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살 아이 통해 평화의 꿈 담아
나무도장
권윤덕 글·그림
평화를품은책·1만6800원
<꽃할머니>의 작가 권윤덕이 <나무도장>을 팠다. 꽃을 좋아했던 할머니,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의 아픔에 깊숙이 다가섰던 작가가 이번엔 해방공간, 제주 4·3의 슬픔 속으로 걸어간다.
그림책 <나무도장>은 ‘시리’라는 열세살 여자아이와 그 어머니, 외삼촌의 이야기다.
반들반들 손때 묻은 나무도장을 어머니는 왜 그리 소중히 간직했을까. 오늘은 제삿날, 놋촛대와 놋향로 깨끗이 닦아놓고 제사 준비하다 말고, 어머닌 왜 시리더러 어딜 함께 가자는 걸까.
“어머니 걸음이 빨라진다/ 어머니는 아무 말이 없다/ 어머니에겐 비밀이 많다.”
산자락 검불 헤집고 큰 나무 뿌리가 돌무더기 감싸안고 뿌리내린 곳. 그 아래로 난 작은 구멍, 어머닌 다리 먼저 쑥 밀어넣고 시리는 어머니 손을 잡고 그 동굴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이 그림책은 출간에 앞서 미리 읽은 아이들(시흥 승지초등학교 5학년 3반)의 말처럼 “궁금증을 계속 불러일으킨다.” 어머니가 그예 시리에게 들려준 얘기는 동굴이 간직한 이야기, 동굴에서 벌어진 “그 일”, 무고한 죽음과 학살의 이야기. 시리는 기억에 없는, 세살 난 시리를 품에 꼭 품고 죽어간 엄마의 이야기.
<나무도장>은 “그 일”로부터 10년쯤 뒤 시리가 13살이 된 그 제삿날, 어머니의 ‘고백’을 담았다. 어머니는 남동생이 경찰인 덕에 “나만 살아남은” 생존자다. ‘빨갱이 가족’으로 남편 잃고 부모도 잃었다. 남동생, 그러니까 시리의 외삼촌은 학살에 가담한 경찰. 그는 동굴에서 끌려나온 어느 아주머니 품에 매달린 아이의 눈길을 피할 수 없었다. 세살이나 됐을까, 어머니는 외삼촌과 함께 주검 더미 속에서 시리를 찾아내어, 지금까지 키웠다.
어머니는 천장 물방울 떨어지는 동굴에서 10년을 소중히 간직해온 나무도장을 시리 손에 쥐여 준다. 죽은 이의 치마폭에 폭 싸여 살아남은 세살배기 아이가 한참이나 손에 꼭 쥐고 놓지 않던 것이 그 도장이라 했다.
작가는 이 그림책에 3년을 쏟았다. 제주행 비행기를 타고 4·3항쟁 유적지를 톺고 생존자들을 만나고, 4·3 연구서와 증언집을 새겼다. 피해자이면서 가해자 가족인 어머니, 피해자이자 가해자인 외삼촌, 그 가해자가 살려낸 생명의 이야기는 그 안에서 돋아났다.
권윤덕 특유의 유려하고 절제된 그림은 그 숱한 이야기를 시리의 눈망울에 담았다. “희미한 불빛 아래서 나무도장을 들여다보”며 시리는 묻는다. “어머니, 그럼 나도 빨갱이예요? 빨갱이가 뭐예요?” 어머니가 답한다. “글쎄… 나도 모르겠다. 바다 건너 들어온 말이지….” 초등 4학년부터.
허미경 기자 carme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