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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텃밭 농부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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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마당after.jpg» 순천 기적의 도서관 마당에 놓여있는 텃밭상자들. 사진 정봉남. 어느새 마당에는 봉숭아 꽃들이 활짝활짝 피어서 손톱에 물들일 날들을 재촉한다. 블루베리가 예쁜 종 모양으로 열매를 매달고, 옥수수도 수염을 흩날리며 알이 배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꽃자리마다 벌들이 윙윙, 민들레와 토끼풀이 초록 잔디 사이에 노랗고 하얀 별들을 뿌려놓고, 살금살금 다가온 고양이는 풀벌레와 나비를 쫓느라 폴짝폴짝 뛰논다. 오종종 돋아난 열무싹은 잎이 나오자마자 구멍이 송송송. 누가 이렇게 맛나게 먹고 간 걸까.  

요즘은 도시 텃밭 보급을 위한 지원이 활발해서 농업기술센터로부터 텃밭상자를 지원받았다. 텃밭상자를 어디에 둘 것인지, 무엇을 심을 것인지, 어떻게 가꿀 것인지를 두고 머리를 맞대는 시간들이 더없이 즐거웠다. 무엇보다 흙과 식물과 자연에 대해 진지하게 배우면서 돌보는 이의 마음을 알아가는 것이 중요했다. 그래서 정원가드너 선생님들의 도움을 받아 ‘꼬마 정원사’들은 직접 식물을 심고 관찰하며 도서관 정원을 가꾸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거름주기.jpg» 아이들이 텃밭상자에 거름 흙을 넣고 있다. 사진 정봉남.

씨뿌리기.jpg» 텃밭상자안의 흙에 씨를 뿌리는 아이들. 사진 정봉남.

꼬마 정원사.jpg» 꼬마 정원사들. 사진 정봉남. 흙과 거름을 채워넣는 일부터 아이들은 땀을 뻘뻘 흘렸다. 씨앗을 너무 깊지 않게 심는 데 정성을 들였고, 서로 물을 주겠다고 왔다갔다 하더니 결국은 친구들한테 물뿌리기에 성공해 꺄악꺄악 생쥐꼴이 되기도 했다. 물조리개가 모자라 서로 다툼이 있기도 했지만 가위바위보로 순서를 정해 골고루 역할을 분담했다. 넝쿨 타고 자라날 고추랑 토마토에 지지대를 세우는 일도 씩씩하게 했다. 아침저녁으로 다녀가면서 풀을 뽑고 무언가 속닥속닥 이야기하는 모습은 어엿하고 아름다웠다. 

잘 자란 상추.jpg» 텃밭상자안에서 잘 자란 상추들. 사진 정봉남.

아이들.jpg» 상자 텃밭에서 야채를 수확하는 아이들. 사진 정봉남.
푸성귀가 풍성해질수록 보는 사람들은 누구나 좋아했다. 도서관에 생명의 기운이 가득 차는 느낌이랄까. “얘들이 이렇게 가꾸다니 대단하네요.”하면서 하루의 꽤 많은 시간을 정원에서 보냈다. 애정 어린 시선을 받는 채소들도 사람 구경에 심심치 않아보였다. 가끔씩 어여쁘게 막 돋아난 것들을 거침없이 툭툭 끊어놓은 흔적에 “누구야? 정말!” 속상해 하면서 당번을 서기도 했는데, 알고 보니 어린 동생들이 소꿉놀이 한다고 뜯어서 어질러놓고 가버린 것이었다. 한번은 꼬마정원사들한테 딱 걸린 동생들이 있었는데 차마 성질은 못 내고 살살 달랬다. “조금만 있으면 다같이 먹을 수 있잖아. 그니까 기다려줘야 해. 알았지?” 겁먹은 어린애들도 크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쌈파티.jpg» 아이들이 둘러앉아 쌈을 싸 먹으며 '삼파티'를 하고 있다. 사진 정봉남. 자신이 공들여 키운 것들은 왜 이렇게 맛있는지. 평소에 푸성귀를 잘 안 먹던 아이들도 ‘쌈파티’에서는 엄청난 먹성을 보여주었다. 할머니한테 선생님한테 친구한테 나눠주겠다며 수확한 것들을 한 줌씩 가져갔다. 

“흙이 포근포근해서 만질 때 기분이 좋아요. 딸기는 예뻐서 못 먹겠어요. 물 줄 때가 제일 재미있어요. 잎사귀가 귀여워서 솎아주는 게 아까웠어요...” 스스로 가꾸는 일은 아이들에게도 보람이라는 선물을 안겨주었으리라. 농사의 한 과정을 성실히 체험해보고, 서로 협동하면서 자연의 이치를 알아갔으니 그 자체로 소중한 경험이다. 
책1.jpg» <나에게 정원이 있다면>, <상추씨> 그림책, 사진 정봉남
정원을 가꾸는 아이들 곁에 놓아주고 싶은 그림책이 있다. “우리 엄마에겐 정원이 있어요. 나는 엄마의 조수예요. 나는 물을 줘요. 잡초도 뽑아요. 또 상추를 모두 먹어치우지 않게 토끼도 내쫓아요. 무척 힘든 일이에요. 덕분에 엄마의 정원은 아주 예쁘지요. 하지만 만약 나에게 정원이 있다면....”하고 상상하는 이야기 <나에게 정원이 있다면>(케빈 헹크스 그림·글/시공주니어). 아이의 정원에는 잡초도 없고 꽃들은 피고 또 피어나 절대 시들지 않고, 알사탕을 심으면 알사탕 나무가 자라나며, 때때로 쓸모 있고 특이한 물건들, 단추랑 우산이랑 녹슨 열쇠 같은 것이 돋아난다. 상상만 해도 햇살을 등에 얹은 것처럼 기분이 좋아진다. 세상을 향해 두 팔을 한껏 펼친 아이처럼 눈을 감고 꽃향기에 취해도 좋을 만큼.     

상추 잎의 표정이 압권인 상큼발랄 그림책 <상추씨>(조혜란/사계절). 맛있게 고기쌈도 싸 먹고 회쌈도 싸 먹는 상추, 시원한 물 먹고 방긋 웃는 상추, 돌담 밖에서 꽃을 피우고 씨앗이 된 상추의 표정을 하나하나 살피며 즐겁게 읽을 수 있다. 더구나 바느질로 완성해서 질감이 생생하다. 돌담은 까슬까슬하고 오돌토돌한 천으로, 이글이글한 햇빛은 털실로, 시원한 물웅덩이는 망사 천으로 표현되었다. 상추는 싹이 돋아나는 행복한 때, 뜨거운 햇빛을 견뎌야 하는 때, 시원한 물을 받고 한숨 돌리는 때, 솎아지고 밟힐 때처럼 아픈 순간까지도 다 겪어냈다. 별 것 아닌 같은 상추 이야기를 정말로 사랑스럽게 들려준다.   
책2.jpg» <딸기 밭의 꼬마 할머니>, <조지 아저씨네 정원> 그림책, 사진 정봉남
부지런히 물감을 칠해 딸기를 빨갛게 익게 만드는 <딸기 밭의 꼬마 할머니>(와타리 무츠코 글, 나카타니 치요코 그림/한림출판사)와 아주 조그만 정원을 가꾸며 하나하나의 생명을 존중 해 주는 <조지 아저씨네 정원>(베너뎃 와츠 그림, 게르다 라미 샤이들 글/시공주니어)을 읽으면서 생각한다. 여름에 피어난 꽃의 아름다움 너머에는 꽃을 피우게 한 정원사의 손길이 숨어있다는 것을. 나도 정원사 조지 아저씨처럼, 딸기밭의 꼬마 할머니처럼, 상추씨를 건네주는 꼬마처럼, 조가비를 정원에 심을 줄 아는 아이처럼, 꽃 한 송이 아름답게 피어나도록 물을 길어오고 밤새 얹혀진 고운 먼지를 살뜰하게 닦아내는 노동의 즐거움을 잊지 않아야겠다. 도서관 정원이 키운 것들을 바라보는 아침의 고요와 한가로움을 더 사랑해야겠다. 

도서관 입구.jpg» 기적의 도서관 입구의 화초들. 사진 정봉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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