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 교육] 부모-자녀의 성공적인 대화법
부모-자녀 많은 시간 보내는 방학
문제행동 반복 지적, 잔소리로 느껴
상호 요구 담은 ‘행동 목록’ 만들어봐
감정기복 심하고 주장 강한 사춘기
일방적 지시 말고 구체적 설명해야
공통 관심사 찾아 자연스레 대화 시도
방학을 맞아 가족이 둘러앉아 평소 하지 못했던 대화를 나누며 친밀감을 쌓는 기회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황인춘씨 가족이 자택에서 보드게임을 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 오늘도 늦잠이다. 일어나자마자 텔레비전을 켠다. 도대체 방학 숙제는 언제 하려는지. 학기 중에 공부하느라 힘들었을 텐데 조금 쉬어야지 싶다가도 한도 끝도 없이 늘어지는 녀석을 보면 열불이 난다. 기껏 괜찮은 학원을 수소문해 추천했는데 반응이 시큰둥하다. 답답한 마음에 소리를 질렀다. 아이는 방문을 쿵 닫고 들어가버렸다.
# 매일 새벽부터 서두르다 간만에 늘어지게 꿀잠을 잤다. 보고 싶었던 만화책 보고 멍 때리며 아무 생각도 안 하는 시간이 얼마 만인지. 엄마는 ‘공부 안 하냐’ 한마디, ‘숙제는 언제 할래’ 두마디, 원치 않은 ‘학원에 가라’며 세마디. 방학이 시작됨과 동시에 부모님의 잔소리도 시작됐다. 에효, 이럴 바엔 차라리 학교에 가는 게 낫겠다.
말로 다그치지 말고 절충점 찾아 글로 남겨봐
방학을 맞아 부모-자녀가 붙어 지내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늘었다. 부모는 아이의 잘못된 행동을 반복해 지적하며 신경질 내고, 아이들은 잔소리를 지겨워하며 부모의 이야기를 귀담아듣지 않는다. 장선화 에스피(SP)교육연구소장은 “잔소리도 효과적으로 할 수 있다. 똑같은 말이라도 방식을 바꾸면 아이들이 받아들이는 태도가 달라진다”고 했다.
그는 방학 시작하면서 5학년, 3학년 자녀와 ‘행동 목록’을 만들었다. 각자 지난 방학이나 평소 상대한테 들어서 좋았거나 기분이 상했던 말을 쭉 적어본 것. 가령, 아이는 엄마가 했던 말 중 “늦잠 좀 그만 자”, “공부는 안 할 거니?”라는 말 등을 적었다. 엄마 입장에서는 아이가 늦잠을 자고 일어나 텔레비전과 만화책부터 찾고, 할 일을 미루는 모습이 안타까워서 던진 말이었다.
이후 장씨와 아이는 각자 불만이나 요구사항을 정리한 뒤 대화로 절충점을 찾아나갔다. “엄마가 무조건 8시에 일어나라고 했는데, 일주일에 한두 번은 10시까지 자는 건 어떨까?”, “우선순위를 정해 할 일을 끝내면 이후에 자유 시간을 더 많이 갖도록 해주세요”라는 식이었다. 일방적으로 말로만 다그치면 잔소리라 느끼지만 서로 합의하는 과정을 통해 이야기를 글로 정리하면 아이도 책임감을 더 갖게 된다.
이때 처음에는 아이 요구사항을 더 많이 들어주는 게 중요하다. 장씨는 “일주일 정도 기간을 정해 아이 위주로 허용 범위를 넓혀준다. 아이 말대로 정했는데 잘 안 지켰으면 다시 계획을 수정한다. 부모가 지시하는 것보다 스스로 이해하면서 해결할 수 있게 하면 훨씬 효과적이고 서로 감정 상할 일도 덜하다”고 했다.
수치심 느낄 만한 말은 자존심 상하게 해
사춘기 아이들의 경우 예민하고 감정 기복이 심해 갈등이 더 잦다. 농담 삼아 사춘기 자녀를 둔 엄마들은 몸에서 사리가 나온다는 말을 할 정도다. 아이들은 부모가 말을 해도 그 상황에서의 ‘잘못한 일’을 나무라는 게 아니라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장 소장은 “부모도 감정선이 올라오면 이성적 판단이 흐려진다. ‘잔소리는 기본, 막말은 옵션’이 필연적이 되는 셈이다. 특히 아이가 수치심을 느낄 만한 말은 하면 안 된다”고 했다. “방학이라고 책을 사주고 아이가 안 읽으면 부모는 ‘내가 돈이 남아돌아서 그런 줄 아니’, ‘왜 자꾸 그딴 식으로 구는 거니’라고 한다. 그 말에 아이는 상처를 받는다. 화가 나더라도 막 쏟아내지 말고 한 템포 쉬었다가 차분히 설명해야 한다.”
서울 동작구에 사는 송빈(37)씨는 13살, 10살, 8살, 7살 자녀를 키우고 있다. 아이마다 성향이 달라서 대하는 게 쉽지 않다. 첫째는 딸이지만 아빠랑 잘 어울리고 둘째는 아들이지만 인정욕구가 강한 ‘엄마바라기’다.
큰애는 초등 4학년부터 사춘기에 접어들었다. 예전에는 엄마가 어디 가자고 하면 그냥 따라갔는데 지금은 “나 거기 싫어, 왜 가야 해? 친구랑 놀 거야”라는 식으로 말했다.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는 시기라 “좋다”, “싫다”는 의사 표현이 확고해진 것이다.
이럴 때는 무조건 부모의 뜻을 강요하기보다 아이의 말을 충분히 들어주고 이유를 설명해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는 부모가 자신을 무시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송씨는 “큰애에게 무조건 나이순으로 양보하라고 하거나 동생을 감싸면 편애한다고 느끼고 아이들 사이가 더 안 좋아진다. 아이 눈높이에 맞춰 이야기하고 각자 역할분담을 해준다. 문제 상황이 생기면 다 같이 모여서 의논을 하는 편”이라고 했다.
“한 아이만 혼낼 일이 있으면 따로 부르기도 한다. 이때 ‘무조건 네가 잘못했다’고 말하지 않고 ‘지금 잘하고 있는데 방금 행동은 좀 잘못된 거 같아. 이렇게 하면 더 낫지 않을까?’라고 이야기한다. 아이들 자존감을 떨어뜨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부모가 자녀와 이야기를 나눌 때는 서로의 공통 관심사를 대화 주제로 삼고 서로 눈을 맞추며 이야기하는 게 좋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우리 애는 어떤 스타일?’ 잘 알아야 친밀감 높아져
대화 주제를 뭘로 삼을지 고민하는 부모라면, 아이와의 공통 관심사를 찾아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도 좋다. 부산에 사는 전하영(44)씨의 9살 아들은 요즘 부쩍 사춘기나 성에 관심이 많다. 유튜브에서 관련 영상을 찾아보길래 옆에서 같이 보고 말로 설명해주기 어려운 부분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기관을 방문해 알려줬다.
“아이가 사춘기가 뭐냐고 자꾸 물어서 ‘너 혼자서도 잘 살 거 같고, 뭘 해도 잘할 거 같은 시기다. 그래서 부모 말을 듣기보다 자기 마음대로 하려는 때’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네 마음껏 하는 건 허용하지만 대신, 무엇을 하는지 말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아이들은 자신만의 비밀이 생긴다. 부모가 물어봐도 묵묵부답일 때가 많다. 전씨는 평소 아이가 일기를 쓸 때 “오늘 어땠니? 무슨 일이 있었어?”라고 물으며 자연스럽게 대화한다. 부모가 안 하다 갑자기 하면 아이는 간섭이나 감시라고 생각하지만 평소 자신의 관심사를 주제 삼아 이야기를 주고받으면 친밀감을 느낀다. 그는 “방학 때도 아이더러 친구를 집에 자주 데려오라고 한다.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아이들이 요즘 무슨 대화를 나누며 뭐하고 노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송씨도 아이 관심사를 파악해 맞춤형 대화를 하려고 애쓴다. 사소하지만 평소에도 틈만 나면 아이에게 “뭘 했는지, 학교나 학원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질문한다. 그는 “셋째랑 이야기해보면 ‘에프엠 스타일’이라 일이 주어지면 바로 해야만 하고 자기주장도 강하다. 아이들이 많다 보니 그에 맞춰 처리하기 힘들 때도 있지만 아이가 적극적으로 나서면 최대한 도와주려 한다”고 했다.
첫째 김다인(노량진초 6)양은 “엄마랑은 주로 드라마 이야기를, 아빠랑은 역사와 정치 이야기를 한다. 얼마 전 광화문 촛불집회도 아빠랑 둘이 다녀왔다. 아빠가 엄마 몰래 내가 원하는 걸 사주기도 하고 장난도 잘 쳐서 가끔 엄마보다 편하다”고 했다. “어른이나 아이나 관심사나 흥미가 비슷하면 ‘어? 나도’ 이러면서 더 빨리 친해진다. 부모님이 먼저 자녀가 뭘 좋아하는지 한번 살펴봐줬으면 좋겠다.”
최화진 <함께하는 교육> 기자 lotus57@hanedui.com
자녀와의 소통 도와주는 책
최화진 <함께하는 교육>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