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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유산 ‘청개구리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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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여 년 전, 중학교 1학년이던 어느 일요일 오전, 시험 기간이라 방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버지가 방문을 열며 밭에 감자를 심어야 하니 도와달라고 하신다. 순간 아무런 생각도 없이 시험이란 이유로 거절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알았다며 혼자 밭으로 나가신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그 이후에 공부가 되지 않는다. 집중을 하면 할수록 오히려 불안감이 몰려온다. 결국 방에서 뒤척거리다 1시쯤 밭에 가서 아버지를 도와 감자를 심었다. 마침 그 날은 어머니도 시장에 가셨고, 500평이나 되는 밭을 혼자 하시려니 감당이 되지 않아서 아들에게 도움을 청한 것이다. 아버지를 도와드리고 나니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밀린 공부는 짧은 시간에도 마무리를 할 수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집에서는 밤 12시 정도까지 공부를 하곤 했다. 그러면 가끔 11시 경에 아버지가 방문을 살짝 열고 한마디 하신다.

 

 “얘, 몸 상할라. 그만하고 자라” 그 말씀이 전부였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아버지는 아들이 피곤할까봐 자라고 했는데 오히려 잠이 오지 않는다. 그 날은 결국 밤 1~2시까지 공부를 하고 잠이 든다. 

 

 그저 도와달라는 요청을 하고 거절을 하지만 자발적으로 아버지를 도와드리는 것과 공부를 열심히 하라가 아니라 피곤하니 잠을 자라는 말을 하니 오히려 더 공부를 하고 싶어지는 마음에는 미묘한 감정이 있었다. 사람에게는 무엇을 하라고 억지로 시키면 하기가 싫어지고, 오히려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어하는 심리가 있다. 바로 ‘청개구리 법칙’이다.

 

  마대에 심은 고구마 순.jpg

  마대에 심은 고구마 순

 

이제 세월이 흘러 아들은 50대 중반이 되었으며 아버지는 80순을 훌쩍 넘으셨다. 1년 전, 아버지께서 우리집 이웃 동네로 이사를 왔다. 전 동네에서는 경노당에도 다니시고, 친구들도 만나셨는데 이제는 이 곳의 경로당에도 가지 않는다. 모든 것이 낯설으신가보다. 이제는 만나는 친구들도 없다. 그래서 지난해 동네를 돌아다니며 1평짜리 텃밭을 구했으며 자주 그곳에 가곤 하셨다. 하지만 올해는 다리가 불편하셔서 가지 않으신다. 그래서 가까운 곳에 텃밭을 구하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그러나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했던가! 동네를 수없이 다닌 끝에 드디어 빈 땅을 발견했다. 그 곳은 아파트와 도로의 사이에 있는 자투리 땅이었는데, 그 형태가 마치 단종 유배지인 청령포와 같이 입구가 매우 좁았다. 하지만 그 안은 15평 정도로 넓었다. 거기에는 쥐똥나무가 많이 심어져있었고 밖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그 곳을 꼼꼼히 살핀 후, 텃밭으로 결정했다. 대략 2주 정도의 일정을 잡고 공사를 하기로 했다. 먼저 시선 차단용 펜스의 설치가 필요하다. 밖에서의 불필요한 시선이 부담되기 때문이다. 철물점에서 펜스 재료를 구입하고 꽃집에서는 계분과 꽃을 사면서 플라스틱 화분 8개를 공짜로 구했다. 양재동 꽃시장에 2번 가서 장미꽃 10그루와 펜스용 나무, 그리고 할미꽃, 비비추, 용담,원추리, 붓꽃 등 야생화도 구입했다. 하지만 그 곳의 땅은 공사 자재가 혼합되어서 매우 딱딱하다. 그래서 비가 오는 날을 기다렸다. 비가 와야 땅이 물러지기 때문이다. 드디어 비가 오는 날, 4시간의 야간 공사를 감행했다. 우선 쥐똥나무를 외곽으로 이식하고 펜스도 설치했으며 화분에도 흙을 채워 넣었다. 그 칡흙같은 밤에 고구마순도 심었다. 물론 이 것의 생존을 높이기 위하여 순을 사다가 2주 동안 물에 담가두어 뿌리를 내렸다. 그리고 신공법(?)으로 심었는데 마대 자루에 거름과 흙을 섞어서 가득 채운 다음 바닥에 놓고 고구마 순을 심었다. 며칠 후, 딸이 좋아하는 토란과 돌아가신 어머니가 좋아하셨던 한련화도 심었다. 이래서 2주간의 공사는 마무리가 되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아버지에게 “아버지, 밭에 고구마를 심었어요”라고 보고를 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즉시 “왜, 쓸데없이 그런 것을 심니”라며 핀잔을 주신다. 하지만 그 말씀의 로고스는 금방 해석이 되었다. “아들아, 너의 일도 하기 힘든데 왜 그런 것까지 신경을 쓰니. 아버지는 그런 것 하지 않아도 된다”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런 말씀을 하시고 아버지는 무척이나 궁금하셨나보다.

 

아내의 말에 따르면 고구마 밭을 찾으려고 동네를 돌아다녔다고 한다. 그러나 그 장소가 너무 은밀하여 결국 찾지를 못하셨다. 며칠 후, 밤에 아버지의 방에 들어가서 “아버지, 내일 고구마 밭에 가실래요”라고 하니 슬며시 동의를 하신다. 그래서 다음 날 밭에 함께 갔다. 그런데 등잔 밑이 어둡다고, 그 곳은 집에서 200미터 거리에 있었음을 아버지는 알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화분에 채소를 바로 심으시라는 말을 남기고 먼저 나왔다.

 

씨앗에서 나온 해바라기 새싹.jpg 

 

일주일 후, 과천에서 강의가 끝나고 그 근처에 사는 큰 누이의 집을 방문했다. 그래서 고구마 밭에 대한 자초지종을 말하니 “네가 아버지에게 청개구리를 써먹는구나”라고 웃는다. 그 날 저녁, 밭에 슬쩍 들르니, 6개의 화분에 상추와 고추가 심어져 있었다. 그리고 고구마를 쌀포대에 심은 것에 대하여 아버지는 ‘옛날에 내가 해봤는데 다 죽었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고구마는 50% 정도는 죽었지만 절반이 아직도 싱싱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

 

 

청개구리 법칙은 휴머니즘이다. 그 속에는 배려와 믿음, 그리고 진정성이 있다. 피곤하니 이제 그만 자라는 말속에는 자식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배려가 숨어있었다. 그래서 공부하란 말을 듣지 않고도 대학에 갈 수 있었다. 그 유산은 또한 대물림이 되어 두 아이에게도 ‘공부해’라는 말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딸은 대학교에 들어갔다. 아들은 이미 고1이던 지난해 대학이 아니라 학과를 스스로 결정했으며 준비를 하고 있다. 또한 자신의 미래에 대하여 스스로 결정하고 준비를 하고 있다.

 

 

 

양육에서 청개구리 법칙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그리고 공부지상주의가 판치고, 선행학습이 기승을 부린다. 초등학교 6학년 아이가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수학의 정석을 배우기도 한다. 남보다 잘 되기 위하여 남보다 앞서야 한다고 부모들은 늘 강변한다. 그리고 좋은 대학에 들어가야 좋은 직장을 얻을 수 있고, 좋은 배우자를 만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런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그리고 창살이 없는 감옥에서 지내는 불행을 경험하고 있다. 그 결과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는 양육이 아니라 사육으로 변하고 있다. 그러므로 아이들은 행복하지 않다. 아이들은 놀고 싶다. 그러나 노는 것은 사치라고 한다. 나중에 성공하면 마음껏 놀 수 있다고 아이를 달랜다. 놀이가 없는 세상에서 사는 아이들, 그리고 공부에만 매달리는 아이들에게 아날로그적인 감성은 점점 메말라간다. 그 결과 중학생이 되면 대화가 없는 가정이 현저하게 늘어나고, 중3보다 무서운 중2가 탄생하며, 중고생의 사망률 1위는 자살이란 사실이다.

 

과연 우리는 무엇을 위하여 사는 것일까? 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수단을 정당화하는 것일까? 결국, 부모는 부모의 잣대로 아이의 인생을 재단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아이를 믿지 못하는 불신이 쌓이고, 반복되면서 부모의 인생도 고달파진다. 물론 그 이면에는 아파트 포플리즘이 한 몫을 하기도 했다. 우리는 누구나 나의 인생을 꿈꾸고 그렇게 살려고 한다. 프로이드도 15살이 되면 어른이나 아이나 비슷한 사고방식으로 산다고 말하고 있다. 이젠 아이들도 자기 주도 인생법을 가지고 있음을 인정하는 부모의 믿음이 필요하다.

 

아버지가 심은 상추와 고추.jpg 

 

그동안 청개구리 법칙은 즐거웠고 유용했으며, 늘 양육의 중심에 있었다. 바로 아이가 스스로 하려고 만들기 때문이다. 그 비법은 별로 어렵지 않다. 아이를 끌고 가려고 하지 않고, 조금만 아이의 마음을 기다려주면 충분하다. 하지만 미래에는 청개구리 법칙이 더욱 그리운 시대가 될 것이라 예측되기에 많이 아쉽다.

 

어젯밤 퇴근하면서 텃밭에 가보니 진한 쟈스민 향이 코 끝을 스치운다. 그런데 가까이 가보니 쥐똥나무가 꽃을 활짝 피었으며, 거기에서 나는 향기였다. 경계목으로 천대받던 나무에서 새로운 발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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