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있던 어린이들 화재·추락사고 잇따라
어린이 안전사고 69.1%가 ‘주택’서 발생
“혼자 있는 아이 한국서 흔해, 사실상 방임”
미국·캐나다 등 혼자 있을 수 있는 나이 정해
10일 오전 서울 시내 한 초등학교 앞에서 어린이가 등교하고 있다. 2017.10.10 연합뉴스
괌에 여행 갔던 법조인 부부가 아이들을 차 안에 둔 채 쇼핑하러 갔다가 체포된 데 이어 서울 구로구 화재로 7살 아이가 혼자 집에 있다가 숨진 사건을 계기로 어린이 방임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우리 사회 문화를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미국이나 캐나다의 일부 주처럼 어린이를 홀로 두지 못하도록 법으로 강제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 ‘어린이 안전사고’, 가정에서 가장 많아
지난 8일 낮 서울 구로구 개봉동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불이 나 혼자 있던 7살 조아무개군이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됐다. 주방 쪽에서 빠르게 번진 불을 채 피하지 못한 조군은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결국 숨졌다. 당시 조군 어머니는 직장에 출근한 상태였고, 아버지는 아이를 집에 홀로 남겨두고 두 시간가량 공원에서 운동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4월에는 엄마가 장보러 간 사이 6살 남자아이가 아파트 15층에서 떨어져 사망했고, 3월에도 베이비시터가 자리를 비운 사이 어린이가 추락사하는 등 차 안이나 집에 혼자 있던 어린이가 화재·추락 등으로 목숨을 잃거나 다치는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한국소비자원이 2013~2015년 벌어진 어린이 안전사고 7만6845건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사고가 가장 많이 발생한 장소는 ‘주택’으로 전체의 69.1%(5만3072건)를 차지했다. 안전한 공간으로 여겨지는 가정에서 가장 많은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황옥경 서울신학대 교수(보육학)는 “한국 부모들은 보통 아이가 혼자 밥 먹고 움직일 수 있다면 혼자 집에 둬도 된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매우 위험하다”며 “어린아이에게는 목욕탕이나 부엌 등 일상 공간도 모두 흉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 ‘1분 방치’도 방임…법·제도 개선 함께 가야
지난해 4월 전남 광주의 특수학교 통학버스에 방치됐다가 숨진 박한음(9)군의 사연이 알려지면서 국회는 어린이 통학버스 운전자가 운행을 마치고 차에서 내리기 전, 아이들이 모두 내렸는지 확인하도록 강제하는 도로교통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아동이 실질적인 신체·정신적 위해를 입지 않는 한 그 외의 아동방치 행위 자체는 법률 규제의 사각지대에 있다.
아동보호 전문가들은 아이를 홀로 ‘잠깐’ 방치하는 것도 방임으로 봐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김정미 굿네이버스 아동권리사업본부장은 “아이가 집에 혼자 있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 매우 일반화되어 있지만, 사실상 방임”이라며 “영아나 유아는 특히 위험하다. 법으로 명확히 기준을 정해 제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어쩔 수 없이 아이가 혼자 있는 경우가 생기는 맞벌이 부부나 한부모 가정 등을 위해 돌봄서비스와 같은 사회보장 체계가 촘촘히 마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윤선영 건양대 교수(아동보육학)도 “아동 안전사고의 대부분은 어른이 옆에만 있어도 예방할 수 있다. 아이를 차량에 홀로 둔 부모를 처벌하는 등 법적 조처가 있다면 사고 예방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국가는 어린이 혼자 집에 둘 수 있는 최소 나이를 법으로 강제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노스캐롤라이나·메릴랜드주 8살, 뉴멕시코·오리건주 10살, 일리노이주 14살 등이다. 캐나다는 13개 주 가운데 3개 주가 12~16살 이하 아동을 혼자 둘 경우 처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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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비 신민정 임재우 기자 withb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