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약 복용 아이 탈모’ 논란]
한약 먹은 지 일주일만에
머리카락이 다 빠지고 눈썹도
곧바로 약 성분 뭔지 알려달라 해도
개별 약재 정보 시험성적서만
8개월 지나서야 처방 이름 알려줘
의료정보 제공 미적거려 불신 커져
한의원쪽 보험사는
한의원 치료상 책임 50% 인정
한국소비자원 보고서 보면
설명 부족 불만이 가장 커
포장에 원재료, 부작용 등 표기하고
한의사 설명 의무도 강화해야
» 18개월 된 아이가 한약을 먹고 머리카락과 눈썹이 다 빠졌다는 주장이 나와 논란이 되고 있다. 사진은 한약을 먹기 전에 풍성했던 머리카락이 있었던 아이 모습(왼쪽)과 한약을 먹은 지 일주일 만에 전두 탈모 증상을 보인 아이의 현재 모습이다. 아이 어머니 제공
18개월 된 아이가 유명 어린이 전문 한의원을 찾아 한약을 먹은 뒤 일주일 만에 머리카락과 눈썹이 빠졌다는 주장이 제기돼 논란이 되고 있다. 해당 한의원은 “인과관계가 입증이 안 된 환자 부모의 일방적인 주장”이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아이의 부모는 “대학병원 피부과에서도 약물이 탈모 촉발 요인임을 배제할 수 없다고 했으며, 한약이 원인이 아니라는 근거도 없다”고 맞서고 있다. 이 유명 한의원은 아이가 먹은 한약의 처방을 알려달라는 부모의 요구를 무시하다, 8개월이 지나서야 처방 이름을 알려주는 등 의료 정보 제공에도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불신감을 키웠다고 한다.
사건이 알려지면서 아이에게 한약을 먹인 경험이 있거나 한의원을 이용하는 부모들의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한약이나 한의사들의 정보 제공 강화를 요구하는 소비자들의 목소리도 더욱 커지고 있다. 사건을 계기로 현재 한약 정보 제공과 관련한 문제점을 짚어본다.
면역력 강화 위해 한의원 찾아
장아무개군의 어머니 김아무개(37)씨는 지난해 10월초 아이의 면역력 강화를 위해 서울 양천구의 한 유명 어린이 한의원을 찾았다. 한의사는 김씨가 “아이가 깊은 잠을 못 잔다”는 말에 “녹용 복용 전 속열을 빼주는 약을 2주 정도 먹자”고 제안했다. 당시 17개월이었던 장군은 한의원을 다녀온 직후 감기와 장염 증세가 있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고, 한 달 뒤인 11월 중순께 한의사의 허용하에 한약을 먹었다. 김씨는 “한약을 먹은 지 3일 뒤부터 아이의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하더니 일주일 정도 됐을 때 머리카락이 다 빠졌다”고 말했다.
아이의 머리카락과 눈썹은 현재까지도 나지 않고 있다. 김씨는 아이를 대학병원 피부과에 데려갔고, 의사는 임상적 소견을 바탕으로 원형탈모증으로 진단했다. 해당 병원에서는 “약물로 인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이에 대해 한의원은 “일반적으로 탈모의 원인이 약물이라면 약물을 끊었을 때 다시 머리카락이 나야 하는데 이 아이는 약물을 끊었는데도 계속 탈모가 진행되고 있어 약물로 인한 탈모로 보기 어렵다”며 “환자 부모가 무조건 원인을 한약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한의원에서 의료사고 시 피해보상을 위해 가입한 배상보험사 쪽에서는 이 사건과 관련해 “한약 처방이 아이에게 모발의 탈락을 유발했다고 설명할 수 없지만, 시간적인 인과관계상 다른 약의 복용이 전혀 없었고 한약의 복용 시작과 더불어 이상 증상이 발현해 명확한 기전을 설명할 수는 없지만 시간적 인과관계는 성립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며 “한의원의 치료상 책임은 약 50%에서 인정한다”고 판단했다. 보험사 쪽에서는 적정 위자료로 200만~300만원을 제시했다.
“대형 한의원인데도 전혀…”
장군의 어머니가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아이가 먹은 한약에 어떤 성분이 어떤 배합으로 들어 있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한의원에 아이가 먹은 약의 처방을 알려달라고 요청했다. 한의원에서는 처음에는 개별 약재 정보의 시험성적서만 줬다. 지난해 11월 아이의 머리카락이 빠진 사실을 한의원에 알렸는데도, 올해 3월 김씨가 한의원에 다시 연락할 때까지 한의원은 별다른 조처도 취하지 않았다. 김씨는 아이가 먹은 약의 이름을 재차 요구했고, 한 의원은 김씨는 아이의 탈모가 발생한 지 8개월이 다 된 지난 7월에야 정확한 처방명(도적강기탕)을 알려줬다.
김씨는 “대형 한의원인데도 약 처방 시 한약에 포함된 약재의 명, 약재의 성분 배합, 약재 복용 시 발생 가능한 부작용 및 피해야 하는 환자의 특성에 대한 주의 문구 및 설명 문구가 전혀 없었다”며 “아이들의 호기심만 자극하는 한약 패키지 포장에만 열을 올릴 것이 아니라, 한의원이 환자에게 필요한 정보 제공 노력에 관심을 더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다른 한약 부작용 피해자 강아무개(42·서울 마포구)씨의 아들 김아무개(10)군도 지난해 어린이 전문 한의원에서 조제한 한약을 먹은 뒤 황달 증세가 나타나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강씨는 “아이가 키가 잘 안 크고 비염 증세가 있어 한의원을 찾았는데, 한약을 며칠 먹은 뒤 아이 눈동자가 노랗게 변해 병원에 가니 급성 간염이라고 했다”고 말했다.
강씨는 “아이가 아프니 당시에는 너무 놀라고 정신없어 한의원에 항의도 못 하고 그냥 넘어갔다”며 억울해했다. 강씨는 “주변을 보면 한약 복용 뒤 설사나 피부 발진, 황달과 같은 부작용을 겪는 경우가 더러 있다”며 “한약의 특정 성분 때문인지, 아니면 한의사가 아이의 체질에 맞지 않게 약을 지은 것인지 원인을 명확하게 밝혀야 하는데 원인 규명은 없고 그냥 환불 처리만 하는 등 흐지부지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명확한 인과관계 입증 어려워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한방 진료에 대한 상담 건수는 연간 2천건 내외로 전체 상담 건수의 5% 정도로 적은 편이다. 업계의 의견을 종합하면 한약 부작용이나 한의원의 침·뜸 치료에 대한 불만의 80% 정도는 당사자들끼리 해결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소비자원 관계자는 “한약은 양약보다 명확하게 인과관계를 입증하기 힘든 경우가 많아 피해구제 사례도 적은 편”이라고 전했다.
한약은 양약과 달리 사람의 체질이나 질병·병증에 따라 용약 원칙도 달라지고 처방도 다양해진다. 그만큼 개개인의 개별성이 중시된다. 그래서 한약 이용자들은 한의사가 환자에게 한약의 효능이나 복용법, 부작용 등에 대해 좀 더 상세하게 설명해주기를 기대한다.
실제로 김재영·김민아 한국소비자원 연구원이 2013년 말 펴낸 ‘한약 및 한약재 소비자 정보제공 강화방안 연구 보고서’를 보면 서울, 경기, 부산, 대구, 인천, 광주, 대전, 울산 등 8개 광역시·도에서 최근 3년 이내 한약 구매 경험이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약 정보 내용에 대한 불만족 이유를 조사했더니 ‘자세하지 않은 설명’이 32.8%로 가장 높았다. 이외에도 ‘약의 효능/효과에 대한 설명 부족’, ‘약에 대한 지식 부족으로 이해하기 어려움’ 등도 언급됐다.
이러한 점을 고려해 두 연구원은 한의사의 설명 의무 부과 관련 규정과 좀더 상세한 한약 표시 관련 규정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현재 의료법상 한의사는 처방전 의무 발급 대상에서 제외돼 있는데다 한약 표시 관련 규정이 미흡하기 때문이다. 한약을 먹는 소비자의 알 권리와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위해 한의사가 한약을 제공할 경우 포장에 원재료, 제조일자, 유통기한, 부작용 등을 표시하도록 하고, 한약에 대한 일반적인 설명 외에도 각 개인에게 맞춰진 한의사의 설명 의무가 더 강화될 필요가 있다고 두 연구원은 제안했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 장아무개군의 어머니 김아무개씨가 지난달 말 온라인의 한 육아 커뮤니티에 한약 부작용과 관련해 쓴 글에서 갈무리한 사진.
관련 자료 수집해 소비자원에 구제신청
한약 부작용이 발생했다면…
아이가 한약을 먹었는데 설사나 황달, 피부 발진, 간 수치 상승 등 부작용이 발생하면 가장 먼저 취해야 할 조처는 한약 복용을 중지하는 것이다. 그리고 한의사에게 관련 사실을 알려야 한다. 간혹 한의사가 한약을 계속 먹으라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부작용이 발생한 것으로 보이면 약 복용은 중지하는 것이 좋다. 해당 한의원에 가서 진료기록서를 떼고 어떤 약을 처방받았는지도 살펴야 한다. 만약 다른 의료기관을 방문해서 아이의 피해에 대해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다면 관련 자료를 수집해놓을 필요도 있다.
객관적으로 사건을 설명하는 기본적인 서류가 준비됐다면 한국소비자원 홈페이지에 게재된 피해구제신청서 양식을 내려받아 작성해 한국소비자원에 제출하면 된다. 만약 피해구제 신청 전에 한약 부작용에 대한 구체적인 의료상담을 받고 싶다면 국번 없이 1372번으로 전화하면 의료 전문 상담을 받을 수 있다. 피해구제 접수가 되면 한국소비자원은 한의원에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전문가 등의 자문을 거쳐 진료상의 주의 의무 위반은 없는지 등을 따져 합의 권고안을 낸다. 만약 양 당사자가 권고안에 동의하고 합의서를 작성하면 사건은 종결되지만, 합의가 안 되면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에 사건을 조정 신청해서 결정을 받게 된다.
공정거래위원회 산하 기관인 한국소비자원 외에도 보건복지부 산하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서도 소송 전 의료분쟁을 해결할 수 있다. 의료분쟁 상담센터는 국번 없이 1670과 2545번이 있으며, 이 기관에서는 법조인, 의료인, 소비자 권익 대변인 등 다양한 관계자들이 모여 사건을 심사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한국소비자원은 피해구제 신청 접수가 되면 조사를 바로 시작하지만,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은 해당 의료기관이 동의를 해야만 조정을 시작할 수 있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