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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수제비
김성민
강가에 선
아버지가
수많은 돌멩이 가운데
적당히 묵직하고
둥글고 납작한 돌멩이 하나 골라
내 손에 쥐여 주었다
이깟 강 하나쯤 너끈히 건너갈 것 같은
돌멩이였다
<브이를 찾습니다>(창비, 2017)
둥글고 얄팍한 돌을 물 위로 튀기어 가게 던졌을 때, 그 튀기는 자리마다 생기는 물결 모양을 물수제비라 하고, 그렇게 던지는 것을 물팔매라 한다. 물수제비는 ‘물/수제비/제비/비’로 글자 나누기 놀이를 할 수 있다. 귀뚜라미가 ‘귀/뚫/(동그, 맨드, 쓰르)라미’로 글자 나눔을 거치며 동그랗거나 맨들거리거나 쓰라린 어감으로 번져가는 것처럼, 말 자체를 나누고 바꾸고 보태어 감각하는 것만으로 시적인 물결을 만들어낼 수 있다. 물수제비 시가 자주 새의 이미지를 입거나 음식처럼 표현되는 것은 단어 안에 새(제비)와 음식(수제비)이 들었기 때문이다. “제비라는 말을 함부로 쓰지 마세요/ 수제비가 뭐예요/ 족제비가 뭐예요/ 물수제비는 또 뭐냐고요”(최승호, ‘제비’ 전문)는 말을 바꾸거나 보태어 간 경우다.
김성민의 ‘물수제비’는 강가에 선 아버지가 아들에게 물수제비 뜰 돌멩이를 골라 손에 쥐여 주는 내용이다. “적당히 묵직하고/ 둥글고 납작한 돌멩이”가 물수제비 돌로 맞춤하다. “적당히 묵직”함은 아버지에게가 아니라 아이의 손아귀와 팔 힘, 발달 단계에 알맞은 것이겠다. 수많은 돌멩이 가운데 아이에게 맞춤한 딱 하나를 고르는 시간이 사랑이리라. 아버지의 온기가 묻은 돌멩이를 손에 쥔 아이는 그 사랑을 전해 받은 것만으로, 인생의 강을 너끈히 건너갈 것 같은 힘과 용기를 얻는다.
이번 가을에는 돌멩이가 많은 강가에 나가 물수제비 뜨는 법을 아이에게 전수해 주자. 가을볕을 받은 돌멩이들은 엄마 아빠의 사랑을 체감하기에 알맞은 온도로 달구어져 있을 것이다. “날아가는 동안/ 납작한 돌멩이 어깻죽지에/ 작은 날개가 돋아”나고, “둥그런 배때기에/ 가느다란 다리가 돋아”(이상교, ‘물수제비’ 부분)나는 마법의 시간이, 아이 마음에 오래 남아 묵직하고 따뜻한 중심이 되어주면 좋겠다.
강가에는 돌이 많다. 돌과 돌멩이는 어감이 다르다. 돌멩이, 하고 발음해 보면 어딘가 맹한 표정과 만만한 크기와 심심함 같은 ‘멍 때림’이 함께 떠오른다. 말이 그런 것처럼, 무수히 널린 돌은 색깔이며, 모양, 크기, 질감, 무늬가 제가끔 다르다. 물수제비를 뜨기 전 돌 앞에 멈추어 생각을 다듬고, 재고, 맞추어 본다. 시간의 물살에 깎이면서도 단단히 간직된 돌의 사연을 상상해 본다. 어떤 돌을 골라야 날렵하게 강 건너편에 도달할 수 있을까. 아니, 돌에게 덜 미안할까.
돌 앞에서이안강가에 돌이 아무리 많아도물수제비는 뜨지 않겠어밖으로 나오려고돌은,얼마나 많은 날을 물속에서구르고또 굴렀겠느냔 말이야하지만 어쩌다날고 싶은 꿈이 새겨진돌을 만난다면강 건너편까지 힘껏물팔매를 날려주겠어얼마나 많은 날을잊지 않았으면날개나 깃털 무늬가돌에새겨졌겠느냔 말이야<충북작가〉(2015년 하반기)
“날고 싶은 꿈이 새겨진”, 그러니까 “날개나 깃털 무늬”가 새겨진 돌은, 강 건너로 날아가 또 다른 시인의 상상력을 깨우는 조약돌이 된다. 조약돌은 새 조(鳥), 뛸 약(躍)― 뛰어오르는, 날아오르는 새의 이미지로 도약하기에 알맞다. 조약은 삐약, 우는 새소리를 닮기도 했다.
강 건너 조약돌송찬호이 조약돌 어디서 날아왔지?강 건너에서누가 날려 보냈지?강 건너 저기 저 아이가조약돌 무늬가 알록달록하네조약돌이 따뜻하네조약돌의 실핏줄도 보이네조약돌 안에서 톡톡 껍질 깨는 소리도 들리네어? 강 건너 아이가 새처럼 날아가고 없네〈초록 토끼를 만났다〉(문학동네 2017)
시인이 본 것이 조약돌 아니고 새알 아닌가 싶을 정도로 환각적이다. 강 건너에서 날아온 조약돌은 “무늬가 알록달록”하고 “따뜻하”다. 심지어 “실핏줄도 보이”고 “안에서 톡톡 껍질 쪼는 소리”까지 들린다. 알을 깨고 금방이라도 새끼 새가 나올 것만 같다. “어? 강 건너 아이가 새처럼 날아가고 없네”는, 아이와 새, 조약돌과 새알,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지우며 그 너머로 가볍게 날아오른다. ‘조약/돌’에서 새의 날아오름(조약)과 새소리(삐약)를 꺼낸 것이다.
물수제비 잘 뜨는 법손택수1물결의 미끄러움에 볼을 부볐다 뗄 줄 알아야 한다그런 미끈한 돌을 찾아 한나절쯤을 순전히길바닥만 보고 돌아다녀본 적이 있는가무엇보다 손바닥에 폭 감싸인 돌을 만지작만지작체온과 맥박소리를 돌에게 고스란히 전달해본 적이 있는가돌을 쥘 땐 꽃잎을 감싸쥐듯, 돌을 날릴 땐나뭇가지가 꽃잎을 놓아주듯미련을 두지 않아야 한다바람 한점 없는데 나뭇가지가 툭, 자신을 흔들 때의 느낌으로손목 스냅을 사용할 줄 안다는 그것, 그건이별의 끝에서 돌과 함께 날아갈 채비가 되어 있다는 거다스침에도 몰입이 있어, 딱성냥을 긋듯이단번에 한점을 향해 화락타들어가는 정신,2그러나 처음 물에 닿은 돌을 튕겨올린 건 내가 아니라 수면이다 나의 일은 수면을 깨우는 것으로 족하다 그다음 돌을 튕겨올리는 건 물결들이 알아서 할 일, 앞물결의 설렘이 뒷물결까지 이어지도록 그냥 내버려둘 일똑똑똑, 가능한 한 긴 노크 속에나른하게 퍼져 있던 수면을 바짝 잡아당기면서<떠도는 먼지들이 빛난다〉(창비 2014)
손택수의 ‘물수제비 잘 뜨는 법’은 시에 관한 시, 아예 시론으로 읽게 된다. 시어 하나 잘 고르는 일이 물수제비 돌 하나 잘 고르는 일과 다르지 않다. 숙고하여 고른 물수제비 돌이, 던지는 자의 마음가짐과 몸가짐, 속도와 수면의 마찰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강을 건너가듯, 한 편의 시도 한 단어, 한 행의 설렘이 다음 단어, 다음 행으로 이어지며 스침과 몰입의 팽팽한 긴장 사이에서 태어난다.
김성민 시인은 2011년 〈대구문학〉 동시 부문 신인상을 받고 2012년 〈창비어린이〉 신인문학상에 동시 ‘나비 효과’ 외 4편이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최근 첫 동시집 〈브이를 찾습니다〉를 냈다. 앞머리에 소개한 ‘물수제비’가 아이의 마음속 ‘장아찌’로 오래 간직되면 좋겠다. 공교롭게도 두 작품은 마주 보며 실려 있다.
장아찌김성민놓치고 싶지 않은 순간, 조금 더 붙잡아 두기지금 기억, 할 수 있는 한 오래 간직하기두고두고 조금씩 꺼내 먹을 장아찌를엄마랑 아빠랑 함께 만드는 일
이안 시인, <동시마중> 편집위원 aninun@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