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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베이비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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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함께 ‘도서관 수영장’에서 헤엄칠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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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변환_20160819_1471425708102.jpeg» 순천 기적의도서관의 '수영장'인 오목공간에서 아이들이 책을 보고 있다. 사진 정봉남.
“와아, 천국이다!” 도서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아이들마다 한결같이 내뱉는 첫 마디가 똑같다. 폭염에 이만한 곳이 어디 있으랴. 시원하고 눈치 안 봐도 되니까 아이들에겐 최고의 피서지다. 모르긴 해도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우는 소리가 없는 천국은 상상하기 어렵다. 그러니 젖을 먹고 나비잠을 자고 꿈을 꾸는 아가에게도 도서관은 바로 지상에 내려온 천국, ‘기저귀도서관’인 것이다.(네비게이션을 켜고 기적의도서관을 검색하면 기계음의 네비양은 꼭 이렇게 말한다. 기저귀도서관이라고.)

원래 환하고 아름다운 곳이지만, 유난히 마음이 벙글벙글해져 좋은 때는 아이들이 도서관을 꽉 채울 때다. 순간 커다란 빛이 들어와 도서관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후두둑 소나기처럼 몰려온 아이들은 어디서 뭘하고 놀까? 가만가만 따라가 보면 저마다 머무는 지점이 다른데, 가장 좋아하는 곳은 단연 ‘수영장’이다. 
크기변환_20160819_1471425780572.jpeg» 순천 기적의도서관의 '수영장'인 오목공간에서 아이들이 그림책 이야기를 듣고 있다. 사진 정봉남.
‘오목공간’이라는 정식 이름을 두고도 아이들은 꼭 수영장이라고 부른다. 파란색 소파가 있는 곳은 냉탕, 빨간색 소파가 있는 곳은 온탕이라며 왔다갔다 한다. 어푸어푸 하면서 어느새 목욕탕 놀이를 즐긴다. <장수탕 선녀님>과 <으뜸 헤엄이> 놀이를 하면 딱이다. 커다란 병풍책을 펼쳐놓고 숨은그림 찾기를 하고, 속닥속닥 친구랑 비밀 얘기를 나누고, 인형을 끌어안고 소꿉놀이를 하다가 물고기처럼 헤엄을 친다. 

가끔씩 나도 수영장에 발을 담그고 까딱까딱 사람구경 하는 게 좋다. 올망졸망 모여앉은 아이들 사이로 그림책 <수영장>의 주인공이 빼꼼 숨어있을 것만 같아서다. 한 소년이 아무도 없는 수영장을 바라보다 우르르 몰려온 사람들의 소란스러움을 피해 물 속 깊이 잠수를 한다. 소년은 깊고 깊은 수영장에서 소녀를 만나고 둘은 아무도 모르는 물 속 생명체들과 신 나게 논다. 둘만이 교감하는 기쁨과 자유로움으로 헤엄치다가 마주친 푸른 눈의 흰 고래! 둘은 한동안 고래와 눈을 맞추고 헤어져 물 밖으로 올라온다. 

<수영장>은 글 없는 그림책이다. 글자가 없어서, 한 마디도 하지 않아서, 말 대신 그림이 온몸으로 말을 걸어서, 그림만 봐도 뭔지 알 것 같아서, 표정들을 물끄러미 바라볼 수 있어서, 그래그래 나도 그런걸 하고 속삭여줄 수 있어서 한없이 편안하다. 

누가 뭐래도 어린이의 가장 좋은 친구는 상상력이다. 상상 속에서 모험을 하고 스스로에게 만족하고 친구를 만나는 일은 얼마나 멋진지... 혼자였고 외로워보였던 소년의 표정이 발그레해졌다. 어깨가 단단해지고 눈동자는 다른 세계를 꿈꾸는 것처럼 보인다. 책 한 권 읽었을 뿐인데 깊은 바다를 헤엄치고 난 뒤의 달큰한 고단함이 뿌듯하다. 세상을 자유롭게 헤엄치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고 설렘으로 마주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아이들은 누구나 도서관 어느 구석에라도 마음의 영역표시를 한다. 도서관의 오목공간과 닮은 <수영장> 그 깊은 바다의 심연을 향해 풍덩풍덩 몸을 던지는 것도 뿔 달린 물고기랑 커다란 흰 고래를 만나고 싶어서일 거라고 이해해본다. 그리고 아이들이 머물다 간 자리에 남은 ‘이 고요한 먼지’는 무엇일지 상상해본다. 

“이 고요한 먼지는/신사이고 숙녀이며/소년 소녀들이었다/웃음이고 힘이고 한숨이었으며/멜빵치마이자 곱슬머리였다.”(에밀리 디킨슨)


어린이도서관 구석구석에는 어른들은 모르는 ‘9와 4분의3’ 정거장이 있다. 아이들이 모험을 떠나고 무사히 돌아올 장소로서 선택한 비밀의 문들. 그러니 어른 ‘머글’의 눈으로 어린이 마법사들의 세계를 훼손하지 않으려고 조심할 따름이다. 어린이는 온갖 새로운 것들에 이끌리고 신기한 것들에 매혹될 권리를 가진다고 했던가. 생각에 잠기는 아이가 인간의 미래고 세계의 미래라는 말씀을 되새긴다. 보이는 이야기를 읽으며 보이지 않는 이야기를 상상하는 힘이야말로 올망졸망 꿈꾸는 아이들의 세계일 것이다. 

“우리 함께 헤엄칠래요?” 책을 읽은 아이와 손을 잡고 풍덩! 그런데 깊고 깊은 바다가 열리지 않아서 엉덩방아를 찧었다. 엉덩이에 멍이 든 건 순전히 수영장의 푸른 물이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무게가 실린 쿵! 소리를 듣고 오늘밤 고래가 우리를 만나러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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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장> 이지현 / 이야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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