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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할머니 몇번이나 업어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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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53844005_20160325.JPG 그림 창비 제공
아이 한마디가 시가 되는 까닭
박성우 시인 즐거운 동시 80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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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한 바퀴
동물학교 한 바퀴

박성우 글, 박세영 그림
창비·각 권 1만1000원

<거미>와 <자두나무 정류장>의 시인 박성우(45)가 동시집 두 권을 한꺼번에 냈다. <우리 집 한 바퀴>와 <동물학교 한 바퀴>다. ‘박성우 그림동시집’이란 어깨제목을 두르고 각기 40편씩 펴놓은 두 동시집은 기실 이 아빠 시인의 단독 저작이 아니다. 시인의 고백대로 “이번 동시집은 대부분 딸애에게서 안아온 것들”이니, 또 다른 저작권자는 올해 갓 아홉살이 된 딸인 셈이다.

“아빠? 응!/ 엄마들은 왜 아가 재울 때/ ‘코’ 잘 자, 해?/ 눈이 자니까/ ‘눈’ 잘 자, 해야지!// 코가 진짜 자면 큰일 나잖아, 그치?// 아빠, 눈 잘 자/ 엄마, 눈 잘 자.”(‘눈 잘 자’)

딸아이 ‘규연’이 아홉살이 되기까지 같이 놀고 밥 먹고 업어주고 잠자며 밥풀처럼 붙어 있던 시간을 헤아리니 겨우 3년이 조금 넘는다는 아빠가 딸과 주고받은 말, 아이의 순도 99% 질문은 그대로 촌철살인, 시가 된다.

“나중에 아빠 늙으면/ 규연이가 아빠 업어 줘야 해?// 그래 알았어.// 근데 아빠,/ 아빠는 할머니 몇 번이나 업어 줬어?”(‘몇 번이나 업어 줬어?’)

그림 창비 제공
그림 창비 제공

아이의 말마디가 시가 되는 까닭은 거기에 언감생심 교훈을 덧대지 않는 시인의 투명한 시선에 있지 않겠는지. “구름하고 바람하고 싸우면 누가 이길까?/ 싸우면 안 돼.// 개미하고 코끼리하고 싸우면 누가 이길까?/ 싸우면 안 돼.// 호랑이하고 도깨비하고 싸우면 누가 이길까?/ 아빠도 참, 싸우면 안 된다니까!/ 아빠하고 나하고 싸우면 좋아?”(‘누가 이길까?’) 교훈은 외려 아이의 몫이다. 아빠는 아이에게서 시를, 신발끈 다시 매는 초심을 배운다.

어린 아이가 소록소록 자는 모습만한 평화가 있을까. 아이가 아빠와 함께 잠든 한낮의 시간만한 평화가 있을까? “예전에는/ 발로/ 아빠 귀를 만져야/ 보들보들/ 잠이 잘 왔는데// 이제는/ 발로/ 아빠 머리카락을 만져야/ 보들보들/ 잠이 잘 온다.”(‘잠이 잘 와’ 부분)

한 바퀴란 말은 두 동시집의 ‘공용어’인데, <우리 집…> 시편을 주르륵 읽어내리면 아이와 엄마, 아빠가 사는 집, 할머니의 시골집까지 한 바퀴 돌고 온 것 같다. <동물학교…>는 아이 학교생활 구경이랄까, 동물들 성질을 있는 그대로 보려는 시인의 마음 시편들이랄까.

“토끼 키는/ 머리까지 재야 하나, 쫑긋한 귀까지 재야 하나?”(‘토끼 키 재기’)

“거북아, 시력 잴 때 목을 길게 빼는 거 아니야.”(‘거북이 시력검사’)

“말미잘은 음악 시간에도 몸을 흔들흔들/ 말미잘은 체육 시간에도 몸을 흔들흔들/ (…)/ 말미잘은 오줌 눌 때도 몸을 흔들흔들.”(‘즐거워서 그러는 거야’) 운동장과 교실에서 동물들이 지내는 모습, 아니 아이들 저마다의 행동거지를 엿보는 듯 입꼬리 빙긋 올라가게 하는 동시다. 5살부터.

허미경 선임기자 carm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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