이런 학습형태 속에서 상호협력과 공동체적 역량, 책임의식, 자립적 태도 등을 함양한다. 이 학교에는 1999년 ‘아동회’라는 이름으로 설립한 학생회도 있다. 학습그룹의 대표가 학생회의 회원이 되는데 학생회 회원들은 매일 있는 학습그룹 아침 모임에서 학교의 새로운 프로그램과 관련된 학생들의 의견과 경험을 듣고 특별한 사항이 있을 경우, 학생회에 전달해 다시 논의한다. 학생들은 학교의 교육계획 수립에서부터 운영까지 전 과정에 적극 참여하며 공동체적 역량과 성숙한 민주시민이 되기 위한 역량을 키워나간다.심 교수는 “지금 시대 아이들은 ‘인성’과 ‘시민성’이 융합된 존재로 길러야 한다. 학생들에게 필요한 인성적 요소는 ‘민주적 가치에 대한 내면화’”라며 “그래서 국회 차원에서 민주시민교육법을, 시·도 차원에서는 민주시민교육조례를 만들어 시민교육과 결합한 인성교육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국회에는 ‘민주시민교육지원법(안)’(이언주 의원안(2015.1.22), 남인순 의원안(2015.2.5))이 발의되어 있고, 서울시의 경우, ‘민주시민교육에 관한 조례’를 제정해 시행 중이다.김청연 기자 carax3@hanedui.com
외부 전문인력에게 교육 맡기자
각종 지도사 등 ‘사교육’도 성행
예·효·정직 등 수구적 규범 놓고
‘권위주의 관점이다’ 비판도
공동체 시민 참여 기회 주면서
‘시민적 인성교육’ 시도 바람직‘인성교육진흥법’에 대해 한 학부모가 던진 쓴소리다. 지난달 21일부터 시행 중인 인성교육진흥법을 둘러싼 논란이 거세다. 이 법의 핵심은 크게 세 가지다. 앞으로 교육부 장관은 ‘인성교육 종합계획’을 5년마다 수립하고 교육감은 이 종합계획을 바탕으로 인성교육시행계획을 세워야 한다. 교사들은 연간 4시간 이상 인성교육 연수를 받아야 한다. 교육부는 외부 전문기관을 지정해 인성교육 프로그램 등을 위탁한다. 전문인력 양성은 대학·정부출연연구기관·공익법인·비영리법인 등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지정한 기관이 맡는다. 올 11월 중 교육부가 인성교육 종합계획을 수립 및 발표할 예정이어서 조만간 교육 현장은 더 시끄러워질 분위기다.교육전문가들은 애초에 이 법이 왜 필요하냐는 의문을 내놓고 있다. 법 제정이 힘을 받은 데는 2012년에 일어난 학교폭력 사건, 2014년에 일어난 세월호 참사가 계기를 마련한 걸로 알려져 있다. 임종화 좋은교사운동 공동대표는 “인성교육 시간이 부족해서 이런 사건들이 일어난 게 아니라 협력보다는 경쟁, 과정보단 결과를 중시하는 어른들이 만든 사회 체제와 문화가 근본 원인 아니냐”고 반문했다.미국은 1994년에 인성교육을 명문화한 적이 있었다. ‘학교개선법’을 통해 연방법으로 제정했고, 주정부까지 인성교육을 의무화하는 법률을 각각 제정하고 예산을 투입했지만 학생들의 인성이 좋아졌다거나 이와 관련해 학업성취도가 향상되는 등의 긍정적 결과는 내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임 대표는 “이렇게 우리와 유사한 법을 시행한 외국 사례를 분석하고 평가하는 작업을 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교육부가 외부 기관을 지정해 인성교육 프로그램 등을 위탁한 데 대해서도 우려가 많다. 특히 인성교육진흥법과 관련해 2013년부터 지금까지 보수 성향 단체들이 꾸린 인성교육범국민실천연합이 인증 권한을 독점 행사하고 있다는 점도 논란거리다. 이 법 제정운동에 앞장선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김동석 대변인은 “자유학기제처럼 어떤 프로그램을 하다 보면 교사나 학교의 어려움이 많아지는데 객관적으로 프로그램 인증을 받은 사례를 학교 현장이나 가정에서 무료로 접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지 사적이고 영리적인 걸 취하려는 의도는 아니지 않냐”고 했다.하지만 근본적으로 인성교육을 교사가 아닌 학교 바깥에 있는 이들이 담당한다는 점에 대해 회의적 시각이 많다. 안승문 서울특별시 교육자문관은 “입시 위주로 공부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어놓고 교사한테는 인터넷강의 틀어놓고 입시교육을 하라고 하고, 정작 교사가 맡아야 하는 인성교육은 학교 바깥에 있는 사람들에게 진행하라는 거 아니냐”라며 “인증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면 현재의 방과후학교처럼 프로그램을 대기업에 위탁하는 식의 학원화가 될 가능성도 크다”고 우려했다.인성교육을 민간에 위탁한다는 이야기에 인성교육지도사 등 민간 전문 자격증도 속속 나오고 있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에 따르면 인성지도사 등 인성교육 민간 자격증은 총 250여종에 이른다.학부모들 사이에선 이미 ‘인성 바람’도 불고 있다. 교육부는 올해 초 인성평가가 대입에 반영된다고 했다가 얼마 전, 말을 바꿨지만 학부모들의 생각은 다르다. “대입에서 면접 등이 반영되는 수시 학생부종합전형이 강세인 상황에서 ‘인성’을 대충 보진 않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스피치학원’ 등을 기웃거리는 이들도 나오고 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안상진 부소장은 “인성교육지도사 등 자격증들이 민간에서 굉장히 많이 생기고 있고, 아이들 대상의 사교육 역시 교육부가 신호를 조금이라도 잘못 주는 상황이 발생하면 규모가 더 커지기 쉽다”며 “현재로선 대입 반영을 안 할 거라고 전면 부인했지만 뇌관이 되는 ‘대입 전형’에 따라 시한폭탄 터지듯 일이 터질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인성교육진흥법에서 강조하는 인성 덕목도 논란거리다. 이 법에서 인성 덕목은 예(禮), 효(孝), 정직, 책임, 존중, 배려, 소통, 협동 등 여덟 가지다. 심성보 부산교대 윤리교육과 교수는 “이 덕목들은 수구적인 규범들”이라며 “‘배려’가 있다면 ‘공정성’이, ‘책임’이 있다면 ‘권리’가 함께 나와야 한다. 부모가 보여줘야 할 사랑인 ‘자’(慈)에 대한 전제 없이 ‘효’(孝)를 앞세우는 것도 복종의 도덕만을 요구하는 태도”라고 꼬집었다. 그는 “무조건 정직하기만 하면 ‘착한 시민’이 될 뿐 ‘정의로운 시민’은 못 된다. 그런 점에서 이 법은 봉건시대 권위적인 방식으로 수구적 규범을 강조하는 법처럼 느껴진다”고 했다.이런 상황에서 지금 시대에 맞는 인성교육은 다름 아닌 ‘시민적 인성교육’이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심 교수는 “최근에 영국에 <시민교과>라는 과목이 만들어졌다”며 “해외에서는 학교 운영을 민주화하고, 학생들 스스로 자치활동을 하면서 스스로 규범과 공동체 덕목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인성을 함양하는 게 일반적이다”라고 설명했다.2013년 한국교육개발원에서 나온 ‘초·중등 학생 인성교육 활성화 방안 연구Ⅰ’ 가운데 독일 학교의 사례는 참고할 만하다. 독일 함부르크시에 있는 렐링거 초등학교에는 ‘여러 학년이 혼합된 학습그룹’이 있다. 이 그룹에는 다양한 연령의 학생들이 속해 공동으로 학습을 한다. 3개의 학년이 하나의 그룹으로 모여 있기 때문에 구성원의 변동이 적고 동일한 학생들이 장기간 함께 학습할 수 있어 모든 학생이 한 학습그룹 내에서 다양한 역할을 경험할 수 있다. 처음에는 주로 도움을 받던 아이들이 이후에는 남을 도울 수 있는 능력을 갖추며 성장한다. 학생들은 이런 학습형태 속에서 상호협력과 공동체적 역량, 책임의식, 자립적 태도 등을 함양한다. 이 학교에는 1999년 ‘아동회’라는 이름으로 설립한 학생회도 있다. 학습그룹의 대표가 학생회의 회원이 되는데 학생회 회원들은 매일 있는 학습그룹 아침 모임에서 학교의 새로운 프로그램과 관련된 학생들의 의견과 경험을 듣고 특별한 사항이 있을 경우, 학생회에 전달해 다시 논의한다. 학생들은 학교의 교육계획 수립에서부터 운영까지 전 과정에 적극 참여하며 공동체적 역량과 성숙한 민주시민이 되기 위한 역량을 키워나간다.심 교수는 “지금 시대 아이들은 ‘인성’과 ‘시민성’이 융합된 존재로 길러야 한다. 학생들에게 필요한 인성적 요소는 ‘민주적 가치에 대한 내면화’”라며 “그래서 국회 차원에서 민주시민교육법을, 시·도 차원에서는 민주시민교육조례를 만들어 시민교육과 결합한 인성교육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국회에는 ‘민주시민교육지원법(안)’(이언주 의원안(2015.1.22), 남인순 의원안(2015.2.5))이 발의되어 있고, 서울시의 경우, ‘민주시민교육에 관한 조례’를 제정해 시행 중이다.김청연 기자 carax3@hanedu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