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하나만 5년 넘게 키우다가 아들을 키우기 시작하면서
달라진 점은, 하루에도 몇 번씩 놀랄 일이 너무 많다는 사실이다.
아들이 막 기기 시작했을 때, 마루 위를 열심히 기어가다가 갑자기 멈추더니
두 팔과 두 다리를 번.쩍. 들어올리곤 하던 적이 있었다.
얼굴 표정은 역도 선수같고 음..이나 끙.. 소리를 내며 다리와 엉덩이를 아래 위로
들었다올렸다 했는데, 그게 너무 순식간이라 한동안 카메라를 가까이에 두고 지냈음에도
건진 건 겨우 이 사진 한 장..
머리와 팔은 그대로인데 하반신만 움직이는 당시의 어메이징한 모습..
백만 하나, 백만 둘..하던 건전지 선전과 꽤 흡사한 장면!
딸아이가 배밀이를 하고 기기 시작할 때는 한번도 보지 못한 모습이었다.
그 힘으로 젖을 빨아대니, 아들이 실컷 젖을 먹고난 뒤면
엄마인 나는 몸 속의 양분이 다 빠져나간 기분이 들고
소파에서 일어나면 머리가 어지럽곤 했다.
딸도 아들과 같이 만3년 가까이 젖을 먹었지만, 자기가 필요한 만큼만 먹던 딸에 비해
아들이 먹는 양과 모습은 무지막지.. 그 자체였다.
돌이 지나지 않은 아기 시절, 딸이 자던 방에는 달콤한 냄새같은 게 나서
방문을 열 때마다 힐링의 순간을 맛보곤 했는데
아들이 자는 방을 열면 뭔가 모를 땀냄새, 변질된 젖냄새? 같은 것들이 섞여있어
놀랐던 기억이.. 아직 돌도 안 지난 아기인데.. 우리 아들만 그랬나..?;;;
돌이 지나고 막 걷기 시작했을 무렵.
하루에도 몇 번씩 가슴을 쓸어내리는 일이 더욱 늘어났다.
부엌 씽크대까지 세면대 아래에 두고쓰는 받침대를 가져와 기어오르는데
아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주전자 뚜껑을 열고 그 안을 들여다보는 일이었다.
아무리 못하게 하고 타이르고 올라가지 못하도록 주변 물건을 전부 치워도 어느 순간
예상치도 못한 방법을 동원해 올라가 있던 아들...
그래서 가스불은 아들이 잠든 한밤중에 음식을 몰아서 만들어두고
낮 동안은 가스 밸브를 아예 잠근 채 불을 쓰는 요리를 거의 못 하고 지냈던 적이 있다.
집안에서도 유독 위험하고 현관 신발장이나 화장실같은 불결한 곳만 골라 좋아했는데
그런 곳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목격한 순간, 얼마나 놀랐던지.
한 순간도 가만있지 않고 움직이다보니 얼굴에는 상처나 멍 자국이 가시질 않았는데
구급차 불러본 적 없이 무사히 여기까지 온 게 신기할 따름이다.
이렇게 별나고 많이 움직이니, 아들은 늘 배가 고프다.
먹을 걸 만들어 밥상에 놓여지는 순간까지 기다리질 못해 부엌을 수십번 씩 오가며
보채고 조르다가 음식을 받자마자 손 또는 입이 먼저 간다..
가끔 너무 급할 때는 젓가락을 쥐고도 손으로 집어먹을 때도;;;
옆에서 먹는 양과 속도를 조절해 주지 않으면 제대로 씹지도 않고 쓸어넣었다가
삼킬 수가 없어 다시 뱉기도 하는데..
이때는 누나, 엄마를 비롯한 온 가족이 고개를 돌리며 외면하는 순간이다.
많이 먹는 만큼 배변과 연관된 경악을 금치못할 에피소드들도 많지만,
아들의 사생활보호를 위해 그 이야긴 여기까지!
얼마 전, 누나와 함께 쿠키를 만들었던 날.
다양하고 이쁜 모양의 쿠키틀이 있음에도 불고하고
아들은 그런 틀에 맞추는 게 싫은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혼자 손으로 주물럭주물럭하더니...
완성된 쿠키. 오른쪽은 딸, 왼쪽은 아들이 만든 것.
누나는 나무, 새, 별, 사람..
아들은 뱀, 똥, 유령, 달팽이.. ㅋㅋㅋㅋ
허리나 팔에는 항상 무기같은 장난감들을 장착한 채
혼자 싸움놀이 세계에 빠져 갑자기 주먹을 날리곤 하는
아들의 몸짓을 보며 급당황하는 딸의 저 표정..
혼자 놀이를 할 때도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대화나 스토리가 빠지지 않았던 딸에 비해
아들은 이얏-, 슈욱-, 아악- 같은 괴성뿐;;;
가끔 아들이 놀다 지르는 소리에 놀라 "무슨 일 있어???"하며 놀라 뛰어가면
딸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그냥 혼자 노는 거야."하던..
그에게 스토리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듯. 그저 몸으로 열심히 때울 뿐이다.
화성과 금성처럼.
전혀 다른 별에서 온 듯한 아들과 딸.
요즘 유아기를 사춘기처럼 보내고 있는 아들, 너와의 관계에 엄마는 좀 지쳤단다.
하지만, 너 덕분에 딸과는 다른 세계를 경험하고 있으니
결국 엄마의 인생을 더 풍부하고 다채롭게 해주는 존재가 아닐까.
태어난 지 몇 개월밖에 안 됐을 때도 남자 냄새와 포스를 엄청 풍기던
아기 시절의 아들 사진을 요즘 자주 들여다 본다.
아이 귀여워.. 하는 느낌보다 풋! 하며 웃음부터 바로 터지는 건 왜일까.
별나고 사고뭉치에 엄마 수명을 단축시키는 듯한 일만 벌이는 아들을 상대하다보면
상황이 심각하다가도, 그렇게 풋!하고 웃고말게 되는 순간이 참 많다.
그는 그저 나쁜 마음이나 의도 없이 단순하고 본능에 충실하게 움직였을 뿐이니,
그 행동의 근원을 알게 되는 순간이 엄마가 웃고 말게 되는 순간이며
딸을 향한 그것과는 다른 성질의 모성애가 터져나오는 순간이기도 하다.
이번 방학에는 아들과 또 어떤 이야기들을 만들어가게 될까.
엄마 마음은 벌써 둑흔둑흔..
아들아, 엄마 지금 떨고 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