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훈 기자 kimyh@hani.co.kr 달팽이가 말했어
김개미
집에 들어갈 땐
뒷걸음질이 최고지.
이 세상을 좀 더 오래
지켜볼 수 있잖아.
<쉬는 시간에 똥 싸기 싫어>(토토북 2017)
바라보는 것을 시(視), 자세히 살펴보는 것을 관(觀), 더욱 자세하게 살피는 것을 찰(察)이라고 한다면, 시는 시<관<찰의 순으로 예민해질 것이다. 시가 봄, 관이 자세히 봄이라면, 찰은 예민하게 봄, 내적인 알아챔에 해당된다.
달팽이는 동시의 단골 소재다. 전래동요에서부터 현대의 시인에 이르기까지 아주 많은 시인이 달팽이를 동시의 글감으로 편애했다. 너무 많아서 새로운 달팽이 동시가 더는 나오지 않을 줄 알았는데, 아직까지 없었던 달팽이가 이렇게 또 태어났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본문은 달팽이가 한 말로 되어 있다. 달팽이가 뒷걸음질로 들어간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었지만, 그것에 예민하게 주목하지는 않았다. “집에 들어갈 땐/ 뒷걸음질이 최고”라는 새로울 것 없는 사실을 접하고 나서, 무엇보다 귀가의 마음가짐이 새로워졌다. 집에 들어가기 전 뒤돌아보는 버릇이 생긴 것.
‘달팽이’ 자리에 다른 것을 넣고 그것이 하는 말을 적어 본다. 적어 보기 전에 그것이 되어본다. 그러려면 먼저 그것을 자세히 보고 예민하게 감각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연필이 되어 본다. 연필은 무슨 말을 할까. 지우개는? 인형은? 지우개보다는 지우개똥, 인형보다는 곰돌이인형. 조금이라도 더 작은 것, 가까운 것을 고른다. 그냥 연필보다는 4B연필, 그냥 공책보다는 일기장, 알림장, 국어공책…. 엄마가 (엄마 생일에) 말했어, 아빠가 (일요일에) 말했어, 내 마음이 (화가 나서) 말했어, (빼빼로 데이에) 세종대왕이 말했어, 금붕어가 말했어, 길고양이가 말했어, 보름달이 말했어…. 특정한 정황을 추가하면 구체성을 띠게 된다.
<○○○이(가) 말했어> 시공책을 만들어 적어 나간다. 아이 따로, 부모 따로 해도 좋고 공동으로 해도 좋다. 내가 아닌 다른 존재의 말을 한 권 다 받아 적고 나면 아이는 어떻게 바뀔까, 엄마는 아빠는 또 어떻게 달라질까.
점
김개미
선생님이 얼굴에 있던 점, 점, 점,
점을 빼고부터
나는 선생님 얼굴에서 점, 점, 점,
점을 찾는다.
(같은 책)
1연이 시(視)나 관(觀)이라면, 2연은 찰(察)에 가깝다. 마음의 흐름을 예민하게 포착했다. 없는 것이 아닌데, 예민하게 포착하지 못하고 넘어간 ‘있음’을 김개미 시인은 신기할 만큼 알아채서 드러낸다. 찰(察)에서 나온 말은 예민해서 찰지다. 누구나에게 들어 있는 연료에 성냥을 갖다 대는 식이라서, 슬쩍만 그어도 독자 마음에 불이 붙는다.
동생 밥 먹이기
김개미
동생이 아, 할 때
나도 아, 한다.
내가 더 많이 아, 한다.
(같은 책)
눈 오네
김개미
흰 털 거위야,
너 원래 이렇게 지저분했니?
(같은 책)
몰랐던 얘기가 아니다. 다 아는 거라고 생각해서, 누군가 이미 말했을 거라 여겨 말하지 않았던 거다. 누구나에게 들어 있는 연료에 불을 붙인다는 말은 이런 것이다. 이런 말하기는 인화성이 강해 언제라도 대중적 파급이 될 수 있다. “동생이”/ “나도”/ “내가”의 주어 짝이나, “아, 할 때”/ “아, 한다.”/ “더 많이 아, 한다.”의 서술어 짝은, “아,” “아,” “아,” 입을 벌리고 받아먹고 싶을 만큼 맛있는 짜임새다. “흰 털”의 “지저분”함이 눈이 와서 느닷없이 드러났다고 말하는 한편으로 “원래” “이렇게 지저분했니?”라고 묻는 것은 이 시인의 예민함이 감각의 차원보다 좀 더 근원적인 차원에서 발휘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모기향
김개미
꼬마 불씨가 다리를 건너간다
톡,
톡,
톡,
톡,
다리를 다 부러뜨리고
―〈커다란 빵 생각〉(문학동네 2016)
입속에서
김개미
이가 흔들리니까
혀가 자주
이를 만지러 간다
이가 빠지니까
혀가 더 자주
이를 만지러 간다
―〈어이없는 놈〉(문학동네 2013)
‘모기향’은 ‘강을 건넜으면 뗏목을 버리라’는 〈금강경〉의 한 대목을 떠올리게 하고, ‘입속에서’는 이 시인의 관찰이 눈만 아니라 혀로도 수행된다는 것을 말해준다.
위에 소개한 대로 김개미 시인은 지금까지 세 권의 동시집을 냈다. 말을 재밌게, 깊게 다룰 줄 아는 시인이다. 어린이 독자와 어른 독자를 동시에 만족시켜야 하는, 아동문학의 이중독자 문제를 김개미만큼 잘 풀어나가는 시인은 드물다.
〈어이없는 놈〉에서 한 편 더 소개한다. 이 작품에 나오는 ‘눈’은, 눈[雪]일까, 눈[眼]일까. 둘 중 무엇이든 매우 끈질긴 관찰력을 보여준다.
눈은 참
김개미
눈은 참 끈질겨
길고 긴 전깃줄도
얽히고설킨 등나무 덩굴도
끝까지 따라가 앉아
눈은 참 꼼꼼해
배드민턴 그물 한 칸도
회양목 이파리 한 장도
빼먹는 법이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