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쓰던 튜브 수영장이 정원초과로 터지고야 말았다. (초등학교 고학년 조카들이 몸을 던지는 바람에~)
덕분에 언니가 새로 사준 수영장.
초호화 럭셔리 풀빌라로 업그레이드 된 ‘강동 풀빌라’의 여름 이야기.
실상은 그리 럭셔리하지 못하여
어디선가 사은품으로 받았던, 십수 년 된 선풍기가 운명하시는 바람에 그렇다고 에어컨을 계속 켤 수 없어 냉동실에 얼린 아이스 팩을 껴안고 살았다.
(아이스팩이 썩 괜찮은 방법인데 연구가 조금 더 필요하다. 살에 직접 닿으면 따갑고 불편하고 그렇다고 수건에 돌돌 말아주니 찬 기운이 전해지지 않는다고 불평. 몸에 고정시키는 방법도 생각을 좀 더 해봐야 한다. 나는 뒷목에 올려놓는 게 좋고 아루는 등에 붙이는 게 좋다 하고 해람이는 엉덩이에 깔고 앉는 게 좋다고. 자투리 천으로 뭘 만들어 볼까 했는데 고민만 하다 올여름은 다 지났고 내년에 해봐야겠다.)
작년 늦가을에 밭에서 거둔 팥 (1.6kg나 땄다)
냉동실에 우유를 얼려 포크로 얼음을 부수면 팥빙수 기계 필요 없고
팥앙금과 딸기잼만 있어도
시원하고 맛있는 팥빙수가 된다.
아이들 방학을 맞아 여기저기 싸돌아 다니느라 집에서 지낸 날이 많지 않았는데 그래도 옥상 텃밭의 채소들이 잘 자라주었다.
과연, 상자 텃밭에서 될까? 좌린 보다 키가 더 높이 자란 옥수수를 보며 열매가 맺힐지, 알이 박힐지 끝까지 의심스러웠는데 따고 보니 아주 훌륭했다.
봄에 괴산에서 옥수수 농사짓는 친구가 보내 준 대학 찰옥수수, 구멍 세 개에 세 알씩 심어 모두 9개를 땄다.
내년에는 높이 자라는 대학 찰옥수수 대신 씨앗을 구해 조그만 토종 옥수수를 심어 보고 싶다.
호박은 쓸모가 많다.
호박 잎 쪄 먹고 호박 열매는 볶아 먹고 된장찌개에 넣고 많으면 말려서 겨울에 먹어도 되고. 보기만 해도 흐뭇해지는 늙은 호박은 떡 해먹고, 죽 끓여 먹고, 호박범벅 해 먹고.
호박을 심을 때 생각은 이런 것이었다. 이런 야무지고 푸짐한 기대를 가지고 애호박 모종, 단호박 모종을 하나씩 사다 심었는데 상자 텃밭이라서 그런지, 거름이 부족한 건지, 정성이 부족했는지 그리 잘 되지 않았다. 열매가 맺혀도 오백원짜리 크기에서 스스로 찌그러지고 썩어 버리고.
그나마 심고 보니 뭐가 뭔지 헷갈려서, 하나는 잎이 좀 진하고 다른 하나는 잎 색깔이 연한데 이파리 색이 연한 게 당연히(!) 애호박일 거라는 추측으로 처음으로 보기 좋게 커진 단호박을, 진초록이 되기 전에 다 익기 전에 따버렸다. 부침개 부친다고 반으로 가르고 나서야 단호박임을 알았다. 어쨌든 부침개 부쳐 잘 먹긴 했지만, 그 뒤로 한동안 자라는 녀석이 없어 상심했는데 장맛비 속에서 하나가 조심스레 크고 있었다. 기다리고 기다려, 진한 초록이 될 때까지, 그리고 꼭지가 하얗게 될 때까지 기다려 8월 초에 드디어 단호박을 하나 땄다. 따고 나서 또 일주일의 숙성 기간을 기다려(엄마, 며칠 지났어? 단호박 언제 먹어? 아이들이 날마다 묻고 또 묻고...) 마침내 반으로 갈랐을 때 “와우!” 모두가 함성을 질렀다. 겉모습처럼 속도 제대로 익은, 오렌지 빛 단호박을 두고 모두 얼마나 행복했는지!
애호박은 이렇다 할 성과 없이 그냥 사그라 들었다.
어느날 생협 매장에 가 보니 단호박 한 통에 4700원이라고 붙어 있었다. ‘우리 것보다 조금 크니까 우리 단호박은 4천원 정도라고 보면 되겠네, 그럼, 모종값은 됐고, 수도 세는 건졌나? 인건비는 어쩌고?’ 잠깐 머리 굴려 계산하다가 그만두었다. 호박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힐 때마다 저 녀석이 계속 클 것인가 찌그러질 것인가 조마조마해서 보고 또 보고, 커지기 시작하면서는 ‘잘 큰다, 계속 쑥쑥 커라!’ 마음속으로 수없이 응원했던 순간들, 호박에 쏟았던 애정과 그로 인한 기쁨을 어찌 돈으로 따질 수 있겠는가!
단호박 한 통, 맛도 기가 막히게 좋았다. 내년에 심으려고 씨를 받았다.
해마다 파프리카를 심어도 제대로 거둔 적이 없었는데 올해는 아주 잘 됐다. 작정하고 거름을 많이 주었기 때문인가? 친환경 유기질 비료라고는 하지만 거름에 의존하는 것은 그래도 좀 찜찜한데 내년에는 지금 만들고 있는 음식물 퇴비로 해 봐야 겠다.
올해도 음식물 퇴비에서 나온 메론 두 개.
작년보다 크기는 큰데 조금 일찍 땄는지 맛은 별로였다. 메론 향 나는 오이 정도?
쌈 채소와 열무를 심었던 상자 텃밭은 장마가 끝나면서 관리를 하지 않아 풀이 무성하게 자랐는데 그중에 반가운 얼굴을 발견했다.
쪽!
쪽풀이다. 우리가 흔히 ‘쪽빛 바다’, ‘쪽빛 하늘’이라고 부르는 시퍼런 남색은 이 쪽풀로 염색하여 얻을 수 있는 색이란다.
작년에 암사동 논에서 논 가의 풀을 관찰하다가 누군가 쪽이라고 알려 주길래 가지를 꺾어다 옮겨 심었다. 뿌리를 내리는 것 같더니 금세 꽃이 올라와 여뀌처럼 생긴 꽃 구경을 하고 잊어버렸는데 꽃에서 씨를 만들고 그 씨가 흙에 떨어져 숨어 있었나 보다.
장맛비 한창 쏟아지던 어느 날 흙에서 쪽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꽃이 피고 씨가 맺히고 땅에 떨어져 이듬해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 자연의 섭리인데 쓰고 버리는 일회용에 너무 익숙해진 탓일까, 이렇게 당연한 진리를 잊고 산다.
텃밭 농사를 지으면서도 씨를 받아 쓰는 것은 별로 없고 해마다 모종과 씨를 사서 심는데 가끔 이렇게 흙 속에서 자발적으로 올라오는 싹을 보면 놀랍고 신기하다. 반갑다!
찾아보니 생쪽 염색은(전통적인 쪽 염색은 쪽풀을 발효시켜서 하는데 그냥 간단히 생 잎으로 하는 걸 생쪽 염색이라고 한단다.) 꽃대가 올라오기 직전, 8월이 적기란다.
아이들과 쪽 이파리 따서 염색을 해 보았다.
아이들 흰색 런닝 사이에 쪽 잎을 넣고 숟가락으로 두드려, 두드려!
짜잔~ 나뭇잎 모양이 예쁘게 찍혔다.
나는 이파리를 갈아 얼음물을 섞어 흰 스카프에 물을 들였고 아이들 손수건으로 홀치기도 해 봤는데 농도가 연해서인지 색이 잘 들진 않았다. 원래 쪽 염색은 실크, 삼베에 해야 쪽빛이 나고 면에다 하면 초록색, 옥색이 나온단다.
남은 이파리로 한 번 더 물을 들여볼까, 아님 발효시켜 쪽 가루 만들어 봐? 생각 중이다.
찬란한 토마토!
그러나 비가 많이 와서 당도가 떨어졌는지, 수년간 먹다 보니 질린 건지, 올해의 방울 토마토는 별로 인기가 없었다.
사랑을 못 받아서 그랬나? 익으며 쭈글쭈글해졌다.
징글징글하게 비가 많이 오고, 숨이 턱턱 막히게 더운 나날이었지만 그 속에서도 잘 자라준 텃밭 친구들과 아이들 덕에 올여름도 건강하게 잘 지낸 것 같다.
안녕하세요?
다른 그림 찾기, 혹은 토마토 속에 숨은 머리 방울 찾기!
그리고, 언제나 빛이 되어 주는 좌린의 유머와 재치
덧붙임: 한동안 딴 데 정신이 팔려 여행기를 못 쓰고 있었어요. 조만간 다시 말레이시아 여행기로 뵐게요,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