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antcast
Channel: 베이비트리
Viewing all articles
Browse latest Browse all 4145

제때를 아는 것이 인생의 처음이자 끝

$
0
0
커피.jpg» 김영훈 기자 kimyh@hani.co.kr 변비 엄마
송선미
 
엄마는 커피는 식으면 맛이 없다면서
커피를 들고 화장실로 갔다
 
모든 게 다 때가 있는 거다
그 때가 온 거다
이때를 놓치면 안 된다

<옷장 위 배낭을 꺼낼 만큼 키가 크면>(문학동네, 2016)
 
 
모든 게 다 때가 있다지만 그 때가 과연 언제인지 알아채기는 어렵다. 시작할 때와 끝낼 때, 계속해야 할 때와 그만두어야 할 때, 매달려야 할 때와 놓아주어야 할 때, 따끔하게 고쳐주어야 할 때와 품에 안아 다독여주어야 할 때, 일을 늘려가야 할 때와 줄여가야 할 때…. 때를 제대로 아는 것이 인생 공부의 핵심이다. 마음 내키는 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종심’은 온갖 때를 다 익혀 그 때가 몸에 밴 자에게 주어지는 최상의 자유다.
 
송선미 시인의 ‘변비 엄마’는 변비에 걸린 엄마가 “커피는 식으면 맛이 없다면서/ 커피를 들고 화장실로 갔다”는 상황을 제시하면서 시작한다. 때를 놓치지 않으려는 엄마의 궁여지책이 웃음을 불러일으킨다. 맞는 말은 맞는 말이기에 오래되고 상투적이며 귀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그런데 2연의 메시지가 거부감 없이, 너그럽게 수용된다. 독자가 엄마보다 우월한 지위를 부여받았기 때문이다. 잔소리(메시지)를 적절한 상황으로 잘 감쌌다.
 
어린아이는 똥오줌을 가리면서 자기 몸의 때를 알아간다. 똥오줌을 지리는 실수를 통해 때를 놓치는 것이 얼마나 불편한 일인지, 때를 아는 것이 얼마나 개운한 일인지를 체득한다. 화가 날 때, 야속할 때, 서운할 때, 미안할 때…, 제때 표현하지 못한 마음은 언젠가 터질 화근이 된다. 아이가 어렸을 때는 엄마 아빠도 지금보다 어렸다. 너그러운 거리를 둘 줄 몰랐다. 제대로 풀지 못했기에, 묶인 그때는 끝나지 않고 계속 온다. 지금 알게 된 것을 그때로 돌아가 풀어줄 수 있다면, 뒤늦게 후회하는 마음에게 말해줄 수 있다면. 아직 늦지 않았다고, 지금이 그때라고, 이때를 놓치지 말라고. 미처 못다 한 말은 해주고 못 들어준 말은 들어주어야 한다.
 
시 쓰기는 사람살이를 닮았다. 첫 행에서 다음 행으로, 또 다음 행으로 이행해 가는 시 쓰기가 사람살이의 걸음걸이와 다르지 않아서다. 짧게 끊어야 할 때가 있고, 길게 이어가야 할 때가 있다. 훌쩍 연을 바꾸어 도약과 낙차를 두어야 할 때가 있고, 느슨하게 풀어주어야 할 때와 단단히 홀쳐 매야 할 때가 있다. 시인은 매 순간, 놓아줌과 붙잡음, 물러섬과 나아감, 끊음과 이음, 말과 침묵 사이에서 머뭇거린다. 다 보여주어야 할 때와 조금만 보여주어야 할 때, 아예 감추어야 할 때가 있다. 보여주는 척 안 보여주고, 안 보여주는 척 보여주어야 할 때도 있다. 선을 넘어서려는 욕망과 넘어선 안 된다는 윤리 사이에서 시의 기율이 탄생한다. 가야 할 때 가고, 보내주어야 할 때 보내주면 개운하지만, 그 때를 어기면 변비가 온다. 

안녕, 똥
김성민
 
그래, 가
 
내가, 지금 이래서, 멀리 못 나가
 
 
잘 가
 
―〈브이를 찾습니다〉(창비 2017)



‘응’의 글자 형태가 절묘하다. ‘ㅡ’ 아래 이응이 몸과 분리되어(ㅡ) 똑 떨어지는 똥의 모양을 닮았고, ‘ㅡ’는 깔끔한 갈라섬, 분리의 기호로 쓰였다. “응” “가”(1연)―“응/ 가”(2연)―“잘 가”(3연)의 연결이나 각 연의 끝을 “가”로 맞춘 것도 적절하다. “응”과 “그래”는 상대에 대한 수긍을 나타낼 때 쓴다. 일방적인 밀어냄이 아니다. “내가, 지금 이래서, 멀리 못 나가”는 상대에게 구하는 양해의 말이다. 멀리 배웅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더듬거리는 쉼표와 길어진 행에 담겼다. 서로에게 상처 없는 분리여서 뒷맛이 개운하다.   
 
오줌 마렵다
신민규
 
졸려 죽겠는데
오줌 마렵다
 
일어나기 싫은데
오줌 마렵다
 
아랫배에 주삿바늘 꽂고
오줌을 뽑아내고 싶다
 
배꼽에 USB 꽂고
오줌을 옮겨 담고 싶다
 
찬 바닥에 배를 대고
오줌을 얼려 버리고 싶다
 
졸려 죽겠는데
일어나기 싫은데
 
오줌은 점점
또렷해진다
 
―〈Z교시〉(문학동네 2017)


세상이 아름다워지는 시간
송선미
 
시험 전날
 
책상은 특별히 더 깨끗해지고
아름다운 말들은 자꾸 떠오른다
 
―〈옷장 위 배낭을 꺼낼 만큼 키가 크면〉(문학동네 2016)



도저히 붙잡아둘 수 없는 것을 붙잡아두려고 안간힘을 쓰는 데서 웃음이 터져 나온다. 졸음과 귀찮음을 핑계대면서 생각해 낸 것이 참으로 엉뚱하고 기발하다. “아랫배에 주삿바늘 꽂고” “배꼽에 USB 꽂고” “찬 바닥에 배를 대고”, “오줌을 뽑아내고” “옮겨 담고” “얼려 버리고 싶다”는 발상은, 시인이 의료 시스템의 관리에서 태어나 컴퓨터 등 각종 기계 환경에서 자란 새로운 세대의 몸 감각을 타고났기에 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언제까지고 오줌을 눙쳐둘 수는 노릇이기에 졸려 죽겠어도, 일어나기 싫어도 점점 또렷해지는 오줌을 놓아주러 화장실로 가야 한다. “그 때가 온 거”고, “이때를 놓치면” 안 되니까. 최후까지 유보하기(‘오줌 마렵다’)와 회피하기(‘세상이 아름다워지는 시간’), 있는 걸 무화시키기가 이처럼 재미난 시를 만들기도 하지만, 감꽃 필 때 올콩 심고 감꽃 질 때 메주콩 심는 것(김영무, ‘과학’)이 ‘때의 과학’이자 육아법이며 관계학이자 시학이고 자기 경영법이다. ‘줄탁동시의 분변학’이라 불러도 좋다. 
 
돌봄이 필요할 때 충분한 돌봄이 주어지고, 분리가 필요할 때 적절한 분리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이르지도 늦지도 않은 때에,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처신하기는 얼마나 어려운가. 지금은 어느 때인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때인가. 두고 볼 때인가, 껴들 때인가.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이형기, ‘낙화’)이 아름다우려면 보내주는 이의 양해(“응/가”)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 분리는 상처가 되고 화근이 되어 언젠가 기어이 사나운 문젯거리로 돌아온다.  
 
〈옷장 위 배낭을 꺼낼 만큼 키가 크면〉은 송선미 시인의 첫 동시집이다. 상처 받은 여자아이의 내면이 동시를 쓰면서 치유되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 ‘네 살 적 내 사진’을 보자. “동생이랑 앉아 있는 네 살 때 나는/ 두 손 가득 잡힌 풀을 마구 뜯고 있어요./ 마음이 모질고 거친 것만 같아요.”(1연)가 성장기에 내면화된 수치심, 낮은 자존감의 표현이라면, “동생이랑 앉아 있는 네 살 때 나는/ 사진기 든 아빠 따라 환하게 웃어요./ 소꿉놀이하려는지 풀 장난도 치면서.”(2연)는 동시를 쓰면서 가닿은 내면의 재해석, 자기 긍정이다. 유년의 상처를 말하고 치유해가는 시인의 모습에서 독자는 자기 안의 상처받은 내면 아이를 들여다보고 말하고 돌볼 용기를 얻게 된다. 시골 초등학교에서 ‘엄마 이야기’를 들려주었을 때 한 아이가 다가와 “우리 엄마 베트남 사람이에요.”라고 말하는 걸 들었다. 그 아이를 생각하며 옮겨 적어 본다. 첫 번째 꼬마는 분리의식이 잘 치러진 경우다. 나는 몇 번째 꼬마였나. 나는 몇 번째 부모인가. 

엄마 이야기
송선미
 
세상에 난 것들은 모두 엄마가 있어
 
첫 번째 꼬마는 엄마가 있어
엄마가 안 보여도 엄마랑 있지
 
두 번째 꼬마에겐 엄마가 없어
이젠 볼 수 없는 엄마가 그립곤 하지
 
세 번째 꼬마에겐 엄마가 없어
엄마가 없어서 엄마가 뭔지 잘 몰라
 
네 번째 꼬마에겐 엄마가 있어
엄마가 있는데 고아처럼 살아
 
세상에 난 것들은 모두 엄마가 있어
하지만 모두 엄마가 있는 건 아니야
 
―〈옷장 위 배낭을 꺼낼 만큼 키가 크면〉



이안 시인, <동시마중> 편집위원 aninun@hanmail.net

Viewing all articles
Browse latest Browse all 4145

Trending Artic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