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오후 2시, 5명의 아빠들이 박스집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이들은 그 것의 외벽에 붙일 나무와 구름과 자동차에 색칠을 하고 있다. 드디어 40여분만에 박스집이 완성되었다. 아이들은 여기 저기에서 기쁨의 환호성을 지르며 박스집에 들어가보고, 창가에 얼굴도 내밀며, 엄마와 아빠와 이야기를 나눈다.
바로 ‘아빠표’ 박스집이다.
» 박스집 만들기 체험에 참가한 가족들. 사진 권오진.
갑자기 박스집을 만들게 된 이유는 10일 전에 방송국에서 촬영 협조 연락이 왔기 때문이었다. '좋은 아빠'를 촬영하고 싶다며 아이템이 없냐고 묻기에 며칠을 고민하다 집에 박스집 재료가 있음을 확인하고 제안을 했더니 방송국에서 '박스집 만들기'를 수락한 것이다. 그래서 아빠학교에 공지를 했더니 5가족이 신청을 했다. 그런데 29일 오전까지 방송국의 PD나 작가에게 전화가 오지 않는다. 궁금해서 오후에 전화를 걸었더니 받지 않는다. 결국, 저녁 8시에 담당 피디와 통화를 했지만 방송촬영은 불발이 되었다. 최순실 사건 때문에 촬영 감독이 없다고 한다. 비록, 촬영은 펑크가 났지만 이미 한 약속은 번복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시 공지로 이 사실을 알리고 행사는 정상적으로 진행한다고 했다. 이미 한 가족은 29일 오전에 경남 창원에서 출발을 했고, 또 한 가족은 창원에 살지만 29일에 천안에서의 친척 행사를 마치고 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
» 박스집 만들기 체험에 참가한 아이들이 '두더쥐잡이'놀이를 하고 있다. 사진 권오진.
5가족이 모이자 거의 20명이 되었다. 우선 미리 만들어두었던 추억의 ‘두더쥐잡이’ 놀이를 했다. 4개의 구멍 밑에 엄마나 아빠가 들어가 있고, 3초마다 얼굴을 내밀면 아이가 뽕망치로 힘껏 머리를 때리는 방식이다. 아이들은 순서대로 뽕망치를 들고 때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빠들은 사전 각본대로 맞는 순간, ‘아야’ ‘왜 때려’ ‘혼난다’ ‘두고 봐’ 등 다양한 표현을 쏟아냈다. 그러자 아이들은 흥분하기 시작했고, 엔도르핀은 물론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면서 서로 많이 하려고 한다. 또한 엄마가 두더쥐가 되고 아빠가 때리는 방식이나, 그 반대의 상황도 연출했다.
![박스집 색칠하기.jpg 박스집 색칠하기.jpg](http://babytree.hani.co.kr/files/attach/images/72/009/489/%EB%B0%95%EC%8A%A4%EC%A7%91%20%EC%83%89%EC%B9%A0%ED%95%98%EA%B8%B0.jpg)
프롤로그 행사를 마치고 드디어 집 만들기를 시작했다. 먼저 아빠들에게 집을 만드는 설계도를 설명하고, 각자에게 장갑과 50센치 자와 칼과 테이프를 지급했다. 이 날 아침, 날씨가 영상2도까지 떨어졌다. 그래서 텐트를 설치했다. 그러자 갑자기 썰렁한 공간이 따뜻한 공간이 되었다. 아이들이 할 일은 박스집 외벽에 부조 형태로 붙이는 다양한 형태에 색칠을 하는 것이다. 구름, 자동차, 나무, 달 등이 있으며, 문패도 있었다. 그리고 나중에 커다란 하트와 굴뚝에도 색칠을 했다.
» 아빠들이 박스를 이용해 장난감 집을 만들고 있다. 사진 권오진.
이런 가족 행사에서 주의할 점은 안전사고다. 아이들이 여럿이 있고, 아빠들은 각자 집을 만드는라 열중하고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일이 칼로 박스를 자르는 일이다. 그래서 사전에 아이들이 색칠을 하는 공간과 아빠들의 공간을 분리했다. 아빠들은 마지막으로 아이들이 칠한 굴뚝을 집에 고정을 하면서 만들기가 완성되었다. 그 순간,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집으로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하며 엄마와 아빠와 상큼한 대화를 한다. 그런데 그 눈빛과 표정이 너무나 행복한 나머지, 날아갈 듯 하다. 마지막으로, 자동차에 싣을 수 있게 박스집을 김장봉투에 접어서 넣어주었다.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가면서 나에게 인사를 하고 또 한다. 자신을 행복하게 해주어서 진실로 감사하다는 표정이다.
» 박스집 만들기 체험에 참가한 가족이 박스집을 꾸미고 있다. 사진 권오진.
박스집의 역사는 이미 20년이 넘었다. 딸이 3살때부터 만들어주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저 라면박스에 구멍을 뚫은 작은 개집에 불과했다. 그래도 딸은 그곳이 얼마나 좋은지 들락거렸다. 그러자 일주일만에 박스집이 너덜거렸다. 그래서 다음에는 좀 더 큰 박스로 집을 만들었다. 이 번에는 창문도 만들었다. 그러자 딸은 아예 이불과 베게를 들고 들어가서 박스집에서 살림을 차릴 기세다. 때론 딸과 커다란 박스를 구하러 대형마트에 함께 가기도 했다. 아내는 박스집 창에 종이커튼을 만들거나 집안에 수납공간도 만들어주었다.
딸이 유아시절에 10개 이상을 만들어주었고, 집만들기의 내공은 점점 깊어가서 지금 만든 이층집도 설계를 하게 되었다. 그런데 박스집에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딸이 항상 좋아했다. 그리고 그것은 나중에 아이의 태아본능임을 알았다. 그 박스집은 진화를 거듭해서 여러 백화점의 문화홀에서 한 번에 50가족 200명이 참여하는 이벤트로 진행했다. 그리고 나중에 나의 저서에서는 이런 놀이를 ‘웰빙놀이’라고 명명했다. 즉, 한 번만 만들어 놓으면 아이 스스로 그 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낼 수가 있다는 뜻이다.
부모들의 놀이에 대한 생각은 부정적이기 쉽다. 그 이유는 공부의 반대 개념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들은 놀이를 통하여 세상을 배운다. 또한 세상은 온통 놀이터이다. 더구나 아이들이 1시간을 재미있게 논다면 그것은 곧 1시간 집중력 놀이이다. 이와같이 놀이가 곧 아이들에게 다양한 형태의 인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위의 박스집만들기가 아이에게 미치는 인성의 영향을 분석한다면 자존감과 창의성이다. 아이는 아빠가 자신을 위해서 열심히 집을 만드는 모습을 보는데 사랑이 전달되는 과정이다. 이것은 곧 자존감이다. 또한 흔한 박스를 자르고 붙이고 하면서 집은 만드는 것은 박스의 관념을 뛰어넘는 놀이다. 일반적으로 집에 있는 각종 박스들이란 담긴 물건을 꺼낸 후에 잠시 베란다에 있다가 재활용을 하는 날에 쓰레기로 변한다. 그런데 그런 박스가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박스집이 된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박스의 물리적인 변화를 목도하게 되고, 더구나 자신이 색칠한 부조물을 합체하면서 완전체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많은 아빠들이 놀이가 어렵다, 놀이가 힘들다고 한다. 이런 아빠라면 그저 작은 박스로 개집 형태의 박스집부터 만들어보자. 나도 그랬듯이,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면 아이에게 즉시, 행복하다는 반응이 온다. 그러면 별로 놀아주지 않아도 아이는 그 곳에서 혼자서도 잘 논다. 아이와 잘 놀아주지 못하는 아빠들은 항상 아이와 무엇을 놀아줄까 고민한다. 그러나 놀이란 먼저 아빠가 아이의 마음이 되어서 행복을 나누는 것이다.
거의 10년 만에 5가족에게 박스집을 만드는 노하우를 공짜로 알려주었다. 아이들이 돌아가면서 고맙다고 90도로 인사하는 모습과 딸이 어린 시절에 좋아했던 모습이 겹치면서 내가 더 행복했던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