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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식 피디의 통째로 육아
공대를 나와 영업사원을 하다 드라마 피디로 일하는 저를 보고 친구들이 가끔 묻습니다. “너는 연출을 전공한 적이 없는데 어떻게 드라마를 만드니?” 저는 이렇게 답합니다. “나는 모른다.” 저는 드라마를 모릅니다. 그래서 항상 사람들에게 물어봅니다. 촬영장에 배우가 오면 물어봅니다. “이 신 연기는 어떻게 할 건가요?” 배우가 리허설로 보여주면 옆에 있는 카메라감독에게 묻습니다. “저 연기를 카메라에 어떻게 담아야 할까요?” 카메라감독이 콘티를 제안하면 스태프들에게 묻습니다. “자, 콘티가 이렇다면 장비 세팅은 어떻게 할까요?”
배우나 스태프들에게 먼저 지시를 내리지는 않습니다. 각자가 준비해 온 아이디어를 들어보고 협의를 통해 촬영을 진행합니다. 연기자가 대본을 보고 며칠 동안 열심히 연습해 왔는데 촬영 현장에서 감독이 다른 톤을 제시하면 배우가 연기할 때 헷갈립니다. 자신이 준비한 톤과 감독이 지시한 톤이 충돌하니까요. 결국 ‘영민’한 배우는 연습을 해 오지 않습니다. 대본 연구를 하지 않고 현장에서 감독이 시키는 대로만 합니다. 배역의 윤기나 생기가 사라지지요. 연기자로서는 일하는 재미도 사라져요. 감독의 꼭두각시가 된 것 같거든요. 아마 다음 작품엔 저랑 일하려 하지 않을 겁니다. 배우가 연기하는 즐거움을 만끽하려면 감독은 지시보다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열 살, 열일곱 살 두 아이를 키우면서 늘 고민입니다.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갈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 할까. 답은 저도 모릅니다. 1년 전, 세상이 1년 만에 이렇게 바뀔 줄 몰랐는데, 10년 후, 20년 후 어떤 세상이 올지 제가 감히 어떻게 알겠어요. 답을 모르기에 저는 아이들에게 물어봅니다. “지금 너는 무엇을 하고 싶니?”
아이가 책을 읽어달라 하면 책을 소리 내어 읽어주고, 보드게임을 하자고 하면 루미큐브 판을 펼치고, 자전거를 타자고 하면 같이 자전거를 끌고 공원으로 나갑니다.
어려서 부모님이나 선생님 같은 주위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열심히 공부만 하던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회사 상사가 시키는 대로 열심히 일만 하면서 삽니다. 시스템과 명령에 따라 열심히 일하는 건 앞으로 인공지능이나 로봇이 더 잘할 것 같습니다.
이가 스스로 성장하는 즐거움을 맛보려면 자율성과 자발성을 키워야 합니다. 결국 부모도 아이에게 지시를 내리는 사람이 아니라 물어보는 사람입니다.
‘나는 무엇을 할 때 가장 즐거운가?’
이것을 찾는 것이 진짜 공부입니다. 아이나 어른이나.
글·사진 김민식 피디 seinfeld68@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