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지나가지 마!
이자벨 미뇨스 마르틴스 글
베르나르두 카르발류 그림, 민찬기 옮김
그림책공작소·1만2000원
“이제부터 너는 아무도 못 지나가게 지켜!”
어느날 말을 탄 장군이 총을 든 군인한테 이렇게 명령한다. 언제든지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책의 오른쪽 면을 비워두라는 것이다. 이에 군인은 무턱대고 그림책의 오른쪽면 앞을 지킨다. 사람들이 한둘 모여들지만, 오른쪽으로 넘어가려는 걸 제지당한다.
그런데 아이들의 공이 통통 튀어 오른쪽으로 넘어가 버린다. 아이들과 강아지는 공을 찾으려 처음으로 책의 오른쪽 면으로 넘어가고, 보가 터진 듯 모든 사람이 따라 넘어간다. 뒤늦게 나타난 장군이 사람들을 체포하려 하지만, 사람들의 항의가 이어지고 되레 장군이 말에서 떨어진다. 장군은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대체 누구란 말이냐?”라면서 떠난다.
책의 앞면에는 62명의 등장인물이 일일이 나열돼 있다. 62명이 오른쪽으로 넘어가야 하는 이유를 짚어보는 것은 이야기를 상상하는 과정이 될 터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이 과정에서 이들 모두가 이 책의 진짜 주인공임을 깨닫게 된다. 참고로, 책의 마지막에는 갓 태어난 아이 ‘비바’까지 등장해 등장인물은 63명으로 늘어난다. 책 속에는 다수의 동의와 합의라는 개념이 숨어있는데, 이는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로 아이들을 안내할 것이다.
그림책은 오른쪽 면을 비워두고 말풍선 안에 손글씨를 써넣는 등 독특한 구성과 디자인을 갖고있다. 화려하고 예쁜 그림만 보던 아이들이 처음엔 낯설어 하겠지만 책장을 넘기다 보면 어느새 친근감을 느낄 것이다. 싸인펜으로 거칠게 그린 듯한 느낌의 그림은 2015년 포르투갈 카툰대전에서 최고 일러스트레이션 상을 받았다.
안창현 기자 blue@hani.co.kr, 그림 그림책공작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