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천석의 내가 사랑한 그림책
장수탕선녀님
백희나 글·그림
책읽는곰 펴냄(2012)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얼마 없다. 부모가 보기에는 매사 자기 멋대로 사는 듯 보이지만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세 가지뿐이다. 부모가 시키는 일, 제한된 범위의 놀이, 그리고 부모 말 안 듣고 고집부리기. 아이들은 권한도, 능력도 없기에 현실을 답답해한다. 그렇다고 금방 현실이 변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기대는 것이 상상이다. 상상은 아이에게 소망을 이루게 해주고 불만을 견디게 한다. 상상할 수 없으면 아이들은 병에 걸릴 것이다.백희나가 그리는 현실은 기본적으로 답답하거나 막혀 있는 공간이다. <구름빵>에서 주인공 형제는 러시아워 속의 도심을 배경으로 아빠를 향해 날아간다. <장수탕선녀님>에서 주인공 덕지가 선녀를 만나는 곳은 목욕탕이다. 목욕탕은 아이들에게 이중적인 공간이다. 냉탕에서 수영도 하고 넓은 공간을 돌아다니며 장난을 칠 수도 있지만 부모에게 잡혀서 꼼짝없이 때를 밀어야 한다. 욕탕 내에 가득 찬 습기는 숨이 막히고 타일로 덮인 벽은 폐쇄적인 느낌을 준다. 그래서 목욕탕이야말로 아이들이 느끼는 현실의 답답함을 은유하는 공간이다. 그리고 이 공간에서 덕지는 상상세계로 넘어가 한 할머니를 만난다.할머니는 스스로를 선녀라고 이야기한다. 옛이야기 ‘선녀와 나무꾼’에서 모티브를 따온 선녀다. 선녀는 하늘로 오르지 못한 채 나이를 먹어서인지 이제 할머니가 되었고 장수탕에서 살게 된 것이다. 어쩌면 이것은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다. 이 할머니는 정신이 나간 할머니일지 모른다. 하지만 덕지는 그 할머니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준다. 그리고 할머니와 신나게 놀이를 한다. 부모조차 있는 그대로 아이의 말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이 어려운 법인데 주인공 덕지는 할머니를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 백희나는 덕지의 행동을 통해 아이들도 하는 것을 우리들 부모는 못 하고 있음을 은근히 꼬집는다. 아이가 하는 것을 못 하는 이유는 부모의 욕심 때문이다.게다가 덕지는 할머니가 먹고 싶어 하는 요구르트를 드리기 위해 숨이 막히고 눈물이 나는 것을 참으며 때를 민다. 순수하게 상대를 위하는 마음이다. 이처럼 백희나의 주인공들은 착하다. <구름빵>에선 구름빵을 갖다 드려 지각 위기의 아빠를 구하고, <장수탕선녀님>에선 할머니를 있는 그대로 한 사람으로 인정해준다. 그는 아이들 마음의 선함을 믿고 싶어 한다. 목욕탕에서 너무 신나게 놀아서일까? 덕지는 감기에 걸린다. 하지만 아픈 덕지를 할머니가 찾아온다. 할머니는 진짜 선녀가 되었다. 있는 그대로 내 존재를 인정받았기에 할머니는 이제 목욕탕을 벗어나 선녀가 된 것이다. 그래서 덕지의 이마를 식혀주며 빨리 나으라고 격려한다. 덕지의 선행을 할머니는 갚아준다. 이제 덕지는 하루 만에 거뜬히 감기를 이겨낸다.서천석 소아정신과 의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