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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난민 할아버지와 일본 귀신의 한집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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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묘지 위 부산 ‘비석마을’
부산경남 그림책 창작집단 첫 책

할아버지 집에는 귀신이 산다
이영아 글·그림/꿈교출판사·1만4800원

부산 아미동에는 ‘비석마을’이란 동네가 있다. 비탈진 산등성이에 그리 넉넉하지 못해 보이는 집들이 다닥다닥 모여 있는 곳이다. 할아버지는 이 동네에서 50년 동안이나 혼자 살아왔다. 단칸방에 조촐한 세간살이만 놓여 있고, 지붕에선 물이 샌다. 화장실이 따로 없어 공동화장실을 써야 한다.

어느 날 할아버지 앞에 일본 옷을 입은 귀신이 나타난다. 안 그래도 “분명 아무도 없는데 누군가 옆에 있는 것만 같더라니.” 할아버지는 “당장 내 집에서 나가” 소리치며 귀신을 내쫓으려 하지만, 귀신은 되레 “나는 줄곧 이 집에 있었는 걸. 여기가 내 무덤이라고!” 하면서 받아친다. 귀신은 신문 기사를 가리키며 “일본 사람들이 조상의 유골을 찾으려고 우리 마을에 왔대. 후손들에게 내 비석이 여기 있다고 어서 알려야 한다”고 한다.

알고 보니 원래 이곳은 일본 사람들의 공동묘지였는데, 그 위에 새로 마을이 만들어진 것이었다. 계단과 돌담 사이, 현관문 앞 댓돌 등 마을 곳곳에서 비석들을 볼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고 한다. 귀신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자신의 비석을 찾아달라고 할아버지에게 부탁하고, 둘은 마을 여기저기로 비석을 찾아다니며 서로의 이야기를 나눈다. 원래 일본 대마도에서 버섯을 캐며 살았던 귀신은 돈을 벌기 위해 조선에 왔다고 한다. 부산에서 두부 장사를 하면서 돈을 모아 하루빨리 고향으로 가려고 했지만, 병이 나는 바람에 결국 돌아가지 못하고 이곳에 묻힌 것이다.

그럼 할아버지는 어떻게 이곳에 오게 됐을까? 북한 연백이 고향인 할아버지는 열다섯살 때 한국전쟁이 나는 바람에 이곳으로 홀로 피난을 왔다. 피난 온 사람들은 달리 정착할 곳이 없어 공동묘지가 있던 이곳에 마을을 이루고 살게 됐다고 한다. “꺼림칙하고 죽은 사람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었지만 그땐 어쩔 수가 없었다”고 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이라는 역사적 비극 속에서 저마다의 사연으로 고향을 등지고 떠나와야 했던 둘은 고향을 그리는 서로의 마음을 그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게 된다.

“우리도 언젠가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겠지?”

계단과 돌담의 일부가 된 비석 등 곳곳에서 삶과 죽음의 흔적들이 교차하는 비석마을은 시간과 국경을 초월해 서로의 아픔을 껴안고 보듬는 공간이 된다. 실제로 비석마을에는 아직도 집 안에 향을 피우며 죽은 이를 위로하는 마을 주민이 많다고 한다.

부산·경남을 기반으로 삼아 역사와 개인, 도시와 마을 공동체, 신화와 전설 등 지역의 이야기를 그림책으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지닌 ‘창작 공동체 에이(A)’가 내놓은 첫번째 그림책이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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