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밤, 자취를 하는 아들이 일주일 만에 돌아왔다. 먼저 할아버지 방의 방문을 열고 인사를 한다. 그리고 엄마를 보더니 신나게 이야기를 한다. 나는 거실에서 안방으로 슬쩍 들어왔다. 그리고 30분 후, 아들이 불쑥 들어왔다. 그러면서 “아빠, 알파고 때문에 저녁 공짜로 먹었어요”라며 자랑스러운 표정이다. 내용을 들어보니 3일 전, 친구가 바둑을 둘 줄 아느냐고 물어서 조금 안다고 했다. 그러자 친구는 모바일로 바둑을 두자고 하며 저녁 내기를 제안했다. 아들은 일부러, 아슬아슬한 점수인 5점 점도만 이겼다고 한다. 그리고 바둑이 끝나자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서 친구에게 카드를 보여주었다. 그러자 그 것을 보는 순간, 동공이 확대되면서 두 손, 두 발을 들고 항복을 표시했다. 그것은 바로 한국기원에서 발급한 바둑 아마 5단증이었다. 친구의 실력은 동네 8급 정도였다고 한다.
» 아들이 가지고 있는 바둑 관련 자격증.
아들은 그동안 학교 생활이 너무 바빴다고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5개의 동아리에서 활동을 했으니 오죽 하랴. 그래서 한마디했다. "아빠도 대학교 1학년 때 4개의 동아리 활동을 했단다." 그러자 아들은 배시시 웃으며 위로를 받는 듯하다. 역시 에너지 넘치는 활동은 부전자전이다. 그러면서 불쑥 “학교에서 바둑 동아리를 만들려고 하는데 아빠의 의견은 어때요?“ 라고 묻는다. 아들은 대학생이 되면서 이런 점이 달라졌다. 자신이 정확히 모르는 것이 있다면 정중하게 질문을 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그것을 만들면 시간을 많이 빼앗겨서 다른 활동에 지장이 오는 것을 염려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만일 시간이 조금 여유가 있으면 만들어봐. 그리고 관리는 후배나 하급자에게 맡길 수도 있잖아. 네가 굳이 동아리도 만들고, 관리까지 일일이 할 필요는 없잖아. 세상일이란 내가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어.“ 그러자 아들은 그 의미를 받아들였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인공지능 알파고와 이세돌 간의 세기의 빅매치로 우리 사회에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알파고 개발자 하사비스의 말에 따르면 인공지능이란 빅데이터를 통하여 딥러닝으로 스스로 학습한다는 사실을 통하여 놀라움과 실체를 파악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미래에는 인공지능으로 인하여 일자리를 빼앗길 수 있다는 심리적인 절벽도 상상할 수 있었다. 더구나 이번 사건으로 긍정적인 일도 많다. 우선 많은 사람들이 미래의 직업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바둑학원의 수강생이 늘었으며, 바둑을 모르는 여성들도 이세돌이 4국에서 보여준 신의 한 수인 78수를 기억한다. 정부에서는 민간주도의 ‘인공지능연구소를 설립하고, 5년간 1조원을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무엇보다도 세계는 드디어 제4차 산업혁명의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 바둑 대회 우승 상패.평소에 바둑을 모르는 사람들도 이번 사건으로 바둑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 덕에 아들도 밥 한끼를 얻어먹었다. 아들은 초등학교 1학년부터 바둑을 시작했다. 물론 할아버지와 오목과 알까지를 하면서 동기부여가 되었다. 그리고 2학년 쯤, 바둑을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아들아, 힘들지 않니? 힘들면 바둑을 그만둬도 돼. ”라고 물었다. 그러자 “아빠, 지금까지 투자한 것이 얼만데 그만둬요?”라고 항변한다. 3학년 때는 슬럼프가 왔다. 친구들이 모두 게임을 하는데 자신만 게임을 모르기 때문이다. 아들은 아빠 몰래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바둑의 급수는 더 이상 올라가지 않았다.
그래서 날을 정해서 아들이 좋아하는 돈가스를 사주면서 아들의 속마음을 들어보기로 했다. 아들이 돈가스를 다 먹은 후에 “아들아, 아빠는 네가 바둑을 잘 두어서 프로기사가 되고 싶다면 바둑을 계속했으면 해. 그리고 게임을 좋아해서 프로게이머가 되는 것도 찬성해. 그런데 지금처럼 바둑도 두고, 게임도 한다면 프로기사도 되기 어렵고, 프로게이머도 되기 어려워. 힘들겠지만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해”라고 말했다. 그러자 아들은 심각한 표정이다. 그래서 일주일의 말미를 줄테니 선택을 하라고 했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다음 날 저녁, 아들이 찾아와서 “아빠, 게임을 하지 않고 바둑만 할래요”라고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말한다. 그 이후 아들의 실력은 일취월장하여 2단, 3단, 4단으로 계속 승단을 했고 기원의 고급반에 속하게 되었다. 그런데 6학년 11월부터 진짜 슬럼프가 왔다. 그때는 학교에서 오전 수업만 받고, 기원에 갔다. 그런데 3~4학년 동생들과 시합을 하면 매일 지고 오는 일이 많아졌다. 그러자 방황을 하게 되었다. 12월 초, 아들을 불러놓고, “아들아, 아빠는 네가 프로기사가 되는 것을 바라지만 힘들면 그만 두어도 돼. 또 다시 네가 좋아하는 것을 하면 되잖아” 그 말에 아들은 6년간 둔 바둑을 포기하게 되었다.
그런데 바둑을 포기하니 문제가 생겼다. 아내가 나에게 항의하기를 아들의 영어실력을 살펴보라고 한다. 그래서 아들을 불러놓고, 실력을 알아보니 그야말로 ABC밖에 모른다. 난감했다. 아내의 말은 이런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는 항의였다. 그래서 아들과 문제에 대하여 상의를 했더니 “아빠, 영어학원에 보내주세요”라고 한다. 그래서 1월부터 영어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들이 속한 반은 코흘리개 초등학교 1학년 반이었다. 아들은 힘들었겠지만 나름 씩씩하게 다녔다. 그리고 중학교 1학년 3월부터 사진에 관심을 갖더니 3개월만에 아마추어 사진작가인 아빠의 실력을 뛰어넘었다. 그리고 베이비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이모에게 다양한 고급기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고 1 때, “아빠, 사진학과 가기로 했어요”라고 일방통보를 했다. 그리고 한 번에 대학에 합격했다.
아들은 초등학교때 배운 바둑을 통하여 집중력과 도전정신이 이미 몸속에 체득되었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이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바둑은 아이들의 인성에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우선 집중력이 좋아진다. 서로 번갈아 돌을 반상에 놓는데 집중을 해야 상대방이 어디에 두는지 예측할 수가 있다. 다음은 도전정신이 향상된다. 바둑을 자주 두다보면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한다. 때론 이미 내가 많이 이겼는데 조금 방심하다가 역전패를 당하기도 하고, 역전승을 하기도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바둑을 희로애락으로 대변되는 인생에 비유한다. 여기서 바로 창의성이 나온다. 즉, 문제의 해결능력이 생긴다. 이세돌이 보여준 78수는 그야말로 창의성의 극치를 보여주는 한 수이다.
바둑에서 경우의 수는 우주의 원자수보다 많다고 한다. 그러므로 바둑을 두면서 어려움에 빠지면 이를 해결하려고 머리를 쓴다. 또한 인내심도 체득시킨다. 아들도 그런 경우가 있었다. 지역 바둑대회 결승전을 곁에서 봤다. 초반에 상대방의 대마를 잡고 우승이 확실시 되었다. 하지만 아들은 좀더 욕심을 내서 또 다른 대마 사냥을 하고 있었다. 그러자 무리수가 나오게 되면서 오히려 아들의 대마가 잡히면서 지게 되었다. 바둑을 두게 되면 이런 경험을 수없이 하게 되면서 강력한 분노를 경험하게 된다. 하지만 그 분노는 다시 동기부여의 에너지가 되면서 스스로 자신을 조절한다. 마지막으로 바둑은 자기주도 생각법을 완성시킨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며 그 결과를 책임진다. 이런 경험은 아이에게 자기주도 인생법으로 발전한다.
요즘은 사교육 전성시대이다. 단순암기와 반복문제 풀이로 대변되는 사교육을 많이 하면 성적이 올라가고, 좋은 대학과 좋은 직장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교육은 아이의 미래를 담보하는 보험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일자리가 줄어들면서 대학을 졸업하고 캥거루족으로 변하는 20대가 7~80%라고 한다. 미래에는 단순 노동, 반복 노동은 점점 기계로 대체될 것이다. 그럼 내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 것인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창의적인 아이로 키워야 한다. 창의성의 시작은 놀이에서 비롯된다. 아빠와의 신체놀이, 도구놀이가 모두 창의성 향상놀이다. 그리고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면 체험여행을 떠나자. 아이의 입장에서는 아빠보다 자연이 아이에게 더 많은 영향을 미친다.
결국 이런 놀이를 통하여 창의성은 체득되어진 자녀양육의 최종 목표는 아이의 홀로서기다. 부모가 자식에게 가르쳐야 할 덕복이 있다면 바로 세상에서 스스로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나의 아들은 학창시절에 공부를 잘하지 못했다. 그런데 중학교 2학년 때, 아들을 불러놓고 “아들아, 아빠가 너에게 더 이상 가르쳐줄 것이 없다. 하산하라.”라고 했다.
아들이 고3 초기에 말하길 “아빠가 저의 멘토예요”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