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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아이랑 아침을 먹기 시작합니다. 이때 저의 역할은 ‘눈치껏 블로킹’입니다. 둘째가 좋아하는 고기반찬을 요령껏 남겨야 합니다. 반찬을 기껏 빼돌렸는데 둘째가 먹지 않는 경우, 허탈합니다. 남은 음식을 버리기가 아깝더라고요. 결국 저의 역할은 잔반 처리입니다. 영업사원들이 접대를 위해 점심을 두 번 먹는다더니, 육아하는 아빠도 아침을 두 번 먹습니다. 살림 사는 주부들의 체중 관리가 왜 힘든지 실감했어요.
2012년 문화방송 170일 파업 당시 저는 노조 부위원장으로 일했습니다. 파업 이후 5년간 회사에서 제게 드라마 연출을 맡기지 않았어요. 밤샘 촬영 대신 살림을 살면서 육아에 대해 나름 안다고 생각했는데요. 자택 대기 발령 동안 다시금 깨닫고 있어요. 육아는 정말 어려워요. 직장 근무는 퇴근이 있는데 육아는 24시간 근무입니다. 요리사가 되어 밥을 차리고, 학습지 교사가 되어 숙제 검사를 하고, 놀이방 친구가 되어 보드게임을 하고, 동화 구연가가 되어 책을 읽어주고, 아이가 잠들면 겨우 퇴근인가 싶은데, 아이가 벌떡 일어나 “모기가 있어!” 하면 방역요원이 되어 다시 출근합니다. 육아는 끝이 없어요.
가고 싶었어요. 드라마 피디로 일하면서 밤샘 촬영하는 게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인 줄 알았는데, 육아가 더 힘들더라고요. 회사로 복귀할 날만 손꼽아 기다리는 자신을 보며, ‘아, 난 내가 좋은 아빠인 줄 알았는데, 아닌가 보다’ 하면서 우울해했어요. 그때 만난 후배 피디가 그러더라고요. 출산 후 육아가 너무 힘들어 산후 우울증이 심했다고. 출산과 모유 수유가 그렇게 힘든 일인 줄 몰랐다고. 그나마 일터로 복귀할 수 있다는 생각에 휴직이 끝나기만 손꼽아 기다렸는데 그때 ‘이렇게 예쁜 아기를 두고, 난 참 나쁜 엄마네’ 하고 많이 우울했다고 하더라고요.
고민입니다. 어설프게 육아에 발만 담근 아빠가 감히 육아의 어려움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육아가 정말 힘들고 어렵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육아의 첫걸음이 아닐까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