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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베이비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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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문 열어 동네 놀이터로 품앗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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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터_1.jpg» 경상북도 안동의 한 시골 마을에 사는 편해문씨는 자신의 집 앞마당을 개방해 동네 어린이들이 마음껏 놀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아이들이 라면을 끓이고 있다. 편해문씨 제공2017년 1월1일, 동네 아이들이 우리 집 앞마당으로 놀러 왔다. 귀촌 14년차인 나는 안동의 한 시골 마을에 깃들여 살고 있다. 몇 년 전부터 집 앞마당을 동네 아이들 놀이터로 개방했다. 바깥채는 만화방으로 만들었다. 함께 사는 아내가 마음을 내준 까닭이다.

요즘 시골에서는 아이들 소리를 듣기 힘들다. 그나마 있던 학교가 합쳐지고 먼 거리를 통학해야 하는 일이 심심찮게 벌어진다. 밖에서 이사 들어온 집들이 드문데, 우리 마을에는 어린이집 원아부터 초등학교 6학년까지 10명의 아이들이 산다. 이날도 헤아려보니 아이들 10명이 다 모였다. 이렇게 올해 우리 집 앞마당 놀이터가 첫 개장을 한 셈이다.

개장을 했다 하니 좀 거창해 보이지만, 새해 첫날에 아이들이 놀던 곳을 찾아왔다는 것이 대견했다. 준비물도 참가비도 없고 딱히 내가 하는 일도 없다. 나는 그저 아이들 언저리를 오가며 그들의 이야기를 듣거나,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있을 때 찾아주는 역할 정도를 한다. 아이들은 이 놀이터에서 떠들어도 되고 만화를 실컷 봐도 되고 톱이나 망치질을 해도 된다. 뭘 해도 된다. 특별히 제지하거나 간섭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이날도 아이들은 앞마당에서 여러 실험을 했다. 불을 피우고, 냇가에서 얼음을 가져와 얼음장사 놀이를 했다. 커다란 고드름을 따서 소중히 나르고, 통발을 놓아 미꾸라지를 잡았다 풀어주었다. 고춧가루를 더 넣으라고 외치며 라면을 끓이고, 진흙산에 물을 부어 흙놀이를 했다. 나무칼을 만들어 칼싸움을 하고, 손바닥에 물을 묻혀 손도장을 찍다 손이 파리해지고 해가 떨어져서야 각자 집에 돌아갔다. 물론 데리러 온 엄마 아빠 할머니에게 집에 안 가겠다는 마지막 서운함을 큰 소리로 외치면서 말이다.
놀이터_2.jpg» 경상북도 안동의 한 시골 마을에서 아이들이 즐겁게 노는 모습. 편해문씨 제공.
 
우리 부부는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갈 때 특별히 뒷정리를 요구하지 않는다. 어지르는 것이 놀이다. 컴컴해지는 마당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대충 치우고 나니 작은 행복이 밀려온다. 올해도 이 재미난 뒤치다꺼리 속에서 살 것을 생각하니 즐겁다.
 시골이니까 가능한 일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놀이운동을 20년 가까이 해온 사람의 소박한 주장이라 들어주신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이런 놀이터는 아파트에서도 도시의 주택 한가운데서도 가능하다고.

놀이터_3.jpg» 커다란 고드름을 나르고, 진흙산에서 흙놀이를 하는 아이들. 아이들에게는 이 모든 것이 놀이다. 편해문씨 제공
아이들은 이 세상 한구석에서 마음껏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터전이 필요하다. 아이들에게는 놀이를 지지해줄 가까운 어른 몇 명이 필요하다. 그런 어른들이 모여 2017년에는 작게 품앗이를 해보면 어떨까. 대단한 모임을 결성하자는 것이 아니다. 한 달에 한 번이라도 내가 사는 집과 시간을 돌아가며 내줄 수 있는 이웃 어른들의 ‘노는 마음’만 있으면 충분하다.
놀이터_4.jpg» 손에 물을 묻혀 미끄럼틀에 손도장을 찍으며 노는 아이들. 편해문씨 제공
나 또한 놀이터를 디자인하고 짓는 일에 걸쳐 있지만, 최고의 놀이터, 궁극의 놀이터는 그런 곳만이 아니다. 가까운 집과 가정이 궁극의 놀이터다. 집과 가정을 놀이터 삼아 특별한 외부 지원을 받지 않고 스스로 꾸려가는 자치 놀이 모임이 늘어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2017년 첫 놀이터 이야기를 열어 본다. 놀이는 매이지 않고 독립하려는 자의 몸부림이다. 어린이나 어른이나.
편해문 놀이터 비평가 hm196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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