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광주광역시 동구에 위치한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는 한·중·일 그리고 오스트레일리아(호주)의 어린이 문화예술 기획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놀이와 놀이터에 대해 이야기하는 국제포럼이 열렸다. 어린이문화원 문화예술교육포럼 ‘놀이, 또 하나의 문화’다. 나는 포럼에서 ‘아이, 소비를 얻고 놀이를 잃다’라는 기조발제를 했다. 나라와 문화마다 놓인 처지는 다르지만 어린이들 성장에 놀이가 필요하다는 데는 이의가 없었다. 그것을 가로막고 있는 최대의 걸림돌이 ‘소비 놀이’라는 데 참석자들은 대체적으로 동의했다. 나아가 어린이 예술교육은 놀이성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는 데에도 의견이 모아졌다.
![playground-888066_960_720.jpg playground-888066_960_720.jpg](http://babytree.hani.co.kr/files/attach/images/72/162/680/031/playground-888066_960_720.jpg)
그러나 어떤 면에서는 참석자마다 의견 차이가 분명히 드러났다. 이날 포럼에서 나는 여러 발표자에게 일종의 강박증을 느낄 수 있었다. 놀이가 창의성을 높이고 상상력을 키워주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으며, 그래서 놀이가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이 주장을 어색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주장이 매우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미 창의와 창조와 상상력 같은 말들은 너무 낡아 버렸다. 오히려 창의, 창조, 상상력의 강박을 벗어나 무뎌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놀이와 예술이라는 것이 이런 쪽으로 흐르고 강조가 되면 놀이 또한 무엇인가를 생산해내야 하는 ‘또 하나의 일’이 돼버리는 모순에 빠져버리기 때문이다. 특히 아이들에게 놀이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면서 이런 창의, 창조, 상상력으로 포장을 해버리면 순간 자유가 증발할 수 있다. 나아가 상업주의는 놀이와 창의를 동일시하며 영업을 꾀한다.
놀이는 체험과 달리 결과물을 집으로 가져가지 않고 허물고 때로는 망가뜨리고 부순다. 만드는 과정에 집중하고 결과물에 집착하지 않는다. 놀이가 왜 필요하냐는 질문에 많은 사람이 이렇게 대답해 왔다. 놀이는 시간을 소모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만들어 내는 시간이라고. 그러나 나는 거꾸로 말하고 싶다. 놀이는 시간을 한없이 소모하는 것이고 낭비하는 것이고 탕진하는 것이라고. 아이들에게는 시간을 이렇게 쓰는 것이 허용되어야 한다고. 그것이 아이들의 놀이라고.
아이들의 변화하는 놀이 환경 속에서 이날 포럼에서 귀담아들어야 할 발표가 있었다. 유튜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 팟캐스트 등의 플랫폼에 기반을 두고 놀고 있는 현재의 아이들에게 놀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다가가고 있는지 발표한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어린이, 가족 및 창의적 학습 본부장 브리짓 밴루번(Bridgette Van Leuven)의 이야기였다. 그녀가 일하는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에서는 앞서 열거한 플랫폼을 아이들의 새로운 언어로 인식하고, 그 특징이 놀이와 유사한 상호작용에 있음을 주목했다. 이를 다양한 미디어교육의 매개체로 적극 수용해 어린이들의 놀이와 예술 세계의 확장을 꾀하고 있었다. 가장 앞선 기술이 아이들 삶의 한복판에서 분명히 작동하고 있는 환경 속에서 놀이와 예술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 또한 고민이 깊다. 중요한 것은 이곳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고 그들은 이곳을 놀이터로 여기고 있다는 것에 분명히 동의하는 태도일 것이다.
편해문 놀이터 비평가 hm196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