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한약국으로 지인들이 방문을 한다. 시간이 나면 한약국 주방에서 내가 먹는대로 조촐하게 음식을 만들어 나누기도 하는데, 사람들은 내가 만든 요리를 먹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
사실 구지 내가 만든 게 아니더라도, 누군가가 나를 위해 요리를 해준 걸 좋아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특히 나만을 위해 요리한 음식은 맛을 떠나서 그저 감동이 밀려오니까.
그런데 어떤 날은 나도 요리할 맘이 나지 않고, 가볍게 산책을 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을 때가 있다. 맨 처음 한약국을 어디에 시작할까 고민할때, 내게 이 곳이라고 확신을 심어준 원적산으로 지인을 데려가는 날이 그런 날이다.
한약국에서 걸어서 10분 정도면 입구에 닿는데, 굳이 산길을 오르지 않고 나즈막한 공원길을 거니는 시간은 1시간이면 충분하고, 30분 정도에 후딱 다녀올 수도 있다. 20대엔 인적이 끊어진 깊은 산중으로 귀농을 한 적도 있었는데, 언제나 다시 돌아갈까 늘 맘 속으로 기다리다가 도시에 발이 묶여버린 기분이 들곤 할 때 나는 아주 가까운 곳에서 손을 내밀어 주는 원적산으로 간다. 자연을 내 맘대로 편리하게 데려다놓은 곳이다.
올 가을에는 유난히 은행나무숲이 아름다웠다. 딱 2-3주 정도만 가장 화려한 가을을 보여주는 원적산에 때마침 반가운 지인과 함께 점심을 먹으러 갔다. 이 동네 맛집으로 알려진 두부전문요리점에서 나같은 완전채식인도 먹을 수 있는 맑은순두부비빔밥에 돼지기름을 사용하지 않은 녹두전을 먹는 것이 손님을 맞이하는 나의 힐링코스다. 채식으로 손님을 대접할 곳이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소중한 기분이 드는지. 이 식당이 생기기 전에는, 나를 찾아오는 지인들에게 고기와 계란을 뺀 비빔밥을 주문해주는 정도였으니 말이다.
채소가 그득한 두부비빔밥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 계산대 옆에 누구나 가져가라고 담아놓은 비지를 한덩어리 가져와서 오후 간식으로 비지전을 만들었다. 나의 가장 중요한 일과 중 하나가 차 한잔과 함께 오후 간식을 꼭 챙겨먹는 일인데, 오늘의 메뉴로 간택된 것이다. 지난 추석에 선물로 들어온 감태가 있어서 함께 반죽을 해보니, 맛이 그럴싸했다.
내가 평소 강의를 할때, 간식을 주식보다 더 많이 먹는 사람들은 배가 나온다고 했는데 감태비지전은 배가 나오도록 맛있었다. 하지만 비지도, 감태도 다이어트 식품. 맛이 좋으면서 살이 안찌는 기특한 음식을 우리는 얼마나 갈망하는가. 게다가 아이들도 아주 좋아할만한 고소함을 지녔으니, 감태비지전은 앞으로도 쭈욱 사랑해줘야 하는 아이템인게다.
맛은 좋고 살은 안찌는 감태비지전
<재료>
비지, 감태, 통밀가루, 전분가루, 마늘, 양파, 삼색 퀴노아, 소금, 후추
<만드는법>
1. 비지에 통밀가루와 전분가루를 3:1 비율로 섞고, 감태, 다진양파, 다진마늘을 넣어 섞는다. 소금 후추로 간하고, 퀴노아가 있으면 조금 넣는다.
2. 팬에 기름을 두르고 기름의 온도가 올라간 다음 한 수저 또는 한 주걱(원하는 크기대로) 떠서 잘 핀 다음, 앞 뒤로 노릇하게 부친다
* 햄버거 패티 대신으로 응용해도 좋고, 쌀과자나 통밀빵에 넣어 샌드위치로 즐겨도 좋다. 이때는 발사믹소스나 겨자소스와 케첩을 곁들이면 아이들이 좋아한다.
감태비지전을 곁들인 샐러드 브런치
<샐러드 재료>
감태비지전, 어린잎, 적양파, 토마토, 고수, 올리브
<소스>
들기름, 감식초, 단호박, 소금, 후추
* 쌀케잌이나 샌드위치에 소스에 버무린 샐러드와 감태비지전을 가볍게 얹어 먹거나, 소스를 뿌려 먹는다.
비지는 두부를 만들때 가열하고 여과한 후, 두유를 걸러낸 다음 거즈에 남는 찌꺼기 부분이다. 영양성분면에서는 두부나 두유보다 떨어지지만 덕분에 칼로리가 두부의 1/4 밖에 되지 않고, 섬유질이 풍부하여 다이어트에 좋다. 특히 비지의 식이섬유는 체내에서 수분을 흡수하여 부풀기 때문에 장청소를 해준다.
감태는 미역과에 속한 해조류로,알긴산, 요오드, 칼륨 등의 양양소가 다량 함유되어 있고, 항산화 항암, 항염, 항노화작용을 하는 후코이단과 플로로탄닌 성분도 풍부하다. 독특한 식감이 처음에는 이상하게 느껴지지만, 계속 먹다보면 특유의 고소함을 느낄 수 있다.
단백질이 풍부한 콩을 많이 섭취하면 체내 요오드를 배출시키는 작용을 하는데, 요오드가 풍부한 감태와 짝을 이루어 요리를 하면 이러한 작용을 보완할 수 있으니 음식궁합으로서는 최상이다.
요리를 즐기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좋은 식재료를 만나는 기쁨은 남다르다. 새로운 창의력을 자극한다고나 할까. 올 가을 단풍빛으로 물든 원적산을 기억하는 또다른 방식은 감태비지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