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발달장애인 부모 모임인 ‘기쁨터’의 15주년 기념 전시회 ‘열다섯살 기쁨터 안부를 전하다’에서 정도운 작가(오른쪽)와 어머니 고유경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수석부회장이 정 작가의 작품 <카멜레온> 앞에 다정히 서 있다. 정도운 작가 제공
고유경 참학 수석부회장 ‘특별한 양육’
아들 정도운 작가 캘리그라퍼 전시
맹목적 치료 대신 함께 시간 보내고
24시간 밀착육아 대신 자립심 키워
4남매 키우며 학생인권 관심 가져
아들 정도운 작가 캘리그라퍼 전시
맹목적 치료 대신 함께 시간 보내고
24시간 밀착육아 대신 자립심 키워
4남매 키우며 학생인권 관심 가져
‘캘리그래퍼’(글씨예술가)가 된 자폐성 장애 2급 아들을 포함해 3남1녀를 키우며 ‘학부모 운동가’가 된 한 어머니의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교육법’이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1~6일 서울 이화여대 조형예술대학 이화아트센터에서 첫 개인전 ‘정도운의 중얼중얼 래퍼파티’전을 여는 정도운(20) 작가와 고유경(51)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참학) 수석부회장 모자의 얘기다.고 부회장의 둘째 아들인 정 작가는 두 돌 무렵까진 별 징후가 없는 평범한 아이였다. 하지만 두 돌이 지난 뒤에도 말을 하지 않고, 자꾸 원하는 것이 있는 쪽으로 엄마의 손을 잡아끌었다. 고 부회장이 ‘지켜보자, 지켜보자’ 하다가 병원에 데리고 간 게 세 돌 무렵이었고, 그때 자폐증 진단을 받았다. 정 작가가 여섯살이 될 때까지 고 부회장의 삶도 여느 발달장애인 부모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아들이 좋아지리란 기대를 버리지 않았다. 한달에 200만~300만원 정도를 아이 치료에 쏟아부을 정도로 맹목적으로 치료에 매달렸다.정 작가 가족이 ‘다른 길’을 걷기 시작한 건 ‘기쁨터’라는 발달장애인 부모 모임을 만나면서부터다. 고 부회장은 정 작가가 여섯살 때부터 이곳에서 여러 자폐증 아이들을 지켜보며 ‘완벽하게 괜찮은 아이로 만들겠다’는 헛된 기대를 비교적 일찍 접었다. 대신 다른 발달장애 가족들과 아픔을 공유하며 ‘현실적인 최선’을 찾아 나갔다.고 부회장은 아들의 특별함은 인정하되, 양육은 최대한 평범하게 했다. 정 작가는 자폐증 가운데 ‘특별한 재능’이 있는 소수에 해당됐고, 재능은 그림과 글씨로 나타났다. 상당수 부모들이 자폐 성향이 강화될 수 있다며 그림 등 한가지 일에 집착하는 걸 막지만 고 부회장 부부는 달랐다. 남편이 회사에서 이면지를 가져와 ‘무한제공’했고, 정 작가는 원하는 걸 마음껏 그리며 욕구불만을 해소하고 재능을 다졌다.정 작가한테는 다른 세 자녀와 다른 특별 대우도 별로 없었다. 고 부회장은 정 작가에게 ‘올인’하지 않고 네 자녀 모두에게 ‘한몫씩’ 사랑을 쏟았다. 다른 자녀의 교육비와 정 작가의 치료 효과를 고려해 치료비는 ‘쏟아붓기’가 아닌 ‘선택과 집중’을 택했다. 놀이치료와 사회성치료, 미술치료, 언어치료 가운데 두 개 이상 중복하지 않았다. 정 작가의 장애 정도가 심하지 않은 덕분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지만 발달장애인한테 흔한 ‘24시간 밀착 육아’도 없었다. 정 작가는 형과 함께 일반 초등학교를 다녔다. 담임이 없어 혼자 다니기 벅찬 대학 진학은 보류했다. 가족들의 힘으로 벅찬 부분은 서울미술고와 강남장애인복지관 등 기관과 외부 활동을 하면서 이어진 ‘고마운 인연’으로 메웠다.고 부회장은 3남1녀를 키우면서 갖게 된 ‘학생인권’에 대한 관심을 ‘참여’로 발전시키기도 했다. 그는 “아이들 진학을 알아보다가 장애인은 둘째치고 비장애인 아이들도 학교에서 입시 말고는 인권이 없다는 걸 알게 됐다”며 “개인적으로 학교에 의견을 표명하는 데는 한계가 있어 참학 활동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아이들한테 24시간 매달리지 않고 한국 교육에 기여하는 활동을 하면서 스스로 좀 더 존재감을 느낀다”고 말했다.전정윤 기자 ggu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