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다옥 교사의 사춘기 성장통 보듬기
우리집은 지난주 한참 큰아이 고등학교 원서 쓰는 문제로 의견이 분분했다. 일반고 원서를 쓰는 거라 특별하게 고민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이래저래 후보로 삼은 세 학교 가운데 한 곳을 선택하는 게 쉽지가 않았다. 남편과 내가 바라는 곳은 아이가 “친한 애들이 안 간다”며 난색을 표했고, 아이가 갈까 하는 곳은 우리 동네에서 살짝 벗어나 있는데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학교여서 내키지 않았다. 나머지 학교도 이런저런 이유로 약간씩 엇갈렸다. 몇 차례 얘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아이는 트집도 잡고 짜증스러워했다. 정말 친구들을 따라가길 원한다면 보내야겠다 생각하고 그렇게 말해줬는데도 아이는 자신이 원하는 바를 분명히 하는 걸 힘들어했다. 물론 우리의 권유를 받아들이는 것도 계속 주저했다. 자신도 얼마나 답답했는지 차라리 뺑뺑이로 정해졌으면 좋겠다는 말까지 했다.예전에 여름 내내 가출해 있다가 학교로 돌아온 중3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도 고등학교 원서를 쓰면서 많은 고민을 했던 게 기억난다. 출결에 이미 많은 펑크가 있었기 때문에 마땅히 어디를 가겠다 결정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때 아이가 제일 힘들어했던 건, 오랜 시간 가정이 안정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주변에 친척 어른들은 있어도 아이 입장에선 의논할 사람이 없다는 거였다. “고등학교 어디 가야 하나 걱정이에요. 마음이 미치겠고 힘들어요. 부모님과는 원래 얘기 잘 안 하고, 학교 이런 거 잘 모르시니까. 정확히 잡아주고, 알려주는 사람이 없으니까 답답하죠. 뭐라도 막 하라 그래주면 좋겠다 싶기도 하고. 후회도 많이 돼요.” 그렇게 고민을 거듭하는 사이 주저주저하면서 주변 어른들에게 자신의 상황을 얘기하고 왔었다. “그래도 고등학교 문제니까. 어른들한테 얘기해야 더 나은 학교 갈 수 있으니까…. 혼자 생각하는 것보다 어른들한테 얘기하는 게 더 낫잖아요. 가족한테 처음 얘기했어요. 학교생활, 성적. 그런데 말했더니 도리어 잘 받아주고, 좋은 말씀 많이 해주셔서…, 생각지도 못했는데….”요즘 부모들은 자녀에게 어느 학교에 가야 한다고 강요하는 게 예전보다는 덜해진 것 같다. 아이의 선택과 결정을 더 존중해주는 쪽으로 가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또 한편으론 부모의 자신감이 떨어졌기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실제로 괜히 부모가 결정했다가 나중에 아이의 원망을 듣게 될까봐 가급적 아이가 원하는 걸 들어주려 한다는 얘길 주변에서 많이 듣는다. 나중에 학업이나 대인관계에서 적응을 잘 못하거나 문제가 생길 때 “이게 다 엄마 탓이야”라며 원망을 쏟아낸다면 그 원망을 다 받아낼 자신이 없는 거다. 그렇게 된 데는 시대가 많이 바뀐 것도 영향을 준 것 같다. 진학이며 진로 문제 등이 예전처럼 단순하지 않아 경험자인 부모조차도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상황이긴 하다. 결과를 책임질 자신이 없으니 아이한테 강하게 권할 수가 없다.부모인 나도 이런 마음인데 아이는 오죽할까 싶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결정하자니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을지 불안하다. 부모가 권하는 학교를 얄짤없이 거부하는 건 큰 부담이다. 그렇다고 부모의 권유대로 하자니 마음에 차지 않아 괴롭다.사춘기 아이들이 뭐든 다 자기 마음대로 하려고 하는 것 같지만, 그렇게 독립성만으로 가득 차 있진 않다. 자신의 뜻대로 행동하길 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의 가치나 선택에 대해서 허락을 받고 싶어 하고, 위로와 지지를 얻고 싶어 한다. 아직은 모호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어른의 세계에 대해 불안 또한 적지 않기 때문에 부모나 다른 어른으로부터 도움을 받고 싶어 하는 의존성이 여전한 것이다.의존성과 불안은 서로 함께한다. 의존하고 싶은데 의존하지 못하게 되면 불안해지고, 이 불안이 다시 의존하게 만든다. 그러니 함께 얘기를 나눌 가까운 상대가 되어주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면 좋겠다. “같이 한번 알아보자. 엄마, 아빠도 좀더 찾아볼게. 너도 친구들에게 물어보고 더 얘기해보자.” 어떤 결정을 내리게 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선택을 하기까지 아이가 원할 때 곁에서 관심을 기울이는 게 중요하다. 그 과정에서 아이가 원하는 것에 대해 즉각적인 반대나 비난은 하지 말아야겠다. 만약 아이의 선택이 걱정되는 쪽이라면 부모의 염려도 전하면 좋다. 그럴 때라도 먼저 아이의 표면적인 말이 아니라 아이가 정말 원하는 바가 뭔지를 알려고 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 “이렇게 해보는 건 어떨까?” 권유해볼 수도 있겠다. 이런 말에 아이가 투덜거린다 해도 “그럼 네 생각은 어떠니?”라고 하며 다시 들어보면 된다.
아이들은 감시나 간섭은 원하지 않지만 관심은 원한다. 아이가 자신의 독립성을 느낄 수 있으면서도 부모의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의존성까지 잘 충족시켜줄 수 있는 그 거리를 정하는 것, 즉 ‘경계선을 잘 세우는 일’이 부모의 중요한 역할이 아닐까 싶다.윤다옥 한성여중 상담교사·사교육걱정없는세상 노워리 상담넷 소장
윤다옥 한성여중 상담교사·사교육걱정없는세상 노워리 상담넷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