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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예찬론 (부제 : 딸없인 못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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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하나만 키울 때는

아들 키우는 재미에 빠진 엄마들의 이야기를 솔직히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막상 아들을 낳아 키워보니 그때 들었던 엄마들의 말이 어떤 뜻이었는지

이젠 충분히 알 수 있을 것 같다.

아들들의 단순함, 순진함, 갖가지 본능에 너무나 충실한

그들의 수많은 인간다움(?)들이 엄마의 모성애를 마구마구 샘솟게 하고

뭔가 2% 부족해 보이는 아들의 그 어떤 부분들이

엄마의 보호본능 지수를 대책없이 높여준다는 걸

나도 이제 매순간 경험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끔 아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장난감과 함께 무아지경 상태로

놀고 있는 모습을 흐뭇한 엄마 미소로 바라보고 있는 나 자신을 느낄 때

어떤 드라마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된다.

겨자색 고운 한복에 갓을 쓴 늠름한 아들을 보며 그의 모친이 하는 말;

"뉘집 도련님인데 이렇게 잘 생겼을꼬?!" (출처 : 성스)

 

만약 아들을 키워보지 않았더라면 이런 깨알같은 재미를 모르고 지나갈 뻔

했으니, 엄마로서의 삶을 더 다양하고 풍성해게 해 주는 둘째가 참 이쁘다.

 

하지만!!  우리 아들에겐 너무 미안한 얘기지만,

나는 역시 딸이 좋다.

 

사촌들 중에도 딸이 귀하고 형제도 아래 위로 오빠와 남동생에 둘러쌓여

자란 나는 딸을 꼭 낳고 싶었다.

살면서 분수에 맞지않는 큰 욕심을 부린 적이 없지만,

아이를 낳는다면 꼭 하나만이라도 딸을 키워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 소원대로 나는 첫딸을 낳았다.

순하고 착하기 그지없을 거란 모든 식구들의 예상을 깨고

예민*고집*내성적인 성격으로

이 아이를 키우면서 우리 부부는 고생을 무지 했다.

하지만 예민한 만큼 섬세하고 꼼꼼한 딸의 성장을 지켜볼 수 있었던

매 순간순간이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닫게 해 주었다.

 

딸은 그렇게 5년이 넘게 혼자 자라다가

기다리던 동생을 보게 되었다.

동생이 엄마 뱃속에서 헤엄치듯 열 달을 지낸다는 얘길 듣고

'그럼 뱃속에서 아기가  수영복을 입고 있느냐'며 진지하게 묻던 딸은

다시 동생과 함께 지금까지  5년을 지내왔다.

엄마의 사랑을 나눌 수 밖에 없는 동생을 질투하기도 하고

나이 차이가 나는 동생에게 항상 양보해야 하는 현실에 분노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딸은 동생에게 든든한 누나가 되어주었다.

 

내가 바쁠 때면 동생 밥도 먹여주고 대충 씻겨도 주고

나쁜 생활습관도 교정?시켜주고, 책도 읽어주고 가끔 공부?도 가르쳐주고

세상에 나가서 지켜야 할 수많은 약속/규범들과

다년간 유치원과 학교생활에서 갈고닦은

고난이도의 인간관계 기술도 꼼꼼히 전수해 준다.

(누나의 이런 노력에도 별 발전이 없는 남동생은 좀 안타깝다;;^^)

 

이제 그런 딸이 벌써 4학년이 되었다.

사교육 보기를 돌같이 하던 이 엄마도

급속도로 난이도가 높아지는 교과과정에 긴장하며 딸의 학습력에

보탬이 될 갖가지 정보에 안테나를 세우곤 한다.

그런데 요즘 딸이 보여주는 생활 전반의 모습이 다소 흔들리던 엄마 마음을 다잡아 주었다.

학교 공부와 집에서 조금씩 하는 공부 외에는 자유롭게 자기 시간을 누리더니

조금씩 자기만의 세계를 발견해가는 징조를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과학과 미술 시간을 무척 좋아하는 딸은

요즘 동물에 대한 책에 푹 빠져 산다. 밥을 먹다가도 갑자기

"<거북이에 대한 모든 것>같은 책은 없을까?"  라고 묻거나

같이 동물에 관심이 많은 단짝 친구와 <시튼 동물기>시리즈를 돌아가며 읽고 있다.

동식물이나 자연현상과 연관된 것들, 무엇이든 손으로 그리고 만드는 것들이라면

몇 시간이고 몰두해서 혼자 자료를 찾고 책을 읽거나 만들곤 한다.

학교 생활도 재미있고 날마다 새로운 일을 경험하고 새로운 걸 알아가는

하루하루가 늘 두근두근거리는 모양이다.

얼마전부터 읽기 시작한 <빨강머리 앤>의 주옥같은 명대사들을

초여름의 이른 아침에 밥을 먹으며 조잘조잘 들려줄 때의 그 기쁨이란!

그런 열 살 즈음 아이의 일상을 지켜보는 엄마도

'오늘은 또 딸한테서 어떤 새로운 이야기를 들을까'설레이고 행복하다.

 

예민하고 부끄럼이 많아 험한 이 세상에 잘 적응할까 늘 걱정이었는데

그런 성격이기 때문에 남들이 그냥 지나치는 세상의 세밀한 부분을

디테일하게 보고 느끼고 경험할 수 있다는 걸 엄마는 이제야 깨닫는다.

그리고 외부로부터 주입되는 교육이나 정보가 별로 없었기 때문에

아이의 내면에 잠자고 있던 고유한 성향들이 스멀스멀 드러날 수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것도 요즘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

 

그래. 외부의 다양한 자극과 교육을 아이에게 제공하는 게 절대 나쁜 건 아니다.

다만, 너무 많은 정보가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그 아이만의 '무엇'을 스스로 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늦추거나 포기하고 싶게 만들지 않을까 그게 걱정스럽다.

내성적인 딸의 성격을 한때 심각하게 고민하며

수전 케인의 <콰이어트>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시끄러운 세상에서 조용히 세상을 움직이는 힘으로 내향적인 성격을 지지했던

작가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이 이 책에서 가져갈 수 있는 오직 한 가지 통찰이 있다면,

나는 그것이 '자기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여도 된다'는 느낌이라면 좋겠다.

장담하건대 그런 관점은 우리 인생을 바꾸어 놓을 수 있다."

 

아이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의 삶에 참견하지 않고 묵묵히 지켜보는 건

여전히 나에게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자주 수줍어하고 한 발 앞서 나서기를 꺼리는 아이지만

자기 삶을 자기 방식대로 즐기며 살아가는 딸을 보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방해하지 않고 그 뒤를 잘 지키는 것 아닐까 싶다.

언젠가 읽고 인상적이었던 '부끄러워도 씩씩할 수 있다'는 기사 제목이 생각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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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딸이 이번 주면 태어난 지 만으로 꼭10년이 된다.

유치원 마당 한 복판에서 같이 놀 친구를 못 찾아 소심하게 서 있다가

결국엔 훌쩍거리며 울던 아이.

그런 아이를 뒤로 하고 돌아오는 길에 너무 많이 울었던

7년 전의 나에게 문자메시지라도 한통 보내고 싶다.

 

"유리, 잘 크고 있답니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라고.

 

딸이 태어난 달.

6월은 처음 엄마가 되어 서툴고 어설프기만 했던 지난 육아의 시간들을 늘 돌아보게 한다.

아이가 부족한 자기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지켜봐주는 것과 함께

나 역시 부족한 내 모습 그대로를 인정하며 남은 삶을 살고 싶다.

딸과 함께라면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추신: 아들아, 조만간에 <아들예찬론>도 쓸께. 기다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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