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해문의 놀이터 뒤집어보기]
»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에 있는 한 폐교에서 육아품앗이 모임을 하고 있는 ‘숟가락’ 모임의 놀이터. 편해문 제공
한 해가 저물어가는 12월 중순,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에 있는 한 폐교를 다녀왔다. 폐교는 ‘지역경제순환센터’로 사용되고 있었는데, 한쪽 교실에 깃들여 육아 모임을 하는 벗들을 만났다. 2014년 인근 마을에 귀촌한 부모들이 첫 모임을 시작해 2015년 이곳 한 교실을 꾸며 열네 가족이 ‘숟가락’이라는 육아품앗이를 하고 있다. ‘숟가락’이란 이름은 어떤 부모가 “나는 숟가락만 얹어 놓은 것 같아 미안하다”는 말에서 따왔다. 이렇게 모두가 숟가락을 얹으며 아이들의 부모가 교사가 되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운동장에서 아이들은 하루가 짧다고 뛰어놀고, 엄마들이 당번이 되어 밥을 한다. 놀이엄마는 아이들과 놀고, 텃밭에서 채소도 직접 길러 먹는다. 감자 캐고 고구마 캐며 그렇게 아이들과 놀고 있다. 동네 어르신들이 친할머니 친할아버지처럼 아이들을 귀여워하는 것은 덤이다.
»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에 있는 한 폐교에서 육아품앗이 모임을 하고 있는 ‘숟가락’ 모임의 놀이터. 편해문 제공
또 하나 자랑할 만한 것이 ‘숟가락’에 있다. 폐교 한쪽에 이 모임에서 만들고 가꿔온 바깥놀이터다. 허름하기 그지없다. 변변한 놀이 시설도 찾기 어렵다. 대신 흙산이 높게 쌓여 있다. 모래놀이터도 통나무를 툭툭 잘라 경계를 만들었다. 작은 원두막도 한 채 있다. 내가 이 놀이터에 마음을 빼앗긴 것은 두터운 놀이의 흔적 때문이다. 아이들이 날마다 시간을 한없이 쏟아부은, 놀이터 전체가 커다란 놀이 증거였다. 놀이 도구들은 찌그러지고 닳았지만 아이들이 쓰기 좋게 바뀌어 있었다. 시설도 환경도 보잘것없지만 아이들이 자주, 오래 머물며 켜켜이 놀이의 지층을 쌓아 올린 놀이터였다. 어수선하지만 묘한 안정감이 느껴졌다.
어떻게 이런 알찬 놀이터가 됐을까 생각해보았다. 아이들 가까이 있는 분들의 ‘정성’과 ‘공부’였다. 흔히 부모는 교사에 견주어 교육에 관해 비전문가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아이들 가까이에는 좋은 시설이나 뛰어난 전문가보다 정성을 다할 사람이 필요하다. 아이들 가까이 오래 머물 수 있는 정성 말이다. ‘숟가락’ 부모들은 아이들의 놀고 싶은 욕구를 헤아리고 허용하고 알뜰하게 가꾸는 ‘공부’도 부지런히 하고 있었다. 놀이터의 두터운 흔적은 그렇게 켜켜이 쌓인 것이리라.
놀이터뿐만 아니다. 어린이문화예술 전반에서 어린이에 대해 공부하지 않고 이해가 적은 사람들이 단지 전문가라는 이유만으로 관련 사업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그게 우려스럽다.
다양한 문화예술 장르의 전문가는 있을 수 있다. 이분들이 일선 교육 현장에서 어린이를 만나 전공 분야를 좀 더 쉽게 전달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그러나 선행되어야 할 과정이 있다. 지금 만나는 어린이는 어떤 존재이고 어떤 삶의 맥락 속에 놓여 있으며, 이들이 지금 즐겁거나 고통스러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헤아릴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맥락을 읽지 않고 바로 어린이들을 만나고 사업이 진행되는 일을 목격한다. 그 결과는 기능만 뽐내다가 끝이 난다.
기능만으로 세상을 살 수 있다면 교육은 무의미한 것이다. 놀이터 또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지 않은지 살필 일이다.
편해문 놀이터 비평가 hm196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