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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둘 셋 넷 다섯…이것도 쉬운 게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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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포자 된 건 아이들 잘못이 아냐!” “학부모 99%, ‘아이들 수학 때문에 고통’”…. ‘사교육걱정없는 세상’ 주최로 5월28일 열린 ‘교육 오피니언 시민 100인 초청 6개국 수학 교육과정 국제 비교 컨퍼런스’의 행사장인 서울 용산구 효창동 백범기념관 로비에 전시된 ‘수포자’ 관련 자료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수포자 된 건 아이들 잘못이 아냐!” “학부모 99%, ‘아이들 수학 때문에 고통’”…. ‘사교육걱정없는 세상’ 주최로 5월28일 열린 ‘교육 오피니언 시민 100인 초청 6개국 수학 교육과정 국제 비교 컨퍼런스’의 행사장인 서울 용산구 효창동 백범기념관 로비에 전시된 ‘수포자’ 관련 자료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본능적으로 타고나는 수 감각
수학적 성숙에는 시간 필요해 
수학을 일찍, 많이 강요하면
오히려 부작용만 커질 수 있어
1980년대 초반에 이뤄진 연구들은 영아들한테도 ‘수 감각’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1983년 수 앨런 안텔과 대니얼 키팅은 생후 1주 된 아기들이 두 개와 세 개를 구별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기도 했다. 이 실험에서 신생아들은 두 개의 물건 사진이 있는 카드와 세 개의 물건 사진이 있는 카드가 다르다는 것을 구별했고, 세 개의 물건 사진이 있는 카드를 더 오래 쳐다봤다. 인간이 본능적으로 수와 수량에 관한 감각을 타고난다는 얘기다.

본능적으로 수 감각을 타고났다고 해서 아이들한테 수학이 쉬우리라고 여기면 곤란하다. 발달신경생리학자인 안승철 단국대 의대 교수의 <아이들은 왜 수학을 어려워할까?>(궁리)를 보면, 수학이 어려운 이유가 잘 설명돼 있다.

아이들이 가지고 태어난 자산은 고작 1·2·3이 전부고, 사실 이마저도 미적분 같은 걸 하기 위한 용도는 아니다. 여느 동물의 어린 새끼처럼 눈앞에 얼쩡대는 개체가 얼마나 많은지 정도는 알아야 하기 때문에 주어진 능력이다. 인간만이 이런 수 감각을 유일하게 고등수학으로 발전시키는데, 간단한 수 세기(한 개, 두 개)와 수를 세는 말(하나, 둘), 수 기호(1, 2)를 습득하는 과정부터 수학의 길은 의외로 길고 험난하다. 예컨대 아이들은 보통 두세 살 때 ‘하나’라는 말과 한 개의 대상을 겨우 일치시킬 수 있다. 어른들은 하나와 한 개를 연결시켰으니, 이후 숫자부터는 일사천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이들이 ‘넷’이라는 단어와 네 개의 대상을 일치시키기까지는 무려 1년이 더 걸린다.

안 교수는 “아이들이 수를 받아들이고 내면화하는 과정은 다분히 생물학적이다. 수학적 성숙을 위한 아이들 나름의 시계가 존재한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부모들은 가끔 균형감각을 상실한다. 예컨대 부모들은 시계의 속도를 바꿀 수 있다는 데 무게를 두고 생물학적 과정을 경시한다. 아이들은 이 과정에서 상처를 받는다”고 설명했다. 인간이 ‘고등수학의 동물’이라고 해서 수를 내면화하는 시간을 무시하고 천재·영재가 아닌 아이들한테 ‘정규 수학’을 일찍, 많이 강요하면 부작용만 커진다는 경고다.

지능이 낮은 것도 노력을 안 하는 것도 아닌데 수학에서만 특별히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꽤 있다. ‘수학 장애’라고 한다. 수학 장애도 장애로 받아들이고 이를 완화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미국과 유럽, 이스라엘에서 조사해 보니, 학령기 아이들의 5~8% 정도에서 수학 장애가 발견됐다. 초등학교 한 반을 30명 정도라고 하면 1~2명가량은 수학 장애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추정된다. 수학 장애를 겪는 아이들은 간단한 계산을 손가락에 의존하는 등 여러가지 특징이 나타난다. 특히 ‘1+2=3’처럼 보통은 장기기억으로부터 꺼내서(외워서) 사용하는 계산값도 쉽게 기억해내지 못한다는 두드러진 특징이 있다. 수학 장애가 있는 아이들은 다른 장애를 함께 가지고 있는 경우도 많다. 읽기 장애(난독증)와 주의력결핍과잉행동증후군(ADHD) 등이 대표적이다. 수학 장애와 읽기 장애를 둘 다 가지고 있으면 수학 장애만 있을 때보다 수학 성취도가 더 낮아진다.

수학 장애 가운데 ‘발달 산수 장애’라는 것도 있다. 단순히 수와 관련된 문제나 절차를 배우는 것을 어려워 한다면 평범한 수학 장애에 해당한다. 반면 발달 산수 장애는 아예 수 개념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고 수에 대한 직관적인 사고가 결여돼 있다. 미국·영국·독일·스위스·이스라엘의 연구를 보면 유병률은 3~6% 정도다. 똑똑하고 근면한 삼십대 남성이 한 자리 수 덧셈 뺄셈을 어려워하고 두 자리 수의 뺄셈을 못한다면 발달 산수 장애를 의심해 볼 수 있다.

뇌에 기능적이고 구조적인 장애가 없어도 수학을 못할 수 있다. 수학에 감정적인 장애가 있는 경우가 그렇다. ‘수학 불안’이라 부른다. 수학 문제를 풀 때 지장을 줄 정도의 긴장감으로 정의되곤 하는데, 성인의 60%에서 수학 불안이 발견된다. 수학 불안을 겪는 이들은 어떻게든 수학과 대면하는 상황을 피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이는 수학과 관계없는 학과나 직종을 선택하려는 시도로 이어진다. 수학 불안의 원인은 다양하지만, 수학 시험이 중요한 요소다. 안승철 교수 같은 전문가들이 최소한 초등학교 때만이라도 수학 시험에서 시간제한을 두지 않고 손가락이든 발가락이든 써서 문제를 풀 수 있는 기회를 허용하자고 제안하는 이유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문제를 풀어낸다면, 만족감과 성취감을 얻을 수 있고 수학 불안이 줄어들 수 있다.

경기도 인천 운서초등학교 1학년 김중훈 교사(좋은교사운동 정책위원)는 23일 “우리나라에선 수학을 어려워하는 아이들이 많은데도 왜 어려워하는지 연구가 턱없이 부족하다. 특히 발달적으로 수학에 약점을 가진 아이들을 체계적으로 도와 최악의 학습부진은 막아줘야 하는데, 만날 엘리트 교육에만 신경을 쓰느라 그걸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교사는 “‘전기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위대한 물리학자 마이클 패러데이는 수학 장애가 있었다. 한국에서 태어났더라면 아예 물리학을 공부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전정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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