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 반, 설렘 반으로 시작했던 연재를 끝내게 되었다. 부족한 글 솜씨와 경험으로 대안학교에 대한 안내를 하겠다고 나섰던 일이 생각한 만큼 독자들에게 도움이 되었는지 염려스럽다. 마지막 이야기는 아이를 대안학교에 보내고 나서 우리에게 찾아온 변화와 여전히 고민하는 것들은 무엇인지에 대해 쓰고자 한다.
일반 학교에서 적응하지 못하던 아이가 대안학교로 옮기고 나서 학교와 배움을 너무나 사랑하는 멋진 아이가 되었다는 식의 이야기는 우리에겐 없었다. 아이는 여전히 아침에 일어나기를 싫어하고 방학을 고대하며 학교보다는 집을 더 좋아한다. 대안학교 급식은 고기반찬이 일주일에 딱 한번뿐이라서 맛이 없다고 불평하기도 하고, 간식으로 나오는 미숫가루나 찐빵, 팥죽 같은 음식들보다 자장면·돈가스를 더 좋아한다. 동생들과 징글징글하게 싸우고 부모에게도 삐딱한 꼭 열한 살 사내아이처럼 자라고 있다. 그러나 달라진 것도 물론 있다. 일반 학교 다닐 때도 공부하라는 소리는 해본 적이 없었지만 대안학교로 옮기고 나서는 “숙제했니?”, “숙제해라”라는 소리도 할 필요가 없었다. 숙제가 없어서가 아니라 숙제를 하고 안 하고는 교사와 반 친구들과 정한 약속이기 때문에 지키건 안 지키건 본인이 스스로 책임을 지기 때문이다.
일반 학교 다닐 때는 지겨운 의무였던 것들이 새 학교에서는 ‘함께 지키기로 한 약속’이 됐다. 나쁜 말을 쓰거나 친구를 때리거나 놀리면 야단을 맞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입장에 대해서 이야기를 듣고 다른 방법으로 표현하는 방법들을 배우고 지키지 못했을 때는 어떤 노력을 더 할지 정한다. 규칙이나 약속을 정했다고 해서 그대로 다 지키지 못하지만 자신이 무엇을 잘못하고 실수했는지 알고 인정하는 것은 큰 배움이었다. 누구보다 잘했네, 못했네 하는 비교도 없어졌다. 시험과 성적 같은 것이 아예 없고 배움의 차이는 개인적인 노력과 먼저 알고 나중에 아는 관심과 순서의 차이일 뿐 능력의 차이는 아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는 그렇다 치고 중고등학교 진학은 어떻게 할 거냐고, 대안학교만 다니면 나중에 대학은 갈 수 있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다. 이 다음에 어떤 길이 있을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다만 ‘어떤 길을 가든 아이 스스로 찾아 나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자라나기 시작했다고나 할까. 정해진 길을 버리고 나니까 오히려 마음은 느긋해졌다. 어떤 길이든 모험이 될 테니 겪으면서 방법을 찾아보자는 생각이다. 아이의 미래는 아이가 찾아 나가는 것이고 우리가 도울 수는 있지만 정해줄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언제든 의지하고 서로 손 내밀 수 있는 가까운 공동체 이웃들을 얻은 것도 큰 수확이고 이 나이에 책 읽고 토론하며 더 많이 공부하게 된 것도 적지 않은 변화다. 우리가 속한 토양이 달라지니 남편과 대화도 더 다양해지고 풍성해졌다.
그러나 여전히 아쉬움도 많다. 같은 지역에 초등학교가 두 곳이나 있지만 그 아이들과 아무런 교류 없이 우리끼리만 지내는 것은 안타깝다. 일반 학교 아이들과 대안학교 아이들이 수업을 떠나서 다양한 분야에서 어울리며 서로를 이해하고 장단점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대안학교 공동체라는 좁은 울타리 밖에서 일어나는 사회적인 현상들과 활동에도 더 적극적일 필요가 있다. 우리 학교, 우리 공동체 안에만 안주하는 것이 지역사회의 더 큰 의제에 무심하게 만들기 쉽기 때문이다. 대안학교를 선택한 일이 내 아이만을 위한 일이 아니듯 결국 이 사회의 교육문화를 바꾸어 나가는 한 부분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대안학교 사람들이 공동체 안에서 경험한 것, 깨달은 것, 나누고 있는 것들을 이 사회로 더 넓게 펼쳐 가는 일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기울였으면 좋겠다. 아이와 함께 새롭고 건강한 배움의 모습들을 심어 가는 일, 무엇보다 배우며 커가는 일이 고통이 아닌, 즐겁고 행복한 여정이라는 것을 삶으로써 보여주고 싶다. 갈 길이 멀지만 마음은 가볍다.