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3명이 권하는 ‘그림책 선택 방법’]
■ “아이와 같이 도서관 가라”
관심사 다 달라, 반응하는 책 파악
왜 좋아하는지 알면 마음도 보여
발달 단계·상황 따라 사서 추천도
■ “부모가 그림책 많이 보라”
도서연구회 선정 목록 참고하고
내 아이 기질·취향 맞춰 골라
3~6개월 정도 꾸준히 책 탐험
■ “세계적 수상작 살펴보라”
‘아동문학 노벨상’ 안데르센상 대표적
한국인 작가도 최종후보 5인에
서점서 직접 사게 하는 것도 산교육
“우리 아이에게 어떤 그림책을 보여줘야 할까요? 그림책 고르기가 너무 힘들어요.”
초보 부모들의 흔한 고민이다. 옆집 엄마가 권해주는 그림책을 사보기도 하고, 온라인 카페에서 정보를 탐색해 구매할 그림책을 결정하기도 하지만 아이에게 정말 도움이 되는지 확신이 안 서는 경우가 많다. 그림과 글로 구성된 그림책은 아이들이 처음 만나는 책이다. 아이들에게 창의력과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고, 즐거움과 행복 등 다양한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그림책, 어떻게 고르면 좋을까? 그림책 관련 전문가 3명에게 ‘그림책 잘 고르는 법’에 대한 조언을 들어봤다.
한 권을 읽더라도 충분히 소화하게
국내 최초 어린이도서관인 순천 기적의도서관 정봉남 관장은 “책을 사기 전에 아이들과 함께 도서관을 가라”고 말한다. 기적의도서관만 해도 어린이책을 8만권 이상 보유하고 있다. 아이마다 관심사가 다른데 무작정 옆집 엄마가 권해주는 책을 사줬다가 책이 장식물로 전락할 수 있다. 책을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가 반응하는 책이 뭔지 먼저 파악하는 일이다. 아이가 어떤 책을 좋아하는지, 아이가 왜 그 책을 좋아하는지에 대해 탐구하다 보면 아이의 마음을 더 이해할 수 있다.
» 서울 한 대형 서점에서 한 어머니가 아이와 함께 책을 읽고 있다. 전문가들은 아이와 함께 도서관이나 서점에 들러 아이가 책을 직접 고르는 기쁨을 느끼게 해주라고 말한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도서관에 갔는데도 책을 고르기가 막연하다면 사서에게 도움을 요청해보자. 수많은 아이와 부모를 접하는 사서는 아이의 발달 단계나 아이가 처한 상황에 맞는 책을 권해준다. 정 관장도 이제까지 각종 사례별로 부모들에게 책을 권해왔다.
예를 들면, 4~5살 고집이 세지는 아이들에게는 <그래도 엄마는 널 사랑한단다>(이언 포크너 글·그림, 중앙출판사 펴냄), <난 토마토 절대 안 먹어>(로렌 차일드 지음, 국민서관 펴냄), <떼>(백은하 글, 장그리다 그림, 을파소 펴냄)를 권한다. 형제간의 갈등이 있는 아이들에게는 <내 동생 싸게 팔아요>(임정자 글, 김영수 그림, 아이세움 펴냄), <터널>(앤서니 브라운 지음, 논장 펴냄)을 권하고, 책과 점점 멀어지는 7살 아이에게는 <진정한 일곱 살>(허은미 글, 오정택 그림, 양철북 펴냄)과 <까불지 마!>(강무홍 글, 조원희 그림, 논장 펴냄) 등을 권한다.
아이들은 자신과 비슷한 주인공들의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고 차차 관심사를 넓혀간다. 아이가 스스로 고른 책이든 사서가 권해준 책이든, 도서관을 자주 가다 보면 아이가 보고 또 보는 책이 있다. 정 관장은 바로 그런 책을 아이에게 사주라고 권한다. 정 관장은 “‘골고루’와 ‘양’을 중시하면서 아이에게 자꾸만 많은 책을 억지로 보여주려는 부모들이 있다”며 “아이가 한 권을 읽더라도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시간을 줘야 비로소 아이의 취향이 생긴다”고 말했다.
기초 자료를 ‘지팡이’ 삼아
어린이책 평론을 꾸준히 해온 한미화씨는 “부모가 먼저 그림책을 많이 보라”고 주문한다. 아이들은 성별도, 기질도, 양육환경도 다르다. 따라서 안목 있는 부모가 내 아이의 기질이나 취향, 양육 환경에 맞는 그림책을 고른다면 아이에게 도움이 되면서 좋은 책을 고를 수 있다.
그림책을 고르기 전 어린이책 관련 운동을 꾸준히 펼쳐온 ‘어린이도서연구회’(www.childbook.org)가 선정하는 ‘연간 어린이청소년 책 목록’을 참고해도 좋다. 어린이도서연구회는 1995년부터 작품성이 뛰어나고 어린이가 독서의 기쁨을 맛볼 수 있는 책 위주로 연간 목록을 만들어 공개한다. 어린이전문 인터넷 서점인 ‘오픈키드’(www.openkid.co.kr)도 기초적인 데이터를 잘 갖추고 있다. 연령별, 분야별, 주제별로 다양한 어린이책을 잘 분류해 놓았다. 그림책에 관한 안내 서적으로는 소아정신과 의사이자 부모들의 멘토인 서천석 박사의 <그림책으로 읽는 아이들 마음>을 권한다.
한미화 평론가는 “기초 자료들을 ‘지팡이’ 삼아 부모와 아이가 3~6개월 정도 꾸준히 그림책 탐험을 나서면 아이가 좋아하는 작가도 생기고 좋아하는 분야도 저절로 생긴다”며 “그때가 되면 추천 목록도 불필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콕’ 집어주기보다 안목 생기도록
민음사 계열 어린이책 전문 출판사인 비룡소에서 편집장을 맡고 있는 박지은씨는 “세계적인 어린이문학상을 받은 작가의 작품에 먼저 관심을 기울여 보라”고 말한다. 최근 소설가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맨부커상 인터내셔널부문을 수상하면서 세계적으로 집중 조명을 받았다. 아동문학 분야에서도 맨부커상처럼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상들이 있다. ‘아동문학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이 대표적이다. 2년마다 국제아동청소년도서협의회에서 전세계 아동출판물 가운데 아동문학에 기여한 작가 한 명에게 주는 이 상은 한 작가가 평생 동안 해온 작품을 평가해 수상한다. 모리스 센닥, 토미 웅거러, 앤서니 브라운, 퀜틴 블레이크 등이 안데르센상을 수상했다. 올해에는 <동물원>, <그림자놀이>, <파도야 놀자>를 쓴 이수지 작가가 한국인 최초로 최종 후보 5인 안에 들어 화제를 낳았다.
미국도서관협회에서 매년 시상하는 콜더컷상과 뉴베리상도 권위 있는 아동문학상 중 하나다. 콜더컷상은 미국어린이도서관협회에서 그해 가장 뛰어난 일러스트레이터에게 주는 상이고, 뉴베리상은 미국 어린이문학에 지대한 공헌을 한 작품에 주는 상이다. 볼로냐 라가치상도 주목할 만한 상이다. 세계 최대 규모인 이탈리아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에서 한 해 동안 전세계에서 출간된 어린이도서 가운데 최고의 아동작품을 골라 주는 이 상은 픽션, 논픽션, 뉴 호라이즌, 오페라 프리마 등 4개 부문으로 나눠 시상한다. 책 내용은 물론, 디자인과 편집, 창의성, 교육적, 예술적 가치를 두루 평가한다.
한국은 지난해 볼로냐 아동도서전에서 4개 부문 모두에서 우수상 수상작을 냈다. 전 부문에서 입상자를 배출한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정유미, 지경애, 김장성, 박연철 작가 등이 상을 받았다. 이외에도 오래되지 않았지만 세계 최대 규모의 상금(약 6억원)으로 유명한 린드그렌 문학상도 있다. 박 편집장은 “콜더컷, 뉴베리, 안데르센상을 받은 작품은 그림책 본연의 깊이가 있는 책이라면, 라가치상은 새로운 느낌을 주고 예술적인 취향이 느껴지는 책들이 많다”고 소개했다. 박 편집장은 “세계적인 거장의 작품을 아이와 함께 읽으면 그림책을 보는 안목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온라인 서점에서 엄마가 ‘콕’ 집어 책을 골라주는 것보다 부모가 아이와 서점에 함께 가서 아이가 직접 책을 고르고 구입까지 해보게 하는 것도 교육”이라고 덧붙였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