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몇년 사이 형제들이 함께하는 자리에서 어린 시절 얘기들을 나누는 일이 부쩍 많아졌다. 재미있었던 기억들을 꺼내며 웃기도 하는데, 한참 얘기하다 보면 ‘내 잘못이 아닌데도 누구 때문에 더 많이 혼났다’, ‘엄마는 누구를 더 사랑해줬다’ 등의 억울하고 서운했던 일들도 곧잘 나온다. 이제 다 각자의 가정을 꾸려 자식을 키우는 부모인데도 부모님한테 우리 중 누가 더 사랑과 인정을 받았는지, 지금은 또 어떤지를 의식하고 있는 모습도 보게 된다. 신기하게도 같은 사건에 대해 각자가 기억하는 지점과 해석이 다르다.
사춘기 아이들도 영유아기의 ‘형제경쟁’ 못지않은 갈등과 고통을 겪는다. 공부 잘하는 형제와 비교되어 자신은 찬밥 신세라고 느끼는 아이, 아프거나 장애가 있는 형제 때문에 자신은 관심을 못 받고 있다고 여기는 아이, 외모나 재능이 우월한 형제가 있어 자신은 대우를 못 받는다고 생각하는 아이,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부모가 형이나 동생 어느 한쪽을 더 친밀하게 대해 소외감을 느끼는 아이 등은 흔히 볼 수 있다.
“엄마는 저한테만 못 하게 하는 게 많아요. 오빠한테 화난 것까지 나한테 풀어요. 평소에 엄마도 저처럼 표현을 잘 안 해요. 저를 사랑하는 건 알겠는데, 이해받는 느낌이 안 들어서 슬퍼요.” 이렇게 말한 아이는 자신이 집안일도 곧잘 도맡아 하고 엄마와 오빠 사이에 완충재 구실도 해왔는데, 사춘기가 되면서 집에 들어가면 답답하다며 밖으로 돌기 시작했다.
또 한 아이는 “엄마가 나만 미워해요. 동생이랑 아빠, 엄마는 다 같은 편이고. 나만 이상한 취급을 해요”라고 말했다. “동생이 나이 차가 꽤 나는데도 누나라고 부르지 않고 이름 부를 때가 많아 너무 재수없고 밉다”고도 했다. 이 아이는 동생을 때리고 싶어도 도리어 자기가 혼나기 때문에 그럴 수도 없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어떤 아이는 “아빠는 너한테 기대 안 한다”는 말에 상처를 받았다. 공부를 잘해 기대를 받고 있는 언니가 그 부담으로 힘들어하는 것을 안 아빠가 둘째한테는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했던 말이었다. 아빠가 어떤 의도로 하는 말인지 알겠는데도 마음 한편에선 ‘뭘 하든 간에 기대 안 한다는 건가, 나는 잘할 수 없다고 여기는 건가, 나는 아빠의 기대를 못 받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 의욕이 꺾인다고 했다.
부모가 자식들을 똑같이 사랑해도 그 방식이 다 같지는 않다. 아이들에 맞게 다르게 대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편애가 된다면, 아이는 불공평함과 억울함을 느끼게 된다. 편애를 받는 형제에 대한 미움도 커진다. 반대로 자신이 편애받고 있다고 느끼는 아이는 다른 형제를 무시하거나 우습게 여길 수도 있다. 또는 자신이 직접 심하게 혼나거나 맞지 않아도 혼나는 형제자매를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부담이 커질 수 있다. ‘나는 안 겪어서 다행이다’, 한편으로는 ‘나도 잘못하면 언제든 저렇게 될 수 있겠구나’ 싶어 불안해지기도 한다. 나만 혼나지 않고 피해간 것에 대해 미안함과 불편함이 생기기도 한다. 어떠한 이유로든 어느 한쪽 아이에게 사랑이 치우치면 형제관계는 불편해진다.
모든 형제들이 날카롭고 과격한 형제경쟁을 거치는 건 아니다. 부모가 어떻게 중심을 잡아주느냐에 따라 건강하고 안정적인 관계를 형성할 수도 있고 불안정한 관계로 치달을 수도 있다. 아이의 개성과 능력, 아이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확인하는 게 필요하다. 형제를 같은 학원 등 같은 교육 코스를 거치게 하는 경우도 많은데, 이 경우 필연적으로 비교가 따르게 되고 경쟁구도에 빠뜨리기 쉽다.
사춘기 형제간의 갈등과 다툼에 부모가 개입하는 것은 특히 조심스러운 문제다. 어느 한쪽을 옳다고 하게 되면 ‘엄마는 불공평하다’, ‘엄마는 누구 편이다’라는 말이 당연하게 나온다. 아무리 그 판단이 객관적이고 옳아도 소용없다. 어느 한쪽은 불만을 갖는다. “네가 ○○니까 무조건 말 들어. 네가 ○○니까 참아야지, 양보해라”라고 하는 것도 좋지 않다. 판사가 되어 “네가 잘못했네. 빨리 사과해”라는 식의 중재를 하는 것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이 마음에 억울함과 반항심이 생기게 된다. 특별히 위험한 상황이나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어느 정도 무관심을 보이는 것도 좋다. 형제간에 갈등하면서 조율하는 힘을 키워낼 수 있게 두고 볼 수 있어야 한다.
아이들은 공평하게 대우받길 바란다. ‘공평한 대우’ 안에는 어떤 경우에도 자기 말에 귀기울여주길 바란다는 항목이 들어 있다. 부모는 전지전능하지도 않고 만능해결사도 아니다. 매사에 공정하긴 어렵다. 단지 억울해하고 힘들어하는 아이한테 말할 기회를 주고 그 말에 귀기울여주는 게 필요하다. 그다음에 서로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의논하면 된다.
윤다옥 한성여중 상담교사·사교육걱정없는세상 노워리 상담넷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