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전날 오전, 딸은 신촌에 있는 본인의 집에서 부모가 살고 있는 용인 집으로 왔다. 그리고 엄마의 일을 도와주었으며, 밤에는 외할머니집에 가서 인사를 하고, 추석 당일 오후에 다시 신촌의 집으로 돌아갔다. 그래서 추석 다음 날 찾아오는 3명의 고모를 만날 수가 없었다. 딸은 그 다음 날 큰 고모에게 안부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무려 30분을 통화를 했다고 한다.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오래했냐고 했더니 “큰 고모는 밖에서 살면 고생이 많으니 우겨서라도 다시 집으로 들어가” 라고 했단다. 물론 딸은 호호 웃으며 알았다고 말했다.
한달 전, 강의를 마치고 딸에게 저녁을 사준다고 하고 딸이 살고 있는 신촌 근처에서 만났다. 부녀는 근사한 곳에서 저녁식사를 마치고, 근처의 찻집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딸이 하는 한 마디,
“아빠, 제가 자취를 한 것은 신의 한수였어요”
라고 한다.
작년 8월에 홀로서기를 한 것에 대한 자평을 한다. 그래서 짐짓 놀란 척을 하며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했더니 엄마와 살면 좋을 때도 있지만 가끔씩 싸우며 자신도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엄마와 언쟁을 높일 일도 없고, 자신이 엄마에게 가고 싶으면 언제나 갈 수 있고 매일 전화를 하는 것이 더 좋다고 말한다. 나는 그 말의 뜻을 정확히 알고 있다. 엄마는 엄마대로 딸에게 잘 챙겨주려고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짐이 될 수도 있고, 딸은 자신의 속사정을 정확히 모르는 엄마가 하는 말과 행동이 오히려 불편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옛말에 ‘며느리하고는 살수 있지만 딸과는 살기가 어렵다’라고 했던가.
딸이 사용하던 방은 지금 나의 서재로 사용하고 있으며 약간의 짐이 있다. 가끔 집에 오면 그래도 자신의 방에서 잠을 잔다. 이것을 본 엄마는 “너 그 방에서 자는 것이 불편하지 않니?”라며 안스러운 듯한 목소리로 묻는다. 그러면 딸은 쿨하게 “엄마, 나 괞찮아”라고 말한다. 때론 딸이 집에 온다고 하면 미리 이불을 깔아놓기도 한다. 딸이 바로 휴식을 취하라는 메시지다. 그런데 모녀의 대화를 관찰해보면 딸의 마음보다 엄마의 마음이 더욱 불편하게 느껴지는데 아직도 품안의 자식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그동안 아빠는 딸에게 집을 나가라고 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딸은 1년 전에 집을 나가서 자취를 시작했다. 단지, 12년간 매달 쓴 꿈점검표를 통하여 이별을 준비하는데 큰 용기가 되었을 것이다.
추석 다음 날, 세 명의 누이와 조카가 찾아왔다. 집에서 점심을 먹고 옥상 텃밭에 갔다. 과꽃이 사방에 피어있는 중앙에 식탁을 마련하고 아내가 준비한 다과를 함께 하며 이야기 보따리를 풀었다. 그런데 저출산 문제는 남의 문제만이 아니었다. 첫째 누이의 아들은 40이 넘었음에도 미혼이며, 둘째 누이의 아들도 30대 후반이었지만 아직도 미혼이다. 그리고 공통점은 아직도 부모와 함께 살고 있다.
첫째 누이의 생각은 아들이 결혼을 해야 분가를 시키려는 생각을 갖고 있으며, 둘째 누이 아들의 생각은 형에게 해준만큼 자신에게 해주면 나갈 수 있다며 선택적인 분가를 원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남자가 40이 넘었으면 결혼하기가 점점 어려우며, 형 만큼 해주려고 하면 노후자금이 부족하게 된 둘째 누이 역시 진퇴양난이란 느낌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딸이 1년 전에 집을 나가서 자취를 한 것에 대하여 나에게 ‘너무 독하다’ ‘딸에게 너무했다’라고 핀잔을 준다. 이에 나는 그저 미소로 답한다.
작년 말, 딸은 신촌의 집에서 화장실 공사를 할 예정이라며 몇 달만 본가에서 있다가 나간다고 말을 했을 때, 나는 ‘안돼’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이 말에 딸은 다소 섭섭한 눈치였다. 아내 역시 어떻게 거절을 할 수 있냐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누이들 역시 ‘해도 너무한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와 비슷한 사례가 발생했다. 조카는 딸보다 8개월 먼저 취업을 했으며 직장이 멀어서 회사 근처에서 자취를 했다. 그러다가 8개월 만에 회사를 그만두고 집과 가까운 회사에 다니게 되었으며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오비이락일까? 조카는 6개월만에 몸이 불편하여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그리고 실직자가 되었다. 벌써 6개월이 되었다. 물론 어느 것이 옳고 그른지는 나중에 판단을 하겠지만, 직장을 다니다 그만두고 집에서 의기소침한 모습을 보는 부모의 마음은 어떨까? 만일, 혼자 자취를 했더라면 좀더 헝그리 정신을 갖고 버티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아내는 요즘 럭셔리한 생활을 한다. 매일 옥상 텃밭에서 예쁜 꽃을 보며 감동을 하며, 풀도 뽑아주고, 물도 주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북아트에 전념하며 여성창업지원센터를 통하여 새로운 작품을 준비한다. 딸과는 자주 카톡으로 이야기를 하고, 늦은 밤에도 통화를 한다. 그런데 나는 듣기만 할 뿐 딸과 통화를 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도 함께 살지 않기에 아내와 불편한 관계가 없다.
아들은 가을에 군대에 갈 예정이다. 아르바이트도 하지 않지만 가끔 사진에 관련된 꿀알바를 하곤한다. 이미 누나를 통하여 벤치마킹을 하였기에 자연스럽다. 그런데 아들은 무슨 일을 하는지 자주 밤을 새고 들어온다. 밤 10시 쯤에 친구를 만나러 나간다고 하고, 아침에 들어온다. 그리고 오전 내내 잠을 자기도 한다. 이를 본 아내는 아들 걱정이 태산이다. 나에게 아들 단속을 하라는 말을 한다. 그러면 “아들은 지금 인생 공부를 열심히 하는 중이야. 그냥 놔둬도 괞찮아”라고 답했다. 아이들의 인생에 간섭하지 말라는 뜻이다. 이 부분에 대하여 많은 부모들이 헷갈려하는데. 사실은 중학생부터 아이의 인생에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
그럼 21살의 청춘 고민은 무엇일까? 인생, 군대, 직장, 취업, 여자, 결혼, 정치, 경제 등등 수많은 사회 현상에 대하여 관심을 가질 나이다. 그리고 홀로서기를 준비할 때가 되었다. 황량한 벌판에서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벌판에 둘러싸인 외톨이가 아니라, 스스로 길을 만들면서 자신의 인생을 살아야 한다. 결국 삶의 지혜는 지식의 차원이 아니라 경험의 차원이며, 이는 부모가 모든 것을 해줄 수가 없으며, 결국 스스로 느끼고, 자각해야한다. 아들은 누이가 일찍 홀로서기를 한 것을 보고 ‘엄마, 나 오랫동안 캥거루족 하는 것이 목표예요’라고 농을 한다.
이제 시대가 바뀌었고 삶의 형태가 변했다. 대가족에서 핵가족이 일반화되었고, 부모공양이 아니라 취업이 최고의 효가 되었으며, 부모의 유산보다 취업이 더 중요한 가치가 되었으며, 결혼을 하려면 취업은 필수가 되었다. 또한 자식이 대학을 졸업 후에 직업을 가져야 홀로서기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질 수도 있지만, 홀로서기를 해야 헝그리 정신으로 무장을 해서 직업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이분법으로 비출 수 있지만, 사실은 자식의 홀로서기에 대하여 부모가 먼저 의지와 준비가 선행되어야 하며, 아이 역시 그 부분에 대하여 인식과 자각이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아이들이 일찍 홀로서기를 한다면 부모의 노후 빈곤을 예방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자식의 홀로서기에 대하여 동물의 세계는 더욱 냉혹하다. 치타 어미는 자식이 청년이 되어 혼자 사냥에 성공하는 다음 날, 안녕이라는 인사도 없이 떠난다. 사자의 새끼는 청년이 되면 부모가 영역에서 쫓아낸다. 거북이는 모래에 알을 낳은 후에 떠나는데 자식을 보지도 못하고 이별을 한다.
불교의 '일대시교'(석가모니가 도를 닦은 뒤 열반할 때까지 베푼 가르침)가 시대에 따라 서로 다르듯이, 지금의 자식교육에 있어 '일대시교'란 바로 자식이 대학을 졸업하면 홀로서기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딸은 중학생 때부터 꿈점검표를 통하여 구체적인 이별을 준비했고 성공했다. 내 아이가 홀로서기를 할 수 있도록 도우미가 되는 것, 유비무환의 자세로 준비하는 것, 그것이 부모가 할 일이며, 자식과 부모가 상생할 수 있고, 서로 성공할 수 있는 삶의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